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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Apr 11. 2021

어차피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잖아

중년 마음 젠트리피케이션 프로젝트

40이란 숫자 앞에서 숨이 턱 막혀왔다. 서른 후반이 될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숫자. 10대, 20대 시절에는 많아야 삼십대 정도를 생각해 봤었다. 우울한 청춘이였던 나는 사실 삼십살을 넘기는 것조차 가능할까 의심스러웠고 정작 30대가 되자 하루하루의 삶에 대처하며 이러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무계획의 나날을 보냈다. 

내가 사십이라니 그럼 이제 그토록 눈쌀을 찌뿌려왔던 우악스러운 아줌마 클럽 회원이 되는 거야? 그러다보니 중년의 여자들의 롤모델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40대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허덕이며 아이를 키우는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밥하고 청소하고 장보고 가족들 챙기는 게 전부였다. 돈이 필요하면 동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꼬마 기자 시절에 운좋게 만난 편집장도 40대였다. 강렬한 카리스마에 든든한 리더쉽을 가진 멋진 여자였지만 남자들은 그녀의 성과에 대해 존경을 보이긴커녕 아줌마가 나댄다는 질투와 조롱이 점철된 욕을 뒤에서 해대곤 했다. 그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기보다는 어디서든 살아남아야한다는 감각으로 무장한 전장의 생존자 느낌이었다. 갑옷을 두르고 전두 지휘를 했지만 한번 실수를 하는 순간 자비는 없었다. 회장이 바뀌면서 그녀는 정리해고의 수순을 밟았고 말을 잘 듣는 남자 후배가 그녀를 대체했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회사에서 만났던 40대 여자 상사들은 일만 열심히 했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고 이간질을 서슴치않거나 어디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어떤 남자의 자리도 위협하지 않았다. 나 또한 일만 열심히 했다. 일을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해지는 번아웃을 겪으며 제풀에 나가 떨어지는 여자직원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자, 그래 과거는 과거고 이제 40대가 되었어.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데? 과거를 다 뒤져봐도 참고할 만한 사람이 하나 없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식의 거창한 삶 말고 그냥 적당히 잘 사는 방법은 없을까? 주변에 중년을 넘기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건 창조 수준의 인생 패러다임이구나. 그렇다면 까짓거 괜찮은 40대가 되기 위한 방법들을 좀 모아서 공유해보자. 


성공한 중년 여자들의 모습은 가끔 미디어 인터뷰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지키면서도 커리어의 꼭대기까지 가는데 성공한 여자들말이다. 명예와 부를 성취하고 저 멀리를 내다보고 있는 여자들. 하지만 그들의 인생 여정과 나의 삶의 거리는 너무 멀기만 하고, 그들을 중년 여자의 스탠다드로 놓고 보면 내 삶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비교 대상과 거리가 1광년 이상 떨어져 있으면 (금/은수저, 명문대, 남편의 지원, 똑똑한 아이들 등등) 우울감만 증폭된다. 그래서인지 40대를 맞이했을 때 많이 우울했다.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이도 없고, 집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좌표도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을 통털어 처음으로 아침에 눈을 뜨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오늘을 또 살아야하네'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무력감이라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밖에 나가서 멋진 사람들과 멋진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어쩌다가 내 우주가 이렇게 쪼그라들게 되었을까? 거울을 보면 불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피곤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나마 젊다는 이유로 빛났던 얼굴은 광채를 잃었고, 누가 봐도 아줌마인 그런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40대 이후를 생각해본 적이 없잖아? 30대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40대고 50대고 60대고 흘러갈 거라 생각했어? 대학교 졸업한 후에 그 졸업장으로 취직하고 일하다가 그 주기가 한번 끝났는데 업데이트가 필요하지 않겠어? 다른 배움과 다른 계획이 필요하지 않겠어? 9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이제 90년대생과 2000년대생이 세상의 진입하기 시기인데 어떻게 20년 전에 배운 걸로 여전히 먹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갑자기 어두운 터널에 뿌연 가로등 하나가 켜진 기분이었다. 40대는 인생 재건축 내지는 재정리를 위한 에너지가 필요한 시기구나. 이 시점에 만약 지금까지 배운 걸로 충분하다며 눈과 귀를 닫아버린다면 내 우주는 그렇게 끝나고 말겠구나. 인간 수명을 100세로 놓고 봤을 때 나는 인생의 반 정도를 살았고 아직도 반을 살아야 하는데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속단할 수는 없겠구나. 

하루가 가고 한달이 가고 1년이 가고 나이가 들수밖에 없다. 20대와 30대는 점점 멀어지는데 그걸 그리워하며 40대를 모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50대가 되서 40대의 사진을 보며 그때 젊었고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다는데 못 했다고 후회하며 또 한 시절을 보낼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이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를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렸을 때보다 덜 빛나지만 은은한 조명 아래서 끈질기게 앞으로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걸 버텨낼 에너지를 매일 충전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버거워하는 자세로는 불가능한 플랜이었다. 일단은 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지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튼튼한 인생 후반 건축을 위해 토양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내 마음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실 공사로 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었다. 나이든 얼굴과도 친해져야 하고, 매일 다르게 아픈 몸에도 적응해야 하고, 어쨋거나 나의 구석구석을 알아야 나를 믿을 수 있기에. 

우선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단호한 평가를 멈추기로 했다. 나에 대해 먼저 좀 알아보자고. 어차피 나이는 먹을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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