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가독 곽 하오 대감 (1492~1547)
중종 7年 4月, 임금께서 불철주야不撤晝夜 정사政事에 열중熱中하시던 중中 요통腰痛이 발병發病하시었다.
무릇 허리는 신체身體의 중심中心이거늘, 극심極甚한 요통腰痛으로 정좌正坐하지 못하시고 정와正臥하지 못하시니 이 또한 나라의 근심謹審이었다. 어의御醫를 비롯한 전의감典醫監 소속所屬 의원醫員들이 백방百方으로 처방處方을 모색摸索하나 만약萬藥이 무효無效인지라, 결국 곽하오郭河午 대감大監께서 인근隣近 국가國家에 직접 도움을 청請하게 되었다.
대감大監의 충심忠心이 하늘을 감동感動시키어 천만다행千萬多幸으로 천축국天竺國 인도印度에 연통蓮筒이 닿으매, 천축국天竺國 최고最高의 요통腰痛 치료治療 전문가專門家를 초빙招聘하게 되니 그의 성명姓名인즉, 무하마두침발라라武河馬頭侵發羅羅 선생先生이었다. 이개월二個月의 장도長途 후後에 마침내 한양漢陽에 당도當到하니 대감大監을 위시爲始한 모두가 진심眞心으로 선생先生을 환영歡迎하였다.
선생先生께서 궁宮에 들어 옥체玉體를 살피시고 처방處方하여 치료治療하니 임금께서 이레 만에 쾌차快差하시는지라, 만백성萬百姓의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었더라. 임금께서 큰 상賞을 내리시고 선생先生의 치료治療가 요통腰痛에 즉효卽效라 칭찬하시니 전의감典醫監에서 이 치료법治療法을 일러 요가라 하였다.
요가腰哿
허리에 좋다
(腰 : 허리 요 哿 : 좋을 가)
선생先生 또한 성은聖恩에 감읍感泣하여 어전御殿에 나아가 예禮를 갖추고 엎드려 말하되, “소인, 한 가지 청請이 있나이다.” 하니 임금께서 기꺼이 청문聽聞하시었다. 선생先生이 아뢰기를, “소인의 수명壽命 유한有限하나 치료법治療法은 무한無限하기를 바라건대, 조선 백성百姓은 수작手作(손기술)이 비범非凡하다 하였으니 소인의 가진 재주 중中 손을 사용하는 치료법治療法을 전수傳受하기를 청請하나이다.” 하였다.
또한 선생先生께서 대소신료大小臣僚 전前에 나아가 평소平素 요통腰痛과 근육통筋肉痛 및 각종各種 통증痛症으로 고생苦生하는 이를 확인確認하니 그 수數가 기십幾十이라. 전원全員 일기日記에 적고 직접 치료시범治療示範을 보이되, 선생先生의 손길 닿아 낫지 않는 자者 없고, 선생先生의 손길을 기다리지 못해 먼저 기립起立하는 자者 없더라. 지긋지긋한 관절통關節痛을 캐낸 좌중座中이 감탄感歎하고 치하致賀하되 선생先生의 양수치료법兩手治療法을 특징特徵하여 수포추마사지라 함이었다.
수포추마사지手捕推摩四肢
손으로 사지를, 잡고 밀고 문지르다
(捕 : 잡을 포 推 : 밀 추 摩 : 문지를 마)
임금께서 재차 치하致賀하시고 어명御命을 내리시되 수포추마사지手捕推摩四肢가 전국팔도全國八道에 보급普及되니 이후以後로 조선에 근육통筋肉痛과 요통腰痛으로 신음呻吟하는 자者를 진정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더라.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천축국 인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 지압地押 앞으로 나서서 예를 갖추고 말하였다. “천축국이 이처럼 조선의 오랜 벗이었으나 작금 고로나로 신음하는 것이 진정 가슴 아프나이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너의 말이 정녕 옳다. 빈곤이 질병을 지배해서는 아니 될 것이니 우리 모두는 천축국을 물심양면 도와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