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 어린이날

넌 참 소중해

by 화원

“선생님, 이상하게 생긴 게 있어요.” 막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저쪽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지네인가 돈벌레 한 마리가 복도 쪽 벽 아래에서 스스슥 기어가고 있다. 검고 노랗고, 기다란 털인지 발인지가 많은…. 몸통만 5cm는 넘는 큰 놈이었다. 일단은 당황하지 않은 척, 티슈를 세 장 뽑아서 가까이 갔다. 계속 기어가던 그 벌레는 우리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멈춰버렸다. 10초 정도였을까 아이들이 몰려들고 몇몇 아이는 외친다. “선생님 저거 죽여요?”“맞아요. 죽여야 해요.”“죽일 건 없고, 잡아서 창밖으로 버리자.” 내가 큰 빗자루랑 쓰레받기를 가져와서 담으려 하자 “선생님, 제가 할게요.”“저도요 제가 할게요.” 서로 하겠다고 난리다. 한 여섯 명쯤이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쓰레받기에 담아서 이렇게 창문에 대고 털어.” 그리고, 가장 무덤덤해 보이는 표정의 남자아이에게 빗자루랑 쓰레받기를 넘겼다. 그 아이는 다행히도 침착히 미션을 수행했다. 들어와서도 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선생님 여기 3층이니까 돈벌레는 죽었을걸요?”“맞아 죽었지, 죽었어.” 아휴 이 걱정만 하는 아이들이라니. 인터넷을 열고 먼저는 그게 지네인지 돈벌레인지 이미지를 검색해서 찾았다. “얘들아 이거 ** 말대로 돈벌레가 맞대. 그리고 돈벌레는 작은 벌레나 알을 먹어치우는 익충이래.” 그렇게 말해주고 또 검색창에 ‘벌레가 높은 데서 떨어지면?’ 질문을 적어 검색을 했다. 그러니까 곧 관련 질문과 답이 나왔다.


Q: 개미나 거미 같은 작은 벌레들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나요?

A: 안녕하세요. *** 과학전문가입니다. 개미나 곤충의 무게가 작고 표면적이 작아서 떨어질 때의 공기저항이나 바람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떨어지는 속도가 작아서 받는 충격이 작다고 합니다. 또한 외골격이 표피, 진피, 기저막으로 되어 있어서 뼈를 대신해서 엄청 견고해서 떨어지는 충격을 잘 흡수해서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A: 안녕하세요. ### 과학전문가입니다. 벌레들은 무게가 가볍고 공기저항 때문에 낙하하는 속도가 죽을 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무게도 가벼워 충격이 세지 않아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동으로 국어 시간 한 시간 중 절반은 날아간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소독을 하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뭔가가 출현할 때면 난리가 난다. 행정실에 얘기해서 소독을 부탁드려야겠다.


아주 예전에는 교실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보니 참새가 들어왔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창문을 닫고, 참새를 실컷 본 후 다시 창문을 열어 보내주곤 했다. 또 한 번은 아이들이 등굣길에 토끼가 있었다며 교실에 데려와서 한 달 키웠던 적도 있다. 토끼 먹이려고 집에서 아이들은 온갖 풀을 가져왔고, 라면상자에 깔개를 넣어 키웠다. 점심시간에는 교실 문을 모두 잠근 채 토끼를 풀어두고 같이 놀기도 했다. 두 달인가 키우면서 ‘아, 토끼는 귀엽지만 똥냄새가 심하군.’을 체험하기도 했다. 또 교실에 자주 소동을 일으켰던 건, ‘벌’이다. 창가에 있던 꽃 때문이었는지, 그냥 더운 여름날 교실의 시원한 바람을 좋아했던 건지, 벌은 꽤 자주 교실에 들어오곤 했다. 나는 “선생님이 너무 꽃처럼 이쁘니까 벌이 자꾸 들어오네.”라며 농담을 하곤 했다. 작은 벌도 있었지만 말벌로 보이는 게 들어오는 날이면 정말 난리였고, 비상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얘들아 엎드리고 소리도 지르지 말고, 움직이지 마.”라고 하고는 여러 창문을 열어 최대한 빨리 내쫓아야만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없지만 전에는 바퀴벌레도 있었고 쥐도 있었다. 파리가 많을 때면, 시장 건어물 가게 위에 붙여두는 끈끈이를 교실에 붙여둔 적도 있었다. 파리는 항상 많았고, 1999년에는 쥐도 있었다. 출근해서 보면 나무 마룻바닥 한쪽이 갉아져 있는 모습이 쥐의 존재를 확인해 주곤 했다. 그래서 금요일 퇴근 시에는 쥐 잡는 끈끈이를 쥐가 잘 다니는 쪽 교실 바닥에 두고 퇴근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 월요일에 그 끈끈이에 쥐가 붙어 있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이런 동물이나 곤충의 출현으로 위험한 일은 없지만, 덕분에 교실은 심심하지 않은 하루를 선물 받곤 한다. 아이들은 일기에, 이야깃거리에 재미난 소재를 하나 얻는 것이다. 물론 무서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항상 용감한 아이들은 있고 그들로 인해 위기는 다행히도 넘어간다.


이렇게 벌레로 인해 정신이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마지막 5교시 수업을 하다가 생각이 났다. ‘아, 오늘이 어린이날 연휴 전 마지막 날이구나.’ 마지막 수업 20분을 남겨두고 겨우 생각이 났다. 어린이날은 분명 중요한 날이건만, 교육과정에 그걸 위한 시간 배정은 하지 못해서 시간표 사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메세지와 선물을 주어야 했다. 수많은 자율 시간이 있지만 안전, 학교폭력예방교육, 마약예방교육, 중독예방교육, 청렴교육 등 수많은 교육들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정작 이렇게 중요한 날에 대한 시간은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계기 교육을 하고 기념으로 선물 6가지를 주려고 차곡차곡 모아놓은 걸 꺼냈다. ‘이렇게 중요한 날 할 일을 까먹다니.’ 하지만 이렇게 다급하면 또 초인적인 시간 관리 능력이 생겨난다. 아이들에게 미리 인쇄해서 준비해 둔 어린이날 관련 학습지를 나눠주고, 어린이날에 대해 2분 정도 하는 짧은 영상을 보여주며 학습지에 기록하도록 했다. 어린이날이 처음 정해진 건 몇 년인지 방정환 선생님, 색동회 등 어린이날의 기원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영상을 보는 2분 사이, 나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 6가지를 잊지 않고 모두 꺼내었다. 학교 예산으로 샀던 것들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전한다.


첫 번째는 학년에서 스포츠클럽을 한다고 사준 ‘스피드 스택스’ 컵이다. 번듯한 상자에 담긴 걸 보니 아이들은 환호를 한다. “와~!!!”. 아이들의 이런 생생한 환호를 보면 너무 귀엽고 재밌다. 두 번째는 동그란 통에 담긴 공기 1벌이다. “선생님이 통마다 여러분 이름 스티커를 각각 붙여두었으니 잃어버리지 마요. 공기 한 알마다 네임펜으로 이름 적으면 좋아요.”“와, 선생님 이거 공기 정말 잘 되는데요?”“그럼요, 선생님들이 소리도 좋고 잘 안 터지는 공기를 신중히 골랐답니다.” 세 번째는 지난번 학급 자치 예산을 위한 회의를 통해서 산 '고래밥’ 과자다. 이걸 보여주자 아이들의 기쁨은 최고조에 이른다. “와~!!!” “아직도 세 개는 남았습니다.”“와 정말요?” “그럼요, 선생님은 줄 때 팍팍 줄 겁니다.” 일단 어린이날 맛있는 과자 한 봉 정도는 있어야 기분이 난다. 이거 살 때 56g짜리도 있고, 36g도 있었는데 예산상은 36g을 사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나도 과자를 좀 먹어본 입장에서 36g은 유치원생들에게나 맞는 아주 조그만 것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래서 열심히 56g 과자 24개를 최저가로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가 간당간당하게 겨우 예산에 맞췄다. 같이 사려던 종이컵 개수를 좀 줄이고 해서. 어쨌든 어린이날 받은 과자로써 너무 작지 않도록 한 나의 노력은 아이들의 환호와 입이 벌어지는 기쁜 모습으로 응답받았다. 네 번째는 실뜨기 실이다. 예전에야 털실 길게 잘라서 하는 것이 실뜨기였지만, 요즘엔 아예 알록달록하고 튼튼한 실뜨기 실을 판다. 그래서 공개수업 때도 쓸 것이라 미리 사서 주었다. “선생님 저 이거 잃어버려서 없었는데, 너무 좋아요.” 아이의 이 한 마디면, 이 상품을 검색해서 찾고 엑셀에 입력하고, 기다려서 택배함에서 찾아오느라 애쓴 나의 수고는 다 잊힌다. 다섯 번째는 학부모회에서 준비해 주신 책갈피 두 개였다. 며칠 전 주셨지만, 기다렸다가 이날 같이 준다. 그럼 좀 더 풍성한 느낌이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지난번 회의에서 아이들이 젤리나 키링 중에 선택한 것을 주었다. 젤리는 맛있어서 좋고, 키링은 햄스터 모양인데 랜덤이라지만 모든 그림이 다 귀여워서 아이들이 모두 만족했다. “선생님 젤리 지금 먹어도 돼요?”“응, 물론이지.”“선생님, 이거 젤리 봉지가 안 뜯겨요.” 톱니바퀴 모양으로 된 윗부분이 가끔 그렇긴 하다. 그래서 얼른 힘주어 뜯어준다.

휴…. ‘어린이날 선물 주는 거 잊었으면 어쩔 뻔했어.’ 요즘 아이들은 뭐 다 풍족해서 그리 아쉬울 것 없다고 해도, 특히나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날은 일 년 중 가장 축하해 주고 기념할 만한 날이다. 마지막 선물은 “오늘은 어린이날 기념으로 알림장 안 쓰고 일찍 집에 가요. 부모님께 보내는 앱으로 알림장 보세요.” “와, 정말요?” 선물에는 주는 것도 있고, 하던 걸 안 하게 해주는 것도 있다. 드디어 오늘 준비한 모든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선물을 다 받은 아이들의 세상 밝은 그 얼굴을 사진으로 담는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난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내년에는 어린이 날에 대한 시간을 교육과정에 꼭 넣어야지.'


연휴를 마치고 온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린이날 선물은 다 받았어요?” 하니 23명 중 6명이 못 받았다고 했다. “그럼 부모님이 선물을 사긴 했는데 도착을 안 했거나 좀 지나서 사주신다는 사람?”하고 물으니 4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2명, 이 아이들은 선물도 못 받았고 사주신다는 얘기도 없었다고 했다. 그때 그 2명 중 한 명이 말했다. “선물은 안 사주셨는데 놀아주긴 하셨어요.” “아 그랬구나? 놀아 주셨네. 그럼 주신 걸로~.” 다른 한 명에게도 물으니 놀아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겨우 아슬아슬한 어린이날 선물 확인을 마쳤다.


‘어린이날’을 대하는 가정마다의 온도차, 색깔차가 있다. 즐거운 나들이와 선물이 모두 있는 집도 있고, 하나만 있는 집도 있다. 외동만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날을 좀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고, 자녀가 많은 집에선 좀 덜 챙기는 모습이 있긴 하다. 부모님으로서도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연이어 어버이날도 있으니 자녀도 있고 부모님도 있는 학부모님들은 아마도 무척이나 바쁜 5월을 보내고 있으실 것이다. 선물을 사주고도 아이가 선물이 맘에 안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를 못 듣는 최악의 상황도 있을 테니, 힘들고 허무할 수도 있는 5월 가정의 달이다.


교사가 된 첫해 어린이날엔 아이들 모두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적어 넣은 노란 책갈피를 코팅해서 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가 집에 오븐을 사고 한창 홈베이킹을 할 때는 어린이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막대에 머랭을 돌려만든 머랭막대를 포장해 주었었다. 미니 머핀을 만들어 주었던 적도 있었다. 피자를 시켜 먹은 적도 있고, 고정적인 건 없다. 해마다 내가 그 당시 관심 있는 걸로 마음을 전했었다. 하지만, 나만의 계획만으로 다 할 수는 없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동향도 살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는 것이 모두 좋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것, 저것 공동으로 산 게 많아서 비슷하게 준비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다 컸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항시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어야 하니, 퇴직 시까지 어린이날 졸업은 못하겠네. '어린이날을 축하해. 넌 참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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