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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10. 2021

여보는 싫다

강은 한참 뒤에나 건널 텐데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당연히 깍듯한 존댓말을 썼다.


서로의 호칭 역시, 이름 뒤에 ‘씨’를 붙여 ‘아무개 씨’라고 했다. 만난 지 네 시간 만에 결혼 약속을 하고, 바로 다음 날부터 불타는 연애를 시작했음에도 아내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에 대한 호칭을 슬그머니 ‘오빠’로 바꾼 아내가, 이제는 자기에게 말을 놓아도 된다며 여러 번 권유했지만, 그럴수록 더 유별난 존대를 함으로써 다른 남자들과는 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내 역시 은근히 높임 받는 것을 좋아했다. 따지고 보면 속이 들여다 보이는 얄팍한 잔꾀였음이다.


말을 놓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름 아닌 첫 다툼 때문이었다.

가을 감기를 앓는다는 말을 듣고는 시간을 쪼개 직접 경동 시장까지 갔다. 정성 들여 약재를 골라 한약으로 다려 회사로 보냈더니 기대했던 칭찬은 고사하고, 왜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쓰냐는 혹평이 냉큼 돌아왔다. 섭섭함은 곧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일방적인 결별 선언이 날아왔다. 아내 쪽에서였다. 옳거니.


그것을 꼬투리로 나는 아내를 공격했다.

'그게 과연 내게 할 소리냐. 처음 만난 날에 청혼한 사람에게 함부로 던져도 될 이야기냐. 아무리 서운하고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고 두 번 더 돌아보자는 것이 우리의 약속 아니었느냐. '너'는 정말 이런 사람이었느냐. 알겠다. 마음대로 해라.'

그러면서 나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했다. 스스로 미안함을 느꼈던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내는 내게 잘못했다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화를 표현하느라 사용했던 자신에 대한 호칭과 반말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은 뒤에도 그것은 변함없었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했으며, 아내는 내게 ‘오빠’라는 호칭과 함께 때론 존댓말, 때론 끝을 흐리는 반말을 썼다. 어려운 자리에서는 더욱 각별한 주의를 했다. 나는 ‘깐돌 아빠’ 내지는 ‘진우 씨’가 되었고, 아내는 ‘깐돌 애미’가 되었다. 어른들 앞에서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몸에 붙은 벌레를 떨어내듯 몸서리를 치며 서로를 놀려댔다. 뭐어어? 진우씨이? 뭐어어? 애미이? 애먼 등짝 때리기는 덤이었다.




아들이 육 학년, 그러니까 열세 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들이 뜬금없이 물었다.

“아빠는 엄마를 존중한다면서 왜 반말을 해요?”


당황스러운 나머지, 오늘 학교에서 배운 거냐고 우선 물었다. 아니라고, 그냥 궁금하다고 했다. 답이 궁색했던 나는 그것이 친근함의 표시라며 대충 얼버무렸지만, 아들은 쉽게 수긍하려 하지 않았다. 아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들은 말했다. 은근슬쩍 제 엄마 편을 드는가 싶더니 틈을 주지 않고 이번엔 아내를 공격했다.

“엄마도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엄마의 반말도 역시 나빠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딱히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질문만 있었을 뿐 답이나 결론은 없는 채로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아들이 잠든 다음, 우리는 꽤나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도 있지만,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제 존댓말을 쓰자. 그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아내는 내가 먼저 바꾸면 자기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호칭이었다. 과연 서로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


①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② 서로의 이름에다 ‘씨’를 붙인다 : 연습 삼아 몇 번 해보았다. 어색해서 곧 포기했다.

③ 아들의 이름 뒤에 ‘~아빠, ~엄마’를 붙인다 : 자연스럽지 않고 거부감이 들었다.

④ 서양 사람들처럼 ‘허니’ 등의 애칭을 만들어 부른다 : 당장 집어치우라는 말을 동시에 했다.


나름의 노력 끝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에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과도기라서 끝을 약간 흐리는 정도의 높임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호칭 문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나마 조금 발전했다는 것이, 내가 아내를 부를 때 성씨를 붙여 ‘황 여사’라고 한다는 정도이다. 아내는 차마 나를 ‘임 선생’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결국 호칭을 포기하고, 거실에 있다가도 굳이 내게로 와서 눈을 맞춘 다음 말을 꺼낸다. 나쁘지는 않다. 어쨌거나 아내 역시 노력 중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황여사가 그랬다.

“여보라고 부르면 좀 그렇겠지... 요?”


여보? 그 말을 듣고서 우리 나이를 되짚었다. ‘여보’. 언젠가는 서로를 그렇게 부르게 되겠지만 아직은 싫다. 공연히 늙어 보인다. 하지만 일단 메모는 해 두었다. 차라리 서로의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할까?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서로의 꽃이 되었다고 했는데, 꽃이 될 수 있는 좋은 이름을 두고서 굳이 다른 호칭을 애써 찾아야 하는 것이 어렵다.  


어쨌거나 우리 부부에겐 지금 서로에 대한 적절한 호칭이 필요하다. 여보? 그건 아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그것은 제일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다들 어떻게 부르고 계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Image by pasja1000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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