조화(調和)
“물을 흐린다”는 표현은 종종 특정 대상을 비난할 때 사용합니다.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때때로 우리는 이 말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을 흐린다는 말을 쓸만한 자격이 되냐 묻는다면 머리를 긁적이게 됩니다. 저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너나 잘하세요”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귀엽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노력하는 중이니까요. 오늘은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물을 흐리던 사람이 ‘나 말고 너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이야기죠.
친구는 1~2명, 여행은 귀찮고, 영화관도 혼자서 잘 다녔습니다. 혼자서 치킨 한 마리도 해치울 수 있고 아쉬울 게 없는 사람. 바로 저였습니다.
‘핵아싸’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회식은 끔찍했고, 선배들이 밥을 먹자고 해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습니다. 비위 맞춰주는 게 야근하는 것보다 더 끔찍했죠. 퇴사를 준비하면서는 늘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때까지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말이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건 자신의 선택이고 호불호의 영역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인터스텔라를 봤지만 혼자서 즐겨야 했고, 리그오브레전드도 솔랭만 돌렸습니다. 혼자서 하는 달리기는 운동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승자는 없었죠.
다행이라면 전 실행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모임을 찾았죠.
그렇게 찾아간 곳이 ‘영어회화 모임’이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좋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LA 출신 교포가 사회를 보는 모임은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이곳이라면 인생의 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도 있었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봤고, 오픈 마인드를 갖고 얘기했습니다. 상대방이 얘기할 때는 잠자코 듣기도 했고, 적당히 맞장구치기도 했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모임에 갔으니 ‘적극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반년이나 모임에 얼굴도장을 찍었지만 짝은커녕 ‘친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인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모임이 끝나면 밥도 먹고 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모임이 끝나면 저는 다시 혼자인 일상으로 돌아갔죠.
세상이 문제였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말살시켰고, 사람의 감정을 메마르게 한 게 결과였죠. 저는 언젠가 나타날 ‘그녀’를 기다리면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적극성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영어모임이 끝나고, 러닝 크루와 요가 모임, 핸드드립 커피 클래스, 크로스핏 등을 거치고 난 후였습니다.
크로스핏에서 저랑 비슷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도 모임에 녹아들기 위해 유독 적극적이었습니다. 많이 물어보고, 많이 얘기했죠. 궁금하진 않았지만, 그가 3년째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고 있고, 고등학교 때 이름을 날렸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모임이 자연스럽게 와해되는 바람에 이후에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모습이 그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이직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참가한 보드게임 모임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직장에 찌든 저는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입을 쉬지 못하는 그를 보고 ‘영어 모임에서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전 많이 물어봤고, 많이 얘기했고, 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계속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보는 세상에는 ‘나’ 밖에 없었던 거죠.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도 있고 ‘너’도 있는 법입니다. 사실 ‘너’가 없으면 ‘나’도 큰 의미가 없죠. 하지만 ‘내’가 ‘너’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너’는 ‘나’와 다르니까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말하게 하고, 지켜보고 싶은 사람은 지켜보게 합니다.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기다리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질문을 건넵니다.
총각 시절 방에서 혼자 치킨을 먹고 있으면 어머니가 가끔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너만 입이냐, 내 입도 입이다.”
분명 물어볼 때는 안 먹는다고 하셨지만, 치킨이 오면 가슴살을 2조각 뺏어가셨죠.
그때는 왜 저럴까 싶기도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닌가 봅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