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보다는 둘이 좋아
친구가 생겼다. 하나에서 둘이 되니 그녀가 자꾸만 들여다본다. 신기한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린다. 늘 데면데면하더니 요새는 심지어는 혼잣말도 한다. 아니,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친구한테 하는 것도 같다. 실없는 사람처럼 소리 내어 감탄하고 웃기도 한다.
친구가 내 곁에 올 때는 여리디 여린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서 저 아이도 금방 가겠거니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집에 오는 식물들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다. 그녀도 매양 무심하지는 않아 정성을 들이는 것 같은데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어느새 나는 이 집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질긴 생명력을 타고난 덕분이다. 그녀도 꽃 한번 피우지 않은 날 버리지 않았다. 잘 버티며 느릿느릿 새잎을 틔우다 보니 이 집에 온 지 벌써 오 년 째다. 내 곁에 그저 책이나 리모컨, 빨래뿐이었는데 같은 동족이 오고부터 힘이 난다. 살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 그녀도 전에 없이 조심스럽고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우리를 바라본다. 비 온 뒤 죽순처럼 쑥쑥 자라는 친구 덕분이다.
그녀의 관심이 이제는 우리를 지나 건너편 호접란과 금전수에까지 미치고 있다. 잎과 줄기에 생기가 도는 게 멀리서도 보인다. 누런 잎을 하나씩 떨어뜨려 안타깝던 금전수였는데 며칠 전부터 뾰족뾰족 붓대 같은 새순을 내밀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집이 없었다. 지금은 흙이 되었을 또 다른 금전수 아래 세를 든 신세였다. 그런 내게 온전한 집이 생긴 건 그 금전수가 가고 나서다. 그녀가 큰 화분 중앙에 나를 들어앉혔다. 화원 주인은 이 집에 금전수 화분을 보내며 “가서 잘 자라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들은 건 자라라는 말이 아니라 버티라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즈음 내 몸에서 새로 나온 잎이 아침햇살을 받아 빛나는 걸 보고 있으면 막 세수한 아기 얼굴 같다. 어느 날은 방금 닦은 거울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도 한다. 지난번엔 모여 난 작은 잎이 별처럼 보이더니 어느새 크림색 한지 부채가 되어 있다. 이제 지난날의 내가 아니다.
어느 날 그녀가 내 몸에서 나온 새잎을 보더니 ‘세상에’를 외쳤다. 혼자였을 때도 줄기를 뻗고 잎을 키웠는데, 요즘엔 내가 봐도 조금 다르긴 하다. 올 때는 키가 작았던 친구가 거침없이 줄기를 뻗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힘을 모았나 보다. 곁에 나와 같은 누군가 있다는 게 힘이 된다. 금전수 그늘의 아늑함과는 다른 느낌이다.
“오 년쯤 되었으니, 꽃도 한 번쯤 피어주면 좋겠다.” 오늘은 그녀가 내게 대놓고 말한다. 그러고는 바로 “염치없는 바람이지”를 후렴구로 날리며 민망한 생각을 덮는 눈치다. 어제 ‘호야 키우는 방법’을 찾아보더니 꽃 사진도 본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오늘도 우리는 병아리 부리만 한 새잎을 하나씩 틔워냈다. 그녀가 물을 주고 영양제까지 꽂아놓더니 우리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 바로 전화가 왔다. “우리 집 호야의 호好시절은 지금부터인가 봐.”로 시작한 통화가 한참 이어졌다.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온 건 그녀의 친구와 친구의 동생이었나 보다. 같은 화원에서 온 우리, 그리움을 품고 고독한 시간을 버텼더니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이 찾아왔다.
“버텨줘서 고맙다.” 그녀가 내 가장 오래된 잎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꽃을 피우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로 들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자기 가슴에 대고 토닥토닥했다. 내가 몸으로 버틸 때 그녀는 마음으로 버텼나 보다. 갑자기 내가 그녀의 버팀목이라도 된 것처럼, 되었던 것처럼 뿌듯해졌다.
지금부터는 나와 그녀의 호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