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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an 02. 2024

흘러오다

자서전 9

흙 속에 묻어두었던 글자가 잘 자라서 기둥을 타고 올랐다.

든든하게 자리 잡아가는 성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


더 이상 글자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글자는 알아서 만들어졌다가, 알아서 흐트러졌다.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필요하면 끊어지기도 했다.

글자가, 단어가, 문장이, 소설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 다가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내게서 멀어질 것이었으므로.


글을 쓰며 가장 힘든 것은

글이 내게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만

글자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글자들이 내 곁을 흐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으로 편안하게 흘러내렸다.

모든 이야기가 내 손가락에 흘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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