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에 대해
'보이저(voyager)'를 아시나요? 'voyage'는 영어로 '항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보이저는 항해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미국 NASA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 계획에 의해 발사된 외우주 탐사선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탐사한 탐사선, 보이저입니다.
보이저는 기본적으로 '탐사'가 목적입니다. 어딘가를 가는 게 아니라 이름처럼 항해 자체가 목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보이저'가 아닐까 합니다. 목적지를 알던 모르던 저마다의 항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입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잘 쓸지 고민하게 됐거든요. 글쓰기 모임장이니 '잘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습니다. 못 쓰면 면이 안 서니까요.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저는 생각보다 '보이는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고집하거나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말을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해서도 보이는 부분을 많이 고민합니다.
내면이 다가 아니고, 보이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수능이 지난 후였죠.
학생 때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좋은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일까요. 사람은 당연히 내면을 봐야 하고, 겉 껍데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죠.
가진 건 없지만 거침없었습니다. 말도 과감하게 했죠. 좋은 책들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모두 맞는 말이고, 모순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정도면 괜찮지.' 당시 제 삶의 모토였습니다. 이제 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만 만나면 됐습니다.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진 않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게 말이죠.
스무 살 봄이 오기 직전 겨울, 저는 둘 밖에 없는 빈 교실에서 '상실'을 경험합니다. 애초에 제 것도 아니었으니 상실은 아니었지만 당시 저는 무언가를 크게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게 "좋은 친구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귀가 없었고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저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녀는 그저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인이 됐죠.
성인이 된 제게 나타난 변화는 2가지가 있습니다. 군생활을 하면서 책임질 일이 많아졌다는 점과 제가 독서를 생각보다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군대는 변화가 더디지만 상당히 체계적인 조직입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걸어놔도 간다'는 말처럼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엄청난 속도로 회복하죠. 언제 그랬냐는 듯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언젠가 예비군이 되는 날을 꿈꾸며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죠.
공군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저를 어른이라고 여기고 여러 가지 일을 맡겼습니다. 부사관으로서 병사들과 함께 정비 작업을 하거나, 훈련을 받았습니다. 7년 동안 말이죠.
오랫동안 못 도망가고 군생활을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건 다르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트롤'이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뭐든 무지성으로 해내는 사람은 제게 아첨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군 내의 불합리를 지적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책을 많이 읽었다는 점도 거기에 불을 지폈을 겁니다. '불합리를 보는 안목'만 높아졌거든요.
하지만 능력도 없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프로불만러'는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선배는 제게 "네가 머리가 나쁜 건 아닌데 참 눈치가 없다"고 했고, 저는 그때마다 더욱 바른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결심이 쌓여 결국 '헤어질 결심'이 됐고, 저는 그저 무탈하고 조용하게 군생활을 마치고 싶은 보내고 싶은 '말년 중사'가 됐죠.
제대 후 먹고살 걱정은 크게 없었습니다. 원래가 즉흥적인 사람이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이 있는 덕분입니다. 제가 비관적인 부분은 제 연애사 한정이었죠.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살 것인가.' 민간인이 된 제가 걱정했던 가장 큰 인생의 숙제였습니다.
군생활 중간중간 민간인들을 많이 만난 덕분에 아는 이성이 아예 없거나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직한 말을 해야 한다'는 제 소신이었죠.
이성인 친구가 "넌 왜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말해도 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순수했고, 바른말을 해야만 바른 길로 갈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하는 사람.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세상은 원래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사람.'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은 건 28살 겨울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여전히 '모쏠'이었거든요.
남들 다 잘하는 연애, 왜 나만 못할까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나 소, 오징어나 문어 같은 사람들도 하는 연애. 제가 못하는 게 바로 그 연애였습니다.
이젠 누가 말 해주지도 않지만, 제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걸 더는 부정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으니까요.
다행이라면 저는 책을 꾸준하게 읽었다는 겁니다.
책들이 주는 교훈에는 대단할 게 없습니다. 상처를 보듬어주고 잘못을 용서하라. 비판받고 싶지 않다면 비판하지 마라. 예의를 갖춰라. 상대방의 체면을 지켜줘라. 당신도 다 아는 내용일 겁니다.
그렇게 당연한 얘기들이 쌓여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끝까지 저는 제 힘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집사의 간택을 받게 되죠.
제가 집사를 만난 건 순전히 운입니다. 하지만 집사가 저를 고른 건 운이 전부였다고 설명할 순 없죠.
'모든 사람에게 책에서 배운 걸 써먹는 건 불가능'합니다. 제 성격상 말이죠. 전 INTP라 대인관계는 아주 극혐 하거든요. 점잖게 굴려면 아주 피곤하고 진이 빠집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대상이 한 사람이라면 평생 연기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저는 집사 앞에서는 늘 신사답게 행동합니다. 가끔 본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멋져 보이도록 노력하죠.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 본모습이 신사는 아니지만 그런 모습을 평생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은 고니를 보고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라고 했습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신사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