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로 걷는 법을 다시 배우며, 나이와 배움에 대한 생각
- 도대체 언제까지 배워야 할까.
- 죽을 때까지?
- 끔찍하네. 수능이 인생에서 가장 빡센 공부인 줄 알았는데.
- 쉬웠네.
- 쉬웠어.
대학 졸업 후 친구와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 카페 마감 시간에 맞춰 쫓기든 귀가하며 나눈 대화였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들은 수능과 함께 씻겨가고, 성인이 되면 무용하다는 사람도 있고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들이 최후의 상식이 되어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중학교 때 배운 ‘요오드’가 최근 교육과정에선 ‘아이오딘’으로 불린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사람으로서 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중고등학생 때 배운 과학 상식이 멈춰 있다 해도, 사회생활을 하고 새로운 일에 필요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다. 그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배우고 뇌는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배움의 정의는 한정된 뇌 용량에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나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건 새로움 정보의 습득뿐 아니라 삶을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숨 쉬는 법’을 배운다.
천장만 보던 신생아가 백일 남짓 된 시점에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네발로 기어다니며, 무언가 짚고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1년이 조금 지나면 마침내 이족보행을 위해 바닥을 딛고 두 발로 우뚝 선다.
흔들거리는 다리를 한 발씩 떼어 걸음을 옮기면 최초의 걷기가 된다.
(기록 왕인 엄마 덕에 내 최초의 걸음은 열네 발자욱이었다.)
이렇게 배움은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의 여정이자 과정이자 기록인 셈이다.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배우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다.
본능적으로 배움을 싫어한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최애 조합, 게임 캐릭터의 연성과 같이
열정과 애정이 들어간 무엇에 분명한 배움을 실행 중인 게 인간이다.
배움은 평생이라고 확신하게 된 경험은 ‘허리디스크’를 통한 ‘서른 살의 걸음마’였다.
이십 대 후반, 오피스텔의 통창을 바라보며 멍 때리던 나는 스스로 재앙을 불러오고 있었다.
하루 열다섯 시간씩 오기로, 열정으로 앉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허리의 안부는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허리가 점점 어긋나면서, 서 있기만 해도 뻐근함이 느껴졌고,
재채기 한 번에도 온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제야 심각성을 깨닫고 척추 병원을 찾았지만, 맞았던 통증 차단 주사는 되레 독이 되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 통증만 막아줄 뿐, 나는 다시 열다섯 시간씩 앉아 있었고,
허리 스트레칭이라며 무리하게 늘렸던 동작들이 오히려 허리를 더 망가뜨렸다.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다.
세수를 하다 허리를 펴는 순간,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반신이 말을 듣지 않았다.
꿈쩍도 않는 다리를 두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상체의 힘만으로 겨우 기어 나와 침대에 누운 순간, 사태의 심각성이 온전히 와닿았다.
병원에 가야 했다. 아니,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여기서 하나의 배움.
자취를 하면 핸드폰을 항시 곁에 두어야 한다.
멀찍이 떨어진 핸드폰을 가지러 다시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엄청난 통증에 애타게 시리를 불렀다.
- 시리야.. 119 불러줘.
구급대원이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기 전까지.
인생에 가장 무서운 상상이 몰아쳤던 시간이었다. 다시는 걷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그동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리석음과 후회가.. 너무 늦었나 싶은 마음에 눈물이 줄줄 났다.
-이대로 못 걸으면 어쩌지.
- 나 이제 서른인데
그동안 벌써 서른이라며 늙었다고 자책하던 마음이 돌아섰다.
30년 동안 두 다리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지..디스크 수술을 하고, 허리의 소중함. 허리의 위대함. 원앤온리 허리를 깨닫고.
내 경제적 자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의자와. 모션 데스크 책상을 샀다.
그리고 걷는 법을 다시 배웠다.
아프지 않고 허리를 지탱할 코어를 키우는 걷기.
전문가 선생님들의 유투브를 보고 그대로 공원에서 동작별로 끊어 걸었다.
걷기는 온몸을 쓴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기 전에 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에 있는 준둔근을 쓴다.
처음으로 생각을 하며 걸어보니 걸음의 메커니즘은 단순하지 않다.
발을 딛기 전에 온몸의 근육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 못한다.
대충 걸으면. 앞서 말한 허리를 잃고, 중심을 잃고, 건강보다 피곤이 먼저 온다.
뒤꿈치에 실린 힘이 발가락을 지날 때 한 호흡.
상체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게 그러나 팔에 힘을 주고 뒤로 당기며 공기의 저항을 밀어낸다.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얻는다.
태어나 뒤집기, 배밀기, 기어 다니기, 짚고 일어서기를 하는 이유가 이 모든 걷기의 초석이었음을
서른에 다시 깨달았다.
걷기를 다시 배우면서 내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기도,
앞으로 어떻게 걸을 것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걷는다는 건 어디론가 향한다는 말이다. 걸음이 이어지면 길이 된다.
배움에 때가 없다는 고루한 표현에 동의한다.
앞서 말한, 배움이 삶을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의견에 덧붙여.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느냐의 고민을, 배움을 통해 찾아간다면 배움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서른에 걷는 법을 다시 배우고,
산책을 취미로 가지고 더 건강하고 오래 앉아 있는 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