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이 그리울 때
한나절을 개나리 같은 초등학생들과 보냈더니, 꽃을 보러 가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쯤 앵초와 피나물꽃이 필 시기다. 마음이 급해졌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수목원으로 향했다. 잔디를 하얗게 수놓은 봄맞이를 보며 느릅나무 길로 들어섰다. 쥐똥나무 아래 큰구슬붕이부터 찾아보고 야생화밭을 돌아 나오다 금붓꽃 한 무더기에 마음을 빼앗겨 주저앉았다. 그때 내 곁을 지나던 한 분이 여기가 수목원에서 제일 높은 동산이 맞느냐고 물었다. ‘동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내게 동산은 ‘그설미’뿐이다.
개울물에 녹아내리는 얼음장이 솜사탕 같다. 그 부드러움에 기척이라도 하듯 주머니 속 손전화기가 파르르 떤다. 봄소식을 알리는 남쪽 친구의 목소리가 들떠 있다. 그곳엔 벌써 꽃도 피었다는 전갈이다. 이곳은 부지런한 생강나무조차도 아직 꽃 필 기미가 없다고 하자 어디냐고 묻는다. 집 근처 동산에 오르는 길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큰 산으로 연결되는 작은 동산 몇 개 넘고 돌아갈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동안은 산에 간다고 했는데 동산이라 해놓고 보니 적적해 보이던 산이 갑자기 친좁게* 지내던 벗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동산이란 말이 참 좋다. 내게 동산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올라도 되는 낮은 언덕 같은 산이다. 그런가 하면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선사할 것만 같은 작은 산이기도 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동쪽에 있는 산이어서 매일 아침 사립문만 열고 나가면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산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은 그설미* 덕분이다.
그설미는 내가 나고 자란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숲정이*이다. 집 앞의 한길을 건너 짧은 논틀길*을 걸어 들어간 곳에서 시작되는 작은 산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그설미에서 우리는 송충이도 잡고 솔가리*를 긁어모으고 솔방울을 줍기도 했다. 비 온 다음이면 버섯 따는 할머니를 따라가 빗물 젖은 솔잎 향을 온몸에 적시며 돌아온 적도 있다. 그설미는 쌍둥이처럼 나뉜 몇 개의 낮은 벼랑 따라 주인도 달랐다. 그 산에서 우리는 남의 것인 땔나무를 탐내기도 했다.
조선 솔보다 왜 솔이 많은 그곳엔 황금빛 솔가리가 수북했다. 바삭하게 마른 솔가리와 삭정이는 불도 괄고 연기도 적어서 땔감으로 안성맞춤이다. 나무를 하러 가면 먼저 바닥에 새끼줄을 두 가닥으로 늘어놓은 다음 그 위에 삭정이를 주워와 가위 질러 깔아 놓는다. 그리고 손 갈퀴로 거둬들인 솔가리를 차곡차곡 쌓은 후 나뭇가지를 덮고 새끼줄로 묶는다. 가끔은 긁어모은 솔가리를 비료 부대에 담아 머리에 이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씩 나뭇단을 제대로 매조지기*도 전에 한길 건너편 마을에서 고함이 들릴 때가 있다. 몰래 하는 나무이니 건넛마을이 보일 리 없는데도 당연히 이쪽을 향한 눈씨*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주인이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허둥지둥 대강 묶은 나뭇단을 머리에 이고 집 가까운 옥거리 다리를 놔두고 먼 길을 에돌아 종종걸음을 쳤다. 어떤 날은 맨몸만 집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날들의 기억은 대개 세 꼭짓점을 이룬다. 나무하다 말고 해거름을 맞은 노을빛에 반해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나와, 내 산 나무가 축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산 주인과 그런 우리를 붉게 물들이던 저물녘 마루*다. 저마다의 시선이 물고 물리는 삼각 꼭짓점 안에서 그설미는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우리가 동산을 마당처럼 누볐다면 한밤중이면 귀신들이 나와 장난친다는 옥거리 다리 앞은 그설미의 마당이었다. 다리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고 작은 논 몇 개를 사이에 두고 신도로와 구도로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다. 내가 택하는 길은 작은 시내를 끼고 있는 그설미의 마당 같은 옛길이다. 고마리와 여뀌가 지천인 내를 건너면 구불거리는 몇 뼘 되지 않을 논틀길을 껴안은 동산이 엎드려 있다. 동산의 팔뚝 같은 그 길엔 그령이 무성하고 옻나무와 뽕나무 버드나무가 뒤섞인 틈을 비집고 아까시나무가 심술부리듯 섞여 있다. 그 호젓한 샛길로 들어갈 때면 나들이 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동산의 마당 같은 그 길로 들어서거나 나서는 것에 따라 그설미 자락도 꼬리가 되고 머리가 되어서 멀어지거나 다가오거나 했다.
동산 끝에는 삼태기 닮은 바위가 있었다. 커다란 바위 앞부분에는 자로 잰 것 같은 사각형의 패인 자국이 있었다. 패였다기보다는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아이들 열댓 명이 서도 될 넓은 크기다. 상상력 풍부한 아이들은 바위틈에 뱀이 득실거린다고도 했고 육이오 때 인민군이 군인들을 세워놓고 죽인 곳이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다. 우리는 설마, 하면서도 그곳을 지날 때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곤 했다. 나무를 하러 가도 그 끝자락까지는 절대 가지 않았다. 그설미의 입 같았던 그곳엔 어쩌면 동산을 지키는 수피아*가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장정처럼 메숲지던* 동산이 큰 태풍이 지나간 뒤 갑자기 민둥민둥 대머리 산이 되어버렸다. 소나무가 많았던 그 산은 내 몸에 달고 다니는 그림자와 같았다. 그런데 나이 먹을수록 맘먹고 해를 등지고 서야만 발견하는 그림자와 달리 그설미는 불쑥불쑥 찾아와 마음속에 똬리를 튼다.
얼마 전에 다녀온 찜질방에서 생솔가지 타는 냇내*를 맡는 순간이 그랬다. 생솔이 제 몸 태우며 풀어내는 연기를 눈감고 코로 들이마시며 어린 시절의 작은 동산을 떠올렸다. 산길을 걷다가 수북하게 쌓인 솔가리를 밟게 될 때도 그 작은 산이 먼저 생각나곤 한다. 어쩌면 그설미는 웨일스의 피넌 가루* 못지않은 나만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동산인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와서도 보이지 않는 탯줄처럼 남아있는 작은 산. 그 산에서의 경험과 추억들은 지금도 힘들 때 기대는 언덕이 되고 앞으로만 달리다 뒤돌아섰을 때 쉴 수 있는 여유를 안겨준다.
이젠 솔가리 긁고 삭정이 주울 일도 없으며 송충이 잡고 버섯 따러 갈 일은 더더구나 없다. 그런데도 그설미가 내 마음속에서 푸른 솔방울처럼 자꾸자꾸 자란다. 한편으로는 비 온 다음 솔 향을 맡듯 코를 발름거리게도 된다. 그것은 어려서 먹은 음식을 잊지 못하는 입맛처럼 몸에도 마음속에도 자연스럽게 각인된 어린 시절 추억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너럭바위와 바위너설*이 많았던 당산만도 못했던 동산이 내 마음속에 큰 뫼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으내 떨어진 갈잎이 사람 발길에 의해 먼지로 피어나는 이른 봄의 오솔길, 참나무 길을 걸으며 솔숲 우거졌던 그 옛날의 그설미를 떠올린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나이의 다리를 건너고 있으나 그렇게 잘 생기지도 못한 데다 속도 여물지 못하여 아직 도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잠든 봄 깨우는 물 같은 부드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아니,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동산 같은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늘은 함께 자란 피붙이만큼이나 그 작은 산이 애틋하게 그립다.
2012. 봄
친좁게 : 사이가 매우 가까운.
그설미 : 해미면 근교에 있는 작은 동산 이름.
숲정이 : 마을 부근의 숲.
논틀길 : 논두렁 위로 꼬불꼬불하게 난 좁은 길.
솔가리 : 솔잎.
매조지다 : 끝을 단단히 하여 마무리하다.
눈씨 : 쏘아보는 시선의 힘.
마루 : 하늘을 뜻하는 순우리말.
수피아 : 요정의 순우리말.
메숲지다 : 산에 나무가 울창하다.
냇내 : 연기의 냄새.
피넌 가루 : 영국 웨일스 지방에 있는 작은 산으로 영화 <잉글리시맨>에 나옴.
바위너설 : 바위가 삐죽삐죽 내밀어 위험한 곳.
도사리 : 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