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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부러져도 산책

좋아서 하는 일

by 몽삶

산책에 대한 기록을 쓰게 된 이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걷는 나를 발견한 하나의 소소한 사건. 일상이자 강박인 의식과 같은 행위.

나에게 산책은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영원히 시작되지 않는 커피와 비슷하다.

걷지 않으면 생각이 돌아가지 않는다.

불가피한 일상이 된 산책은 거대한 일부라 갈 길이 급하고 여유가 없을 때는 꼭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모양의 내가' 혹처럼 불편하기도 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강박이 되어서

한시가 급한 일도 굳이 돌아가는 나를 보며

'이게 다 습관을 잘못 들인 탓'이라고

어기적거리는 그림자를 끌고 걷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여유만만이라, "넌 참 어떤 상황에서도 급하지 않고 여유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애석하게도 나는 대체로 여유가 없고 급급한 삶을 산다.

항상 쫓기고, 늦지 않으려 애쓰고,꾸역꾸역,가까스로, 보통이라 하는 선에 들어보려 무던히다.

그걸 감추려 시작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걷는 행위는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니까.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내 일상에, 작게나마 보상이 된다. "요즘은 어때? 잘 되고 있어?"라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하고 있어."라는 말뿐.

일단 하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를 클라이맥스를 향해 끝없이 오르는 등산객 같기도 하고, 결승선을 향해 뛰는 마라토너 같기도 하다. 등산은 정상의 순간이 있고, 마라톤은 결승점이 있다. 둘 다 조금은 버겁고 지친다.

그래서 나는 일을 산책에 비유한다.

산책에는 목적이 없다. 방향이 전부다.

걷는다는 '동사' 하나면 완성되는 일.

어디서, 언제 끝내도 괜찮은 일. 그래서 쉽게 포기가 안되는 일. "산책 중이야." 그 말 하나로 충분한 세계.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의 속도다.


발목이 부러져도 걷는 이유는 산책이 좋아서다.

그치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의 이유는 좋아서다.

일도 취미도 생활도 사람도 어느 곳에서 지속되는 나의 삶의 루틴도 좋아서다.

발목이 더디게 붙고 영원히 안 붙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보다 산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늘 이긴 셈이다.

이성적으로나 확률적으로나 희박한 가능성을 선택을 하는 삶도 결국 좋다는 감정이 늘 이긴 선택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해봐야 아는 일이지만, 후회보단 최선이고 불안보단 흥미로운 걸 보면,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을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발목이 부러져도 산책'을 하는 나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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