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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Apr 15. 2019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자기소개 글을 통해 생긴 일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정말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향적인 성향이 너무 강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직업 중의 하나가 교육자였다. 여러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교육자로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교육자로 살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시발점은 2001년에 만들어 운영한 자바지기라는 커뮤니티 때문이다. 자바지기 커뮤니티는 프로그래밍을 시작하는 초보 개발자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프로그래밍 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프로그래밍 관련 커뮤니티였다. 

지금 보니 정말 촌스럽다. 지금의 웹 서비스와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한편으로는 정감이 가지 않나?

지식 공유의 즐거움

자바지기 커뮤니티는 내가 가진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내가 학습한 지식을 잘 정리해 추후에도 활용하면 좋겠다.'가 일차 목적이었다. 그 당시는 블로그와 같은 서비스도 없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 학습도 하면서 지식 저장소 역할도 하고 싶어 만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의 시간을 커뮤니티 운영에 빠져 있다 보니 내 프로그래밍 실력은 다른 개발자에 비해 자연스럽게 향상되어 있었다. 수많은 샘플 소스를 만들고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다 보니 자바 소스코드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능력이 특히 많이 향상되었다. "도대체 아무 돈도 되지 않는 남 좋은 일은 뭐하러 하느냐?"라고 아내가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을 투자한 만큼 나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모든 활동이 남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활동이라는 것을 경력 초반에 느낀 것은 정말 큰 소득이다.


성장과 더불어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은 지식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삶의 의미를 주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경력 초반에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느끼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 교육자의 길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프라인 소통의 즐거움

내향적인 성향 때문에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학교까지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활달하게 지내는 성격이었는데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작은 시골 마을에서 큰 도시로 유학을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렸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성격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고등학교 시절의 영향이 남아 있었다.


4년 동안 온라인 활동만 열심히 했다.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서서히 지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욱하는 마음(보통 술 먹은 다음 날 이런 행동을 한다. 술이 문제다.)으로 오프라인 스터디를 제안하고 시작했다. 갑자기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신청해 대상자를 선별하고, 스터디 커리큘럼을 짜고, 장소를 물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스터디. 스터디는 대성공이었다. 다들 얼마나 활발하게 토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지 도저히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새로운 기술이 하나 소개될 때마다 그동안 회사 내에서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웠던 의견과 아이디어들이 마구 쏟아졌다. 스터디를 최초 기획할 때는 이 정도까지 토론이 활성화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주 간격으로 스터디를 진행했는데 2주 동안 보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인지 그 사이사이에 벙개도 자주 했다. 지금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친해지고 편해지는 친구들을 만난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나의 제안에 의해 만들어진 모임이 이렇게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이 더 컸으리라. 스터디를 하는 기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으며, 스터디 날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내와 연애를 한 이후로 이 같은 설렘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스터디가 있는 날 밝게 웃으면서 출근하는 나를 보면 아내가 질투를 할 정도였다.



스터디가 끝난 후 가족 단위 MT까지 갔다. 위 사진의 두 커플은 같은 날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고, 현재 4명은 우아한형제들, 2명은 라인에서 동료로 같이 일하고 있다.


오프라인을 통한 소통이 얼마나 즐거운지, 삶의 동력이 되는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교육자의 길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식을 공유하는 즐거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한 소통의 즐거움은 결과적으로 나를 성장시키고,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지식을 공유하는 것의 즐거움으로 인해 책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주었으며, 여러 사람 앞에서 내가 가진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었다. 이런 활동들은 눈덩이를 굴리듯이 점점 더 커져 직장 생활을 하며 몇 권의 책을 쓰고 여러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마음먹기까지

개발자로 10년 이상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즐거움보다는 마음속 한편으로 공허함이 커져갈 때가 많았다. 그때의 심정을 딱히 뭐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삶의 목표, 개발자로서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프로그래밍 역량을 쌓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보다 특정 회사의 부만 키우고, 빈부 격차를 키우는 일만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허무함이 밀려들 때마다 일하는 것이 싫어졌다.


마흔을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NHN(현재 네이버)에서 NEXT라는 프로그래밍 교육 기관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엇인가 마음 한편으로 "교육자의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경험이 많은 개발자를 교육자로 뽑는다고 하니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지원했다. 운 좋게 합격했다. NEXT가 끝날 때까지 프로그래밍 관련 교수 중 비전공자가 나 혼자였던 것을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


합격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10년 이상을 쌓아온 개발자의 길을 버리고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 또한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험 또한 너무 즐거웠다. 개발자의 길도 재미있는데 그런 경험을 버리고 교육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 즐거운 삶은 아닐 것 같았다.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진정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자의 삶을 지지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 말은 "네가 개발자로 사는 것도 어울리지만 그보다 교육자로 사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네가 강의를 하고, 지식을 전달할 때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였다. 이런 피드백을 준 친구들 모두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친구들이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말에 용기를 얻어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지만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후회도 많이 하고
개발자로 돌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기기 전까지 교육자로 살 계획이다.



교육자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의도하지는 않았다. 여러 우연이 겹치면서 교육자로 살기 전부터 교육자로 살기 위한 연습을 참 많이 했다. 충분한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 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개발자라는 직업도 참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 힘든 선택이 될 수 있다.


혹시라도 가끔씩 밀려드는 허무함,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다면 교육자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교육이라는 활동 자체는 프로그래밍보다 재미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삶의 의미와 보람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를 통해 누군가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한 사람이라도 충분하다.


두려운가? 괜찮다. 도전했다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 생각하면 다시 개발자로 복귀하면 된다. 다른 업계에 비해 소프트웨어 업계는 구인난이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개발자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교육자로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경력이 많고,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면 교육자로 살아간 시간은 정말 소중한 자신이 될 것이다. 교육자로 살면서 고민하는 많은 일들이 시니어 개발자, 리더가 고민해야 할 부분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맞다. 교육자로 살아보면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업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르게 접근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교육자로 살아보는 것이 개발자의 삶과 경력 관리에 있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6년이 넘어 7년이 되어가고 있다. 경력의 3분의 1 이상을 교육자로 살고 있다. 개발자로 살다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선택한 후 지난 6년 동안 고민하고 경험했던 흔적들, 점진적으로 변화한 생각들, 앞으로 꿈꾸는 목표들에 대해 몇 편의 연속 글로 정리해 보려 한다. 좋은 SW 교육자를 키워라.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역량 있는 개발자를 키우려면 좋은 교육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발자에서 교육자로 도전하려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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