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어머니의 아침 식사를 돌본 나무꾼은 평소처럼 산에 올랐다. 지게를 내려두고 도끼를 들어 나무를 베려던 순간, 어디선가 꽃가루가 날아왔다. 그 바람에 나무꾼은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에에취!” 달콤한 늦잠을 즐기고 있던 연못 속 산신령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급히 물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나타난 산신령의 모습에 겁이 난 나무꾼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머리부터 조아렸다. 꿀잠을 방해받은 산신령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지없이 착해 보이는 나무꾼에게 무작정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애써 부드러운 말투로 꾸며 나무꾼에게 재채기 소리를 들려주었다. “여봐라, 이 에에취가 네 에에취냐?” 겁에 잔뜩 질린 나무꾼이 말했다. “아니옵니다. 그것은 제 에에취가 아니옵니다.” 연못 속으로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산신령이 또 다른 재채기 소리를 들려주며 물었다. “그럼 이 에에취가 네 에에취냐?” “아니옵니다. 그것도 제 에에취가 아니옵니다.” 다시 한번 물속을 다녀온 산신령이 물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네 에에취냐?” 나무꾼이 그 소리를 듣더니 반가워서 크게 말했다. “네, 맞사옵니다. 그것이 제 에에취옵니다.” 산신령은 껄껄껄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허, 너는 정말 착한 사람이로구나. 내, 너에게 이 에에취 세 개를 모두 주도록 하마.” 그 후로 나무꾼은 매일 에에취 에에취 하며 재채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소년이 건넨 원고지를 받아 든 김명숙 선생님은 끝내 할 말을 잃었다. 지난 국어 시간에 코딱지를 주제로 삼행시를 발표할 때부터 예사로운 놈은 아니다 싶었지만, 막상 정식 글짓기 시간에조차 번쩍 손을 들어 이런 내용으로 발표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도끼 은도끼를 제멋대로 바꿔 쓰다니.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이미 회초리의 굵기를 가늠하고 있었지만, 칭찬을 기대하며 초롱초롱 밝게 빛나고 있는 소년의 눈을 본 순간 선생은 깨달았다.
‘그렇구나,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생명체는 절대 아니구나.’
햇살이 밝게 내려 쬐는 평화롭고 조용한 교실의 저 뒤편에서 코를 훌쩍이며 두 손을 든 채 꿇어앉아 있는 소년, 이 소년이 바로 오늘 여러분이 만나게 될 이 달의 위인, 문학 소년 진우 군이다.
진우 (蓁佑, 1971~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던 국가 근대화 시절에 태어나 학교 운동장에서 자기가 쓴 글을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등 문학 소년의 꿈을 펼치다가 교장 선생에게 발각되어 갖은 고생을 다 하였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겪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축적하였고, 지금은 돈도 안 되는 어떤 인터넷 공간에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지껄이며 더럽게 잘난 척 저 혼자 깨방정을 떨고 있다]
1971년 부산 직할시 전포동에서 아버지 임 선생과 어머니 송 여사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직후 생사를 오가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위인전에 나오는 비범한 인물들이 통상 겪게 되는 일이므로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1976년 화영이 옆집에 살던 시절, 아랫방에 거주하는 ‘새댁이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한글을 깨쳤으며, 차를 타면 길가의 간판을 줄줄 읽어대는 통에 시끄럽다고 버스에서 쫓겨나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1977년 붕어빵 봉지 뒷면을 활용, 경남 남해의 삼촌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것을 받은 삼촌이 감격 충만한 나머지, 당시로서는 거금인 천 원을 보내줌으로써, 아하, 글이 돈이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일곱 살 인생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1978년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 후 어느 날, 누나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 때문에 부모님이 크게 다투는 일이 일어났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나중에 죽어서 닭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을 일기에 썼다가 담임 선생님과 진지한 상담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1979년 가을, 대통령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은 직후, 잠시 동안 세상 모든 것을 극도로 저주하는 염세적인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혼이 나고 벌을 서면서도 숙제를 거부하는 행동마저 보였다. 그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1981년, 그의 글쓰기 인생에 불을 밝혀준 은인을 만나게 된다. 그분이 바로 김명숙 선생이다. 문학 소년이 김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 이유는, 김 선생님이 빼어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1983년 초등학교 육 학년 때에는 문예부 활동을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와는 반대로, 등짝을 때려가며 공작반으로 쫓아 보낸 김 모 선생을 극도로 저주하였다. 그 원망의 뜻으로 학교 담벼락에다 장문長文의 고발장을 쓰기도 했다. 친한 벗, 강명수 열사가 그때 이유 없는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1984년 남녀공학 중학교에 입학한 것은 문학 소년 진우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수 절정의 낭만 사춘기를 맞아 글재주를 자랑할 대상은 온 사방에 차고 넘쳤다. 그의 말랑말랑하며 사기성 농후한 특유의 문체는 그때 빚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3학년 때 짝이었던 희정이는 위인에게 있어 입맞춤 감성感性의 스승이다.
1987년 고교 진학 후에는 남포, 해운대, 동래 등의 여고女高를 방문하여 연애 문학 운동을 협의하였고, 양력 11월 11일 서면 막걸리 장터에서 십여 명의 여학생에게 연애편지를 나눠주다가 긴급 출동한 학생 주임에게 발각되어 체포, 구금되었다. 이때 아버지 임 선생과 어머니 송 여사가 악덕 교사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되고, 문학 소년 진우는 그 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났으며 누나의 은덕으로 이틀 만에 겨우 돌아오게 되었다. 위인의 시련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을 모르는 무뢰배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고난의 시절이 계속 이어지던 중, 강영린 선생님과 천정국 선생님을 글 스승으로 모시게 되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얻어터지게 된다. 글을 쓸 때 폼을 잡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뜨겁게 달군 모래에 손끝을 찔러가며 단련하는 철사장鐵沙掌과 손가락 끝을 튕겨 상대를 암살하는 탄지신공彈指神功을 두 스승으로부터 익힌 위인은, 그때부터 부산 시내의 고교 백일장을 휩쓸게 된다. 상을 받아 의기양양 개선할 때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두 스승님의 냉정한 평가와 혹독한 꾸지람뿐이었다. 글보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빠지지 않았다.
1990년 대학 입학과 함께 연애에 빠져 잠시 글을 멀리하고 살게 되었다. 위인의 창작 의지가 가장 시들했던 시기였다.
1992년 운전병으로 복무하던 때, 그의 글재주를 알아본 대대장의 특별 지시로 서라벌 문화제에 군복을 입고 출전, 당당히 산문 부문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군대에서 상을 받으면 3년 동안 재수가 없다는 속설을 몸소 입증하게 된다. 제대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연인과의 헤어짐이었다.
실연의 시련을 이기고자 94년 가을, 대학 신문사에서 주최한 문학제에, 군대 탈영 사고를 소재로 한 소설로 응모, 또 한 번 대상을 받게 되며 이때 받은 상금 삼십만 원은 아직도 그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또한 이듬해 봄에는 그간 꾸준히 도전해 왔던 지역 백일장에서 대상을 차지, 상금 백만 원을 받았으며 이것은 위인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는 종잣돈이 된다. 그때 위인에게 상을 수여한 사람은 지금 아주 나쁜 놈으로 방송에 등장하고 있다.
1996년 겨울, 드디어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게 된다. 이것은 제1기 위인의 탄생 시기가 끝나고 소재의 천국인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창작 인생 제2기가 시작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예상치 못한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 될 것임을 그때 위인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창작 외길을 달려온 문학 소년 진우, 본 선정 위원회는 그의 뻔뻔함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이 달의 위인으로 선정하는 바이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아이고, 이런 위인을 봤나.”라며 그가 이 달의 위인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해주고 있다. 그의 고향, 부산광역시에서는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주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 시민 모두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기로 하였으며, 자정이 지난 새벽 세 시에는 지하철 운행을 금지, 조용한 환경에서 창작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예비 작가들에게 끊임없는 배려를 할 계획이다.
아울러 문학 소년 진우의 암울했던 과거를 잊지 않도록 짜장면은 검은색으로, 그리고 불타오르는 창작열을 반영하기 위해 짬뽕은 붉은색으로 만들 것을 시市 조례로 지정, 정기적인 단속을 병행할 입장임을 밝혔다.
이 달의 위인으로 선정된 문학 소년 진우. 그의 청년기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상경 이후 직장 생활의 시작과 함께 경험한 다사다난, 파란만장한 크고 작은 사건들 역시 앞으로의 그의 글 전반에서 심도 있게 다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댓글을 통한 뜨거운 반응이 쇄도한다면 본 위원회는 작가의 동의를 구한 다음, 장년기의 여정도 기꺼이 연재할 것임을 미리 일러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지워지지 않고 써지는 글 또한 어디 있으랴. 문학 소년 진우의 드립이 조만간 불꽃을 화악 피우기를 바라면서, 이상 이달의 위인 선정 결과와 발표를 마친다.
2021년 12월 1일
이 달의 위인 선정 위원회
작당모의가 준비한 이번 문제文題는 위인전입니다. 누구에게나 존경하는 위인이 한 사람씩 있듯, 우리들도 그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따라 하고 싶은 위인이지 않을까. 그래서 감히 작가들이 스스로 위인인 척 태연스러운 거짓말에 도전해보았습니다. 가벼운 웃음으로 격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