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났지만 복잡해졌고, 소중해졌기에 지켜야 했다

열한 번째 이야기

by 자씨


수술 다음날, 내 몸에는 눈에 띄는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다.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가 움직이지 않았다. 감각이 없었다. 분명 수술 전에 재활할 때에는 다리에 에크모 기계를 달고 있었지만 종아리 아래쪽을 움직일 수 있었는데 때문에 살짝 아니 사실은 많이 겁이 났다. 이 수술 후 일부 신경계가 마비되거나 심각하면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던 사례들을 인터넷에서 봤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의료진 분들은 비골 신경이 마비된 것 같다고 진단하셨다. 이후 여러 번 구체적인 검사와 진료를 했을 때에도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것은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오래 에크모를 하면서 무리가 있었을 수도 있고 수술을 하면서 오랜 시간 눌려서 그럴 수 있지만, 대부분은 신경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셨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또 돌아온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일단 지금은 심장과 수술 후 경과, 거부반응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등을 잘 지켜보고, 회복을 잘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다며 놀란 마음을 안심시켜 주시려 했다. 나도 그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에 다리 신경 마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 였으나 사실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살아난 것에 감사하며 심장 수술에 대한 경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했다.


수술 후 내가 놀란 것 중 하나는 먹는 약이 정말 많았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약과 물만 먹어도 배가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은 매일 피검사 및 나의 증상에 따라 추가되기도, 줄어들기도 했다. 아침 약, 오전 면역억제제, 점심 약, 저녁 약, 저녁 약 2, 저녁 면역억제제까지 먹으며, 약이 많은 때에는 한 번에 13알까지도 먹었다.




수술 전에는 다리와 사타구니 부분에 에크모 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앉을 수 없고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그래서 내 하반신을 제대로 직접 보지 못했었는데, 수술 후 고개를 조금 들 수 있을 때쯤 내 다리를 제대로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도 그 장면이 생각이 난다.


물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몸무게가 거의 13킬로 정도 빠졌기도 하고, 500ml 생수통 들기도 힘든 것을 보고 몸에 근육이 정말 많이 빠졌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 생각 그 이상이었다. 통통하고 건강하던 내 종아리와 허벅지의 피부가 뼈와 관절에 보기 싫은 모양으로 딱 붙어있었고 붉은 반점이 온 다리를 덮고 있었으며 보고 있으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뼈 소리가 날 것 같았다.




하루 30분씩 재활 선생님과 조금씩 몸 여기저기를 움직여 보기도 시작했다.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혼자 앉을 수도 옆으로 돌아 누을 수도 없었고 일어서는 것은 아직 시작도 할 수 없었다. 재활 선생님께서는 빠진 근육이 회복되는 건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한 달 병상생활을 했다면 적어도 3~5달의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몸에 근육이 이렇게 중요하고 큰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지 매 순간 느꼈다. 왜 중요한 것은 잃고 나서야 깨달아질까 하며 말이다. 수술 후에는 이제 천천히 회복하면 되겠지 하고 여유 있게 생각했었는데, 수술 회복뿐 아니라 재활이 아주 중요하고 긴 과정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 퇴원하면 집도 가고, 너무너무 보고 싶은 우리 아기도 만나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복직 전에 회복하면서 가족들과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어느 정도 이전의 정상적인 생활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의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때였다. 살아났지만 복잡해졌고, 소중해졌기에 지켜야 했다. 놓치면 놓치는 대로 잡히면 잡히는 대로 흘러가듯 유유히 흘러가던 나의 정신세계를 강하게 붙잡고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예민해져야 했다.


이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불편하거나 아픈 부분만 말씀드리면 의료진 분들이 여러 기계와 약물로 나를 치료하고 수술하고 도와주셨지만, 이제부터의 회복은 나에게 달려있었다. 몸이, 심장이, 여러 장기와 신경이 회복되기를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다잡았다.


오히려 나 스스로 더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긴 것이다. 하루에 몇 번씩 언제쯤 회복할 수 있을까 하며 울적해졌다가도 “그래! 이렇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어디야! 이건 시간문제니까 마음 편하게 먹고 열심히 움직이자!”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침대 앞 시선이 가는 곳에 아이 사진과 가족사진을 붙여 놓았었다. 수술 전 있을 때는 그 사진을 오래 쳐다보면 마음이 아파 슬쩍 보고는 한참은 보지 못했었는데, 수술이 마친 후에서야 그 사진들을 제대로 보고 아이의 웃는 모습에 위로받으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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