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떠올리며
나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감독 잘못 만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한 여배우가 자신을 망가뜨린 감독과 사랑에 빠지고 감독의 동네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들 역시 모두가 겉보기엔 실패자다.
인생 후반기에 딱히 명함 한 장 내밀 무언가가 없는 백수건달에 찌질해 보이는 그들...
그녀에게 감독이 어디가 좋냐고 그들이 물어보자 그녀가 대답한다.
망가져서 사랑한다고...
망가지면 큰일 날줄 알고 벌벌 떨면서 살았는데 이곳에서 망가진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고, 잘 지내는 것을 보며 망가져도 괜찮은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나는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망가져도 괜찮은 거구나
밧줄 위에 누군가가 위태롭게 서 있다.
혹시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떨어질까 바들바들 다리에 힘을 주며 겨우 버티고 서있다.
그렇게 애처롭게 메달려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무언가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빛 하늘도, 추억이 묻어 있는 바람도, 자유로운 공기, 누군가의 섬세한 친절도...
그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유일한 존재 이유가 되어 버린다.
사실 망가지는 것보다 망가질까 봐 두려운 것이 더욱 큰 공포 일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막상 망가져보니까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처참하지는 않더라.
혹시 학창 시절에 전교 꼴찌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뭐 그럴만한 사정이야 있었지만, 나도 놀라고 주변도 놀라고 잠깐 소란스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뭐 다시 일상은 돌아가고 괜찮더라.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 너무 불편할 것 같은가?
상당 부분 버려야 하는 짐들이 생기기고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적응은 되고 삶은 이어지고 살아지더라.
이 사람 아니면 못 살 것 같다고 울고불고 고통에 식음을 전폐하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밥도 먹게 되고 또 당황스러울 만큼 사랑이란 놈이 다시 오더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수용 가능한 내 상태에서 벗어남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 어려움, 성적, 이별, 구조조정, 질병...
삶은 예측 불가능하게 우리를 밧줄에서 떨어뜨린다.
그러나 혹시 추락한다 해도 어쩌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내가 있는 한, 나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완전히 망가진 것은 없다.
떨어진 바로 그곳에서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밧줄 위에서 바둥대느라 미처 몰랐던 마음이 있더라.
작은 즐거움과 소소한 만족이란 것이 그곳에도 존재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