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불완전한 불규칙적인
우리는 힐링과 평온을 위해 부단히 애쓴다. "갓생"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알차게 보내며 완전함을 느끼기도 하고, 취미나 여가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불안은 마치 "삶은 고통이다"라는 말처럼, 안정감이나 행복보다 훨씬 여운이 길고 자극적인 존재다.
작년부터 러닝이 꽤나 유행이었다. 출근 전, 퇴근 후 러닝클럽을 뛰며 갓생을 사는 직장인 지인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삶을 밀도 있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산책길에 혼자 걷고 있다 보면 러닝 크루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같은 티를 맞춰 입거나, 그렇지 않아도 소속감이 느껴지는 그들의 뜀박질은 함께하고 싶다는 유혹이 되기에 충분했다. 한 번 뛰어볼까 생각이 들어 러닝클럽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뛰지 않았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모임의 규칙적이고 성실한 루틴이 유동적이고 충동적으로 걷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둘째, 맘껏 한눈팔고 싶었다. 러닝을 하면 주로 시선은 정면에, 정신은 뛰는 행위에 몰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책을 하면 시시때때로 주제가 바뀌고 시선이 분산된다. 앞서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점이 산책의 장점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나는 그 문제와 고민을 잠시 뒤로하고 한눈을 파는 것이 산책의 진짜 매력이라고 고백한다. 날씨가 좋고 기분이 몽글몽글한 날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감상이 되고, 생각이 되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멀거니 보는 일도 부지기수다. 누군가 본다면 산책보다는 길을 잃은 사람의 주춤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다.
셋째, 불안하고 불완전한 나여도 좋은 시간이 필요했다.
러닝도 혼자 뛰는 일이지만, 산책이야말로 나의 민낯 그 자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어느 늦은 오후 나와 같은 산책러와 눈이 마주쳤던 경험 때문이었다. 그의 산책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발걸음도 꽤나 산만했고 어딘가 여유롭고 정처 없어 보였다. 그를 인식한 건 그와 같은 것을 보며 감탄했을 때였다. 누군가는 로맨스 장르의 첫 장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우연이었지만, 사실 그 순간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거울을 본 심정에 가까웠다. "아, 눈곱이 꼈네." 같은 감상. 미처 단장하지 못한 몰골과 정신으로 잔디에 있는 고양이를 보고 웃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해 보라. 뒷걸음질 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엇갈려 걸으며 생각했다. 이래서 러닝 모임은 있어도 산책 모임은 없는 걸까. 산책은 서로 각자의 시선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는 일이다. 만약 그걸 모여서 한다면, 우리는 서로 바보 같은 표정을 내비쳐야 한다. 모니터를 보며 웃다가, 별안간 꺼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본 적이 있다면 어떤 표정인지 잘 알 것이다.
해서, 오늘도 충동적으로, 유동적으로 걷는다. 때로는 고민을 줄이기 위해, 때로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때로는 그냥 한눈을 팔기 위해. 그렇게 걷는 산책은 내게 '한눈팔아도 되는 일'이다. 집중하지 않아도, 완전하지 않아도, 뭔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불안이 나를 떠나지 않더라도, 그 곁에서 나는 느슨하게 걷는다. 오늘도 충분히, 나답게.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속에서, 나는 오히려 한눈팔며 걷는 산책에서 진짜 쉼과 나다움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