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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02. 2021

소원은 하나씩만

길 떠나는 소원 거북이


사람이 소원을 빌 때, 마루 밑에 있는 거북이는 그것을 찬찬히 받아 적는다. 소원을 빌었던 사람이 그날 밤에 잠이 들면, 그때 비로소 거북이가 마루 밑에서 기어나와 소원종이를 들고 집을 나선다. 소원을 들어주는 신神이 계신 달까지 가는 것이다. 


이 거북이는 당연히 사람 눈에 띄지 않고, 거북이가 걸어가는 하늘길 또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소원이 이루어지면, 아하, 거북이가 이제 달에 도착했구나 할 뿐이다.


거북이가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소원을 빌었던 사람이 만약 다른 소원으로 바꾸어 빌면, 거북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마루 밑으로 들어가 새 소원으로 고쳐 적은 다음, 소원길을 따라 다시 출발한다. 


그렇잖아도 느릿느릿 거북이가 가던 길을 되짚어와서 다시 달까지 가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은 그만큼 소원이 늦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소원은 한 가지만 빌어야 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이다.




할머니는 생전에 불심佛心이 깊으셨다. 치매로 고생하셨던 말년을 제외하면, 날짜를 지켜 절에 가시는 것을 항상 잊지 않았다. 


부처님 전前에 놓았던 엿이나 사탕을 할머니가 갖다 주시면, 그것을 그저 맨입으로 날름날름 받아먹기에 미안했던 나는 형식적인 질문을 하곤 했다. "할머니, 이번에는 무슨 소원을 빌었어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다 잘되라고, 모두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지.” 그러면 나는 또 투덜거린다. "에이, 할머니 소원은 맨날 똑같애."


손주의 이죽거림에 덧붙여 할머니는 항상 소원 거북이 이야기를 해주셨다. 에이, 그런 게 어딨냐고, 어린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쳤지만, 어스름 달빛 아래 혹시나 먼 길 떠나는 거북이가 있나 싶어 문밖을 슬쩍 내다본 적도 한두 번 있었다.




살다 보니 아쉬운 것이 많다. 그래서 바라는 것도 많아진다. 당연히 꽤나 많은 소원을 빌게 된다. 절이든, 교회든, 성당이든, 아니면 스쳐 지나는 길가에 쌓인 돌무덤이든, 염원의 대상은 제각각이다. 


이것도 잘 되게 해 달라, 저것도 잘 되게 해 달라. 어떨 때는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또 어떨 때는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달라. 소원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되짚어 보면 내가 바라는만큼 제대로 이뤄진 소원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이유가 뭘까?


오후에 난데없는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듣고, 소원 하나를 추가하려다가 문득 할머니의 소원 거북이가 생각났다. 며칠 전 기도는 지금은 어디쯤 가고 있으려나? 에라, 모르겠다. 기왕지사 거북이를 다시 한번 출발시킬 요량으로, 당분간 추가적인 소원 변경은 없다고 못을 박은 뒤에, '진짜 정말 완전 최종판 소원'을 간절히 빌어본다. 


"모두 잘되게 해 주세요. 병규의 완쾌도 포함입니다."



Image by Steve Par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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