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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재스민 Oct 20. 2019

조용한 열정

혜주의 이야기 -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

조용한 열정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 2017)

*혜주의 이야기-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


  혜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등단한 시인이라고 굳이 밝히지 않았다. 계속 시를 쓰고 있다면, 아니 쓰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아마 당당하게 밝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혜주는 한 문예지에 추천을 받고 공식적으로 시인이란 타이틀을 가진 후 곧바로 시 쓰기를 포기했다. 더 이상 시를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졌음을 알게 됐다. 혜주는 스스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시인되기는 대학교 때부터 꿈꿨던 일이다. 그리고 혜주가 시인이라는 공식적 인정을 받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7년째 되던 해였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다. 설렘과 흥분이 사라지자, 혜주는 자신이 왜 그토록 시인이 되고 싶어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를 향했던 욕망이 등단이라는 뜨거운 태양이 뜨자마자 바로 가뭄으로 이어져 물기가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동안 글을 쓴답시고 허송세월 하는 혜주를 향해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던 어머니는 혜주의 등단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앞으로 시를 쓰고 싶지 않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탄로 나는 일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잠시 사라졌던 불면증이 다시 시작됐다. 예전에는 시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구명조끼도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부모의 집으로부터 나와서 혼자 살고 싶지만 경제력이 없는 혜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혼은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차선책이었지만 차선책이 아니라, 최악이 될 위험도 있다. 미래는 보이지 않고 현재는 지옥이다. 생각을 모으면 모을수록 더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아서 혜주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영화와 TV시리즈를 봤다. 시리즈물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괜찮은 시리즈에 한번 꽂히면 몇 일간은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잊고 살아갈 수 있다. 또 다른 목표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지 않나.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최소한 용돈은 벌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혜주는 자신에게 있었던 열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대체 시가 어떤 의미가 있길래 나는 대학교 내내 시를 쓴다고 밤을 하얗게 새웠던가.’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기도 했다. 고지는 거의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가 다시 멀어지고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행복과 불행도 교차했다. 그렇지만 시는 어두웠던 시절을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그런데 등단을 하고 나니 도리어 시는 자신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 압박을 견딜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혜주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밀리 디킨슨은 자신에게 시가 어떤 의미인지 한 마디로 정의한다. ‘구제불능에게 주신 유일한 선물’이라고. 그렇다면 혜주에게 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혜주에게 시는 선물이었을까. 독이었을까. 자신이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혜주는 에밀리 디킨슨에게서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시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더듬어볼 수 있다면 자신도 탈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용한 열정>에서 에밀리 디킨슨이 있는 공간은 혜주의 공간과 느낌이 비슷했다. 촛불로 불을 밝힌 공간에서 가족이 모여 각자 자신이 할 일에 몰두하는 장면이 있다. 에밀리의 아버지와 오빠는 책을 읽고 여동생은 바느질을 하고 에밀리는 비통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다. 에밀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그 장면에서 혜주가 본 것은 죽음이었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것이란 예감이 방안에 흐르고 있었다. 방안에 있는 사물들이 촛불 때문에 일렁이듯이 혜주도 자신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에밀리는 남들이 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글을 쓴다. 마치 죽음과 당당히 대면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아니면 죽음을 조금씩 수용하려는 것처럼.

  에밀리는 결혼에 대해서도 매우 비관적이다. 자신이 결혼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외모도 특별히 뛰어나지 않고 예민하고 까다롭고 냉소적인 여자와 결혼하려는 남자도 없겠지만 결혼을 한다면 아내로서 의무감에 매일 것이기 때문이다. 에밀리는 구속적인 아내의 길보다는 고독한 시인의 길을 택한다. 밤마다 자지 않고 시를 쓰는 아내를 이해할 남편은 없을 테니까.

  에밀리는 죽음보다 상실을 더 두려워한다, 자신이 애착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곁을 떠난다고 비통해한다. 자신이 뜻이 잘 통했던 친구, 버펌도 결혼과 동시에 멀리 떠나고, 유일하게 좋아했던 유부남 목사도 다른 목회지로 떠난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도, 우울증으로 늘 슬픔에 잠겨 있던 어머니도 모두 떠난다. 상실에 대한 예감은 에밀리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그래서 에밀리는 다른 남자와 교류도 극도로 피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시키면서 죽음과 상실감, 신앙 사이에서 번민하며 시를 통해 힘들게 삶을 버티어나간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은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물론 가족들 간에도 다툼과 마찰은 있었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남매간에 우애가 돈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밀리의 오빠인 에드워드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집을 떠나기 전에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는 출세를 해야지, 얌전하게만 있을 수 없잖아.” 그 말에 에밀리는 발끈한다. “그럼 여자는? 얌전하게 있기만 하면 돼?”

  에밀리가 사는 시대에 남성들은 글을 쓰는 여성에게 냉소적이다. 여성은 예술을 하기에 부적절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대를 대하는 에밀리의 태도 역시 냉소적이고 폐쇄적이다. 그래서 에밀리는 여성들과 정서적인 연대감을 형성한다. 새언니, 여동생, 친구 버텀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혜주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이유를 시인의 기질로서 지닌 예민함과 감수성으로 애써 돌려왔다. 하지만 에밀리처럼 여성의 삶에 대해 그처럼 진지하게, 그리고 그처럼 비관적으로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여성이라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혜주의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이었다면 결코 시를 쓴답시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혜주는 딸이었기에 아들이 받아야 하는 압박감과 의무감에서 어느 정도는 느슨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딸이라고 해서 교육면에서 차별받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느슨한 태도가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제약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졌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장사꾼이었다. 언니와 오빠를 결혼시킬 때도 절대 손해 보지 않을 상대를 골랐다. 아버지에게는 결혼 역시 비즈니스의 일부일 뿐, 사랑 따위는 불필요한 감정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혜주에게 굳이 강요하지 않았던 것은 혜주를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혜주는 대학교 때 3학년 때 심한 불안증으로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혜주가 결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혜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니와 오빠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압박을 많이 받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이 고민했던 여성의 위치에 대해 혜주는 진지하게 생각해봤던 적이 없었다. 부모가 보내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그냥 무시했다. 모범생이었던 언니가 그나마 제대로 취직을 하고 결혼까지 무난하게 해서 다행이었다.   


  혜주에게는 지금 남은 게 없다. 혜주의 상태를 눈치챈 친구들도 그녀를 멀리 했기 때문에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언니와 어머니도 혜주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혜주는 그냥 집안에서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혜주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시 쓰기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생긴다면 자신을 보는 가족과 친구들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분명 아니다. 혜주는 시를 쓰면서 남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 있는 듯한 설렘과 즐거움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세월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설렘과 즐거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조용한 열정>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시를 자막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의 낭독도 함께 나온다. 즐거울 때는 즐거운 대로, 슬플 때는 슬픈 대로, 외로울 때는 외로운 대로 시는 에밀리 디킨슨과 한 몸이 된다. 혜주는 자막으로 떠오르는 시를 보면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시가 내게 작은 구원의 빛을 내비쳐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설사 어둠 속에서 실낱 같은 빛을 내는 가녀린 촛불일지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서 혜주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습관처럼 넣고 다니던 작은 수첩과 볼펜을 확인했다. 엔딩 씬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얼굴과 함께 나오는 시를 혜주는 받아 적고 싶었다.


‘이것은 한 번도 답장하지 않은

세상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다


자연이 부드럽고 당당하게

들려준 소박한 소식


그것은 내가 볼 수 없는

손에 맡겨진다


다정한 세상 사람들이여

자연을 사랑하듯


나도 후하게

평가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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