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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게임의 규칙

The Rules of the Game

by 도서출판 야자수

"룰은 간단합니다.

각자 자유롭게 자기 입장을 변론하거나 다른 사람의 모순을 지적해주세요.

토론이 끝나면, 가장 나쁜 한명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 방식을 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여러분의 입장만 듣고 끝내버리면 현재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되겠죠.

모두를 남긴다면 무차별적 분노가 되는 것이니,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구요."


'그냥 미친 거잖아!'


"제일 나쁜 한명을 선택한다면, 불가피한 응급조치로 인정받으면서 건강에 대한 최소한의 주의를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쏘는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토론에 대해서, 모두에게 충분히 얘기할 시간을 줄 것이며, 한번 순서가 지나도 또 말할 수 있으니 그때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려보내 드리겠습니다”가 떠올라서 그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의견이나 질문 있으십니까?"



"제 선택 기준은 얼마나 고분고분하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주세요. 저는 여러분의 그 무언가에 대한 지나친 순응이 오늘의 사단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전히 아무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 모두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 내에서 우수한 학업적 성취를 거둔 분들이시죠. 질문이나 토론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할 수 없이 지정을 해드려야 할 것 같군요. 본인의 화면에 빛이 깜빡거리면 질문을 하시면 됩니다.

참, 그냥 무작위이니 의미를 두지 마세요."



첫번째는 기자였다.

그는 자기를 호명하는 직쏘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그러니까..."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의도가 좋다고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방식은 오히려 사람들의 반감을 살 우려가 매우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럴까요?

사람들은 주먹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히어로가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하잖아요. 드라마의 통쾌함이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즐기면서도 동시에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이죠."


"우리 토론을 보고 시청자들이 투표를 한단 말입니까?"

정치인은 자기도 모르게 불쑥 말을 뱉고 말았다.


그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다른 사람들은 업계쪽에서 알려졌을 뿐이지만, 나는 전국적 인물이다. 어차피 모두가 비호감인 상황이라면, 대중들은 얼굴을 아는 나를 찍겠지. 게다가 사람들은 정치인이라면 일단 싫어하고 보니까.'

밖에서는 유명하고 비호감인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어차피 군중들은 지지하는 정당이 정해져 있어서, 그는 ‘되는 지역구에 공천받기’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다 득표자가 죽, 아니 남게 되는 투표라면 —그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것이었다.


"그 방법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고 결과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이곳의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어서 그렇게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택은 제가 할 것입니다. 대중에게 남겨진 부분은", 직쏘는 말을 이어갔다.

"다섯 분이 복귀한 이후의 사회입니다.

드라마 속 히어로와 달리 저는 이 상황을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문제를 제기할 뿐입니다.

다섯 분이 사회에 돌아가서 기존과 같이 일하도록 방관할 것인가?

이 부분이 대중에게 달려있는 것이죠."


“돌아가면 전처럼 일하지 않을꺼요!"

공무원의 목소리에는 울분이 담겨있었다.


정통 금융관료였던 그는 처음부터 가상자산거래소들이 하는 짓이 뻔히 보였다. 그런데, 뭔가 하려고 할때마다 정치인들이 압력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공무원 대표를 뽑는 거라면, 대통령이 여기 있어야 한다. 전임 대통령은 법무부에서 건의한 코인거래소를 규제 방안을 묵살했고, 현재 대통령은 후보자일때부터 가상자산 육성 공약으로 유명했다. 저 교수, 변호사, 기자도 가상자산의 편에 선 자들이다. 모두 이윤 추구 때문에 그렇게 했다. 반면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 밖에 받은 게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직쏘는 차분히 대답했다.

“그런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체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일을 감시하는 대중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왜 나를 잡아온 거냐고 억울함이 몰려왔지만, 곧이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공무원은 입을 닫았다.

'이 게임은 가장 나쁜 한 명을 뽑는 것이잖아.'

저자들과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치욕이지만 저들과 함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교수님?"


자기가 호명되자 교수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 했다.

그녀는 직쏘의 국가건강론 어쩌구~를 들으면서 마음이 차분해진 상태였다. 직쏘의 말의 핵심을 보자면, 거시 경제를 감시하는 정부의 역할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 때문에.

'코인을 파는 사업자가 세균이라면, 정치인, 공무원이 망가진 백혈구쯤 되겠군.

누가 더 나쁜 거지?

이거 나름 철학적인 문제인걸.'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셋 중 한명이 최후의 한명이 될 것이었다.

'변호사는 사업자의 대리인으로 돈을 벌어왔으니까 같은 무리로 봐야할테고.

아, 기자님도 있지. 저이는 뭐지? 세균을 퍼트리는 벼룩?'

그녀는 자기가 상상한 모습이 웃겨서 입을 씰룩거렸는데 그것이 그만 직쏘의 눈에 띈 것이었다.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저는 생각을…그러니까 국가 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법’과 ‘정치’라고 하면 이념이나 제도를 떠올리게 되는데, 결국 다 사람이잖습니까.

저는 공적 소임을 맡은 적이 없었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진심이었다. 교수는 밖에 나가면 직쏘의 말을 강의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직쏘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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