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에서 배우는 조직과 리더십 (6/6)
개인적으로 백단장에 가장 공감하고 맘에 들었던건 단장이라는 자리에 연연하기 않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다. 백단장은 구단주에 의해 고용되었지만 구단주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드림즈의 우승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보고 달린다. 우승에 방해된다면 구단주에게도 까칠하게 대든다. 그는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본 경험이 있다. 실력이 있기 때문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아야 자기 원칙대로 살 수 있다. 아니면 타협하고 자기 합리화하며 살게 된다.
백단장이 구단에 의해 퇴사를 당했다가 다시 복귀했을 때 구단주는 정규 시즌이 시작되면 그만두는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결국 몇 개월 정도만 단장직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원래 연봉 보전을 약속받고 퇴사한거라 경제적으로 보자면 복귀하는건 완전히 손해다. 백단장의 집안도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백단장은 수락한다.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복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미련없이 떠난다. 드림즈가 PF소프트에 매각될 때 백단장은 물러나야 했지만 담담히 받아들인다.
PF대표: 조건이 있습니다. 드림즈의 고용 승계에 백승수 단장은 포함시키지 않겠습니다.
백단장: 좋습니다.
PF대표: 이유라도 들어봐요. 야구단 인수에 이어 백단장님의 자리까지 보장하기엔 회사에서 외로운 상황이긴 해요. 단장님의 현란한 업무 이력은 보수적인 주주들에겐 문제가 되는 거 같습니다.
백단장: 익숙한 일입니다.
PF대표: 미안합니다. 나중에 다시 여론을 봐서…
백단장: 날도 따뜻해진 걸 보면 단장의 시간은 지났습니다. 이제 선수와 감독이 잘 하겠죠. 오늘의 결정만으로 대표님은 대단한 결정을 했고 제 걸음은 가벼워질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세영 팀장과의 마지막 대화에서 백단장은
이미 저는 수도 없이 많은 선수들한테 ‘당신 선수 생활은 여기까지라고’ 말해왔는데 저도 들을 수 있는 말이죠
라며 깔끔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팀장이 어떻게든 백단장이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하는데도 만류한다. 자신의 성취에 도취하지 않고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 생각할 때 미련없이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일반적인 조직에선 어땠을까? 백단장은 망해가는 구단을 우승도 가능한 잠재력 터지는 곳으로 바꾸어 놓았다. 자신 덕분에 조직이 크게 성장했다면 그 영광을 뒤로하고 담담하게 떠날 수 있을까? 오히려 임동규, 고세혁처럼 어떻게든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삶의 방식이 다르고 사람의 깊이가 다른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때 다짐했던 목표가 있었다. 일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아닌, 일이 나를 찾아오도록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것. 그래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구차하지 않게 나의 원칙을 지키며 살자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내공을 쌓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나만의 무기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일을 구하기 위해 인터뷰해 본 적은 없으니 계획한대로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떠나야할 때를 아는게 더 어려운 것 같다. 한가지는 명확하다. 자리나 돈을 지키기 위해 구차하게 이런저런 이유 들이대며 버티진 말자. 절이 싫거나 맞지 않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것이다. 절을 바꾸겠다고 구차해 지지 말자. 언제든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진짜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