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 쯤 아파트를 분양 받을 때, 화단을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화단용 하얀색 흙까지 서너 푸대씩 제공해줬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터서 확장공사를 했다. 화단을 살린 집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사실 삼면이 막혀 있고 한 면만 외부와 통하기 때문에 웬만큼 강한 식물이 아니면 살아남지 않는다. 장미도 꽤 오래 살아남는 식물 중 하나다. 다만 바깥에 가까워야만 살아남는다. 한번 심으면 한 3,4년은 살아남는 것 같다. 걔중에는 장하게도 거의 5년 이상 꿋꿋하게 살아남은 것도 있다. 많은 식물들을 갈아치웠다. 가슴이 아팠지만 시든 식물만큼 흉한 것도 없어서 시들자마자 나는 잽싸게 파내버린다. 매년 4월이면 화단정리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올해는 상추를 심어보았다. 바깥쪽에 내놓은 상추들만 튼튼하게 자란다. 대가 굵고 상추이파리도 제법 크고 두께가 있다. 안쪽에 있는 것들은 힘이 없다. 야들야들한 맛은 있지만 곧 쓰러질 것처럼 약하다. 그래서 보기도 지저분하게 자란다.
말그대로 손바닥만한 화단이라서 잠깐만 쭈그리도 앉아서 작업을 해도 허리랑 다리에 통증이 온다. 그렇지만 화단에는 깊이가 꽤 되고 상당한 양의 흙이 들어있어서 아무리 파내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흙을 밟기가 힘들어진 시대에 잠시나마 흙을 만지고 밟을 수 있어서 그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어린 시절엔 사방이 흙이었다. 골목길도 흙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골목에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했고 흙을 밟으려면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다.
아파트 안에서도 흙을 밟을 수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잠시 행복해진다. 그 안에 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준다. 초록색은 희망이다. 뭐라고 딱히 규정지을 필요가 없는 희망이다. 초록이 지시하는 것은 생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