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9
흙 속에 묻어두었던 글자가 잘 자라서 기둥을 타고 올랐다.
든든하게 자리 잡아가는 성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
더 이상 글자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글자는 알아서 만들어졌다가, 알아서 흐트러졌다.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필요하면 끊어지기도 했다.
글자가, 단어가, 문장이, 소설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내게서 멀어질 것이었으므로.
글을 쓰며 가장 힘든 것은
글이 내게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만
글자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글자들이 내 곁을 흐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으로 편안하게 흘러내렸다.
모든 이야기가 내 손가락에 흘러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