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인사말에서 본 일본문화의 특징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한국인일지라도, 일본어 인사 "콘니치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본은 미우나 고우나 수 천년을 이웃국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온 만큼, 많은 분들이 간단한 일본어 인사 등은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콘니치와" "콘방와" "사요나라" 등은 모두 문장의 일부만 이야기하고, 모두 생략한 줄임말이라는 것은 대부분 모를 것이다. 각 인사말들의 유래를 들어보면, 모두들 "엥?"이라고 생각할 만큼 허무한 줄임말이다. 그래도, 이러한 인사말들의 유래나 쓰임새를 보면, 일본의 문화 자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모든 걸 생략해서 말하는 것이 일본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인도네시아어의 인사는 패턴이 너무 똑같다. 뭐든 "축하한다"라는 의미다. 인도네시아어에서 인사말을 왜 모두 "축하한다"라는 의미를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사말의 종류와 의미만 간단히 소개하겠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일본으로 가 보자.
1. 일본어 인사의 의미와 유래
1) 아침인사 "오하요우 고쟈이마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일본어의 아침인사는 "오하요우 고쟈이마스"이다. 대부분의 일본어 인사는 한자가 있으나, 일상적으로 히라가나로 쓰는 경우가 많다. "오하요우 고쟈이마스"를 한자로 쓰면 빠를 조를 사용해서 "お早うございます"가 된다. 직역하면 "빠르네요" "이르네요"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은 일본 전통 연극인 카부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카부키 배우들은 공연 전에 준비를 위해 일찍 무대에 도착해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는데, 직급이 높은 배우가 먼저 오고, 직급이 낮은 배우나 스테프가 늦게 오면, "아이고, 참 빨리도 오셨구먼~" 하면서 비꼬던 표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말도 "존예" 같은 요즘 표현은 영어의 "Fuxxking Great"처럼 옛날에는 욕이었던 것이 현대에서는 오히려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지만, 일본어에는 유독 이런 "개과천선"한 표현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오하요우 고쟈이마스"가 카부키 배우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러고 보니 아직도 일본 연예인들은 밤에 만나도 "오하요우 고쟈이마스"로 인사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 하니, 카부키에서 현대의 연예인으로 이어진 인사 습관이 아닌가 싶다.
2) 해지기 전까지 인사 "콘니치와" (こんにちは) & 밤 인사 "콘방와" (こんばんは)
가장 많은 한국인이 알고 있을 일본어는 아마도 "콘니치와" "스미마셍" "사요나라"가 아닐까? 그중 하나인 "콘니치와"는 대략 오전 11시에서 해지기 전까지 쓰는 인사말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は"는 원래 발음은 "하"이지만, 유독 인사말인 "콘니치와" 와 "콘방와"에서만 "와"로 발음한다. 그래서, 일부 일본인은 원래 "와"발음인 히라가나인 "わ"를 써서 "こんにちわ"로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쓰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바로 찍혀버린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콘니치와도 "今日は"라는 한자가 있지만, 대부분 히라가나로 쓴다. 한자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은 이것이 "금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 것이다. 그렇다. "콘니치와"를 직역하면 "금일은~" "오늘은~"이라는 뜻이다.
"오늘은~ (기분 어떠세요?)"
"오늘은~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래요)"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네요)"
"오늘은~ (가다가 자빠지세요)"
기타 등등...
말하자면, 인사하는 사람은 "오늘은~"이라고 운만 띄우고, 나머지는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뜻이다.
영어로 하면 "Today~"까지 말하고 끊어버리는 샘인데, 직설적인 서양인들은 당장 "So, what?!"이라고 반문할 것이다.
밤에 하는 인사인 "콘방와~" 도 "今晩は"로서, 기본적으로 "오늘 밤은~" 하고 운만 띄우고, 나머지는 상대방에 해석을 맡기는 것이다. (오늘 밤에는 뭘 하자는 것일까... ㅋㅋ)
3) 헤어질 때 쓰는 "사요나라" (さようなら)
"사요나라"는 사실 일본어 표기를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사요우나라"가 맞다. "사요우나라"도 "左様なら"라는 한자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이걸 한자를 섞어서 쓰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左様なら"를 직역하면 "왼쪽이라면" 이라는 진짜 이상한 표현이 되는데, "左様"는 원래 "그렇게"라는 의미의 "然様(사요우)" 가 어쩌다 왼쪽이라는 한자(佐)로 변형된 것이라 한다.
"사요우"라는 표현은 현대 일본어에서 "左様でございます"(사요우데 고쟈이마스) 정도밖에 안 쓰는데, 비지니스상이나, 호텔 등의 고급 서비스 직종 종사자가 상대방의 말에 "맞습니다" "그렇습니다"라는 동의를 할 때 쓰이는 말이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결국 "사요우나라"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그러하다면~" "그럼~" "그러면~"정도가 된다. 뭐가 "그러면~" 이란 말인가... 앞뒤 문맥도 없이... 우리도 "그럼, 이만~"이라고 "이만" 정도는 붙이는데 그런 것도 없다 ㅋㅋㅋ.
4) 사과할 때, 부탁할 때, 감사할 때... 등등등에 쓰이는 "스미마셍" (すみません)
예전에 미국 영화를 일본자막으로 볼 때 신기하다고 느낀 장면이 있었다. 분명 배우는 "Thank you!"라고 했는데, 일본어 자막은 "すみません"이었던 것이다. 보통 "스미마셍"은 I am sorry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지만, 사과할 때만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때로는 Thank you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Please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Excuse me가 되기도 하고 암튼 전천후 표현이다.
"스미마셍"의 한자어 표현은 "済みません"인데, 이 한자 표현은 위의 다른 인사어 보다는 종종 보는 것 같다. "済む"는 개운하다, 맑다, 해결되다, 끝나다 등등등에 쓰이는 표현인데, 결국 스미마셍은
"(이런 말 드리기가 참 심적으로) 개운하지 않네요"
"(이렇게 좋은 걸 주셔서 말로는) 해결할 수가 없네요"
등등등... 결국, 감사함이나 죄송함의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해도 부족하다~ 이 정도의 뉘앙스가 된다.
에고 참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다...
5) 음식을 먹기 전에 "이따다끼마스" (いただきます)
일본인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범절 중의 하나가, 음식을 먹기 전에 합장을 하면서 "이따다끼마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합장까지야 안 하더라도, "이따다끼마스"라는 말을 안 하고 먹는 일본인은 진짜 교양 없는 인간으로 찍힌다.
"이따다끼마스"는 한자어로 "頂きます"라고 쓰는데, 직역하면 "받겠습니다"이다.
"잘 먹겠습니다"는 먹는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니, 의미가 명확한데, "받겠습니다"는 누구한테 뭘 받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이따다끼마스"는 "누구에게서"의 해석이 분분한 듯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우리의 밥상에 오르기 위해 목숨을 희생해 준 동물과 식물에게서"이다. 살짝 등골이 서늘해 지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참 신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식물에 대한 존경 외에도, 일용할 양식을 준 신에게서, 혹은 사냥, 낚시, 재배를 해준 어부나 농부에게 바치는 경의의 표시라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이것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이다.
인사와는 상관없지만, "이따다키마스" 는 "행동"도 해 줌을 받는다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일본어 초보자는 이런 표현이 너무 어려워 머리가 빙빙 돌 정도다.
예를 들어, "확인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確認します" (카쿠닌 시마스)라는 짧고 명료한 직설법도 있는데, 굳이 예의를 갖춰 쓰는 표현은
"確認させていただきます" (카쿠닌 사세떼 이따다끼마스) 인데, 직역하면 "(당신이 나에게) 확인 시킴을 받겠습니다"이다. 아주 미쳐버린다. 상대방은 시킬 마음도 없는데, 자기가 행동하면서 "시킴을 받겠다"란다...
위에서 소개한 5가지 인사말 외에도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줄임말 표현 등도 있지만, 구체적인 소개는 이 정도 하기로 하고,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의사전달이나 표현이 직설적이고 명확한지, 함축적이고 애매한지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라는 것이 있는데, 직설적이고 명확한 것은 Low Context, 함축적이고 애매한 것은 High Context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Highest Context인 국가이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일본인은 "혼네(속마음)" "타테마에(겉모습)"를 교묘하게 조절해 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저 사람 분위기 파악도 못하네" 이 정도이지만, 일본인은 "저 사람 공기를 못 읽는다(空気を読めない人間)"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떠도는 공기도 읽을 줄 알아야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이메일 같은 것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行間を読む)" 고 한다.
글의 줄과 줄 사이에는 하얀 백지밖에 없는데 거기서 뭘 읽어내야 한다는 것인가...
왜 일본인들이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서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배경은 일본인 스스로도 많이들 연구를 하는 듯하다. 그 문화적 배경이야 하나가 아니고, 아주 복합적인 이유가 있으리가 생각된다만, 그중 하나는 "사무라이"의 존재라는 것이 재미있다.
근현대가 되기 전까지, "사무라이"는 평민을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평민 입장에서는 괜히 말 한마디 잘 못하면 바로 목숨을 잃으니, 어정쩡하고 애매하게 최대한 빙빙 둘러서 책임지지 않을 표현을 썼다는 설이 있다. 어디까지나 설이다만...
일본어의 단어와 문법은 한국어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아, 한국인이 일본어를 공부하면 단기간에 상당히 수준 높은 일본어를 배우고 쓸 수가 있다. 하지만, 일본어를 능숙하게 잘 쓰는 사람도, 일본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