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잘 아는 사람 중에 좋아하는 사람.
막상 글을 쓰려니 ‘주제를 왜 이런 걸로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쓸 사람이 없더군요. 제가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건 수고가 많이 드는 일이니까요.
인간관계가 무척 좁은 편입니다. “만나는 사람이 적냐”면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가끔 오랜만에 만난 분이 제게 아는 척을 해도 멋쩍게 누구시냐 묻는 경우도 허다하죠.
인간관계가 좁다고 느끼는 이유는 제 기준 때문입니다. 한두 번 본 정도라면 인간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연예인을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하고 곱씹어보니 그런 물음이 떠오르더군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세상입니다.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두기 위해선 그 사람이 엄청 매력적이거나 내가 일부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물론 그냥 오지랖이 넓을 수도 있겠죠. 전 오지랖이 넓은 편입니다. 다만 관계는 쌍방이죠.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한 깊이 아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정리하면 “누군가를 잘 알기는 어렵고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가 되겠네요.
하지만 이 희박한 확률을 깨고 잘 알게 됐다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됐을 겁니다. 보통의 경우 ‘잘 아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의미라는 말입니다.
사실 간단한 논리입니다. 좋아하지 않으면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미적분에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미적분을 몰라도 세상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죠.
반대로 BTS의 ‘슈가’를 좋아하게 됐다면 분명 당신은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대구가 고향이고 93년생이며 혈액형이 O형인 것까지 말이죠. 좋아하면 궁금해지는 법이니까요.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쌍방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SNS나 지인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잘 알게 될수록 좋아하는 마음은 더 커지겠죠. 별로 좋은 방향은 아닙니다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당신도 겪었을 법한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확실한 건 ‘좋아하면 알고 싶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좋아하고 많이 아는 게 다는 아닐 겁니다. 슈가가 아무리 좋아도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제가 잘 알고 좋아하는 인물 얘기를 들려드리죠. <미 비포 유> 시리즈의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입니다.
루이자는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합니다. 7년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전신마비의 재벌 남자와 사랑에 빠지죠. 사랑에 빠진 남자는 존엄사를 택하고 루이자는 혼자 남겨졌습니다. 남겨진 루이자는 상처에 허덕이다 잘생긴 금발의 응급구조사와 다시 사랑에 빠지죠. 그리곤 꿈을 찾아 미국으로 떠납니다.
당신은 방금 루이자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분명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루이자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당신 마음이 변할까요?
분명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루이자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지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니까요.
만약 당신이 1500페이지 분량의 <미 비포 유> 시리즈를 다 읽는다면 아마 저와 같은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거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많이 알아도 좋아할 수 없다’는 거죠. 조금 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음이 없다면 아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결국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이 있다면 궁금해지고 결국 많이 알게 될 테니까요. 더 나아가 그 마음이 진실하다면 마음이 전해지겠죠.
그럼, 이제 마음이 어떻게 생기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바로 마음을 먹는 거죠.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것. 선택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마음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선택에는 늘 책임이 뒤따릅니다. 선택을 내림으로써 나타나는 결과를 책임져야 하죠.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됐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생길 겁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늘 변화를 가져 옵니다. 책임을 다한 대가죠. 변화가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변화는 분명히 무언가를 변하게 할 겁니다.
선택하지 않았다면 책임질 필요도 없고 변화도 없습니다.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극단적이었고 그래서 조심하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떨어졌던 중학생 때의 저를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네요.
마음을 조금만 내고, 조금씩 알아가는 건 어떨까? 누구도 체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