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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16. 2021

재미에 대한 집착

< 2021 작당모의(作黨謨議) 연말 결산 >


   만화 영화가 끝나면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찬규네 담벼락 아래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현광이와 병철이를 비롯, 골목을 주름잡는 개구쟁이 예닐곱이 그 순간만큼은 하나같이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되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있으면, 내가 천천히 그 앞으로 나섰다. 갖은 폼을 잡으며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좌중座中을 스윽 둘러보고는 팔짱을 낀 채로 ‘그러니까 말이야’ 하며 나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내가 꺼내놓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이 조무래기들이 방금 전까지 자기들 눈으로 직접 보았던 만화 영화를 다시 한번 복기復記해 주는 것이었다. 어떨 때의 나는 통쾌하게 적을 무찌르는 태권브이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엄마를 찾아 삼만리 길을 떠나는 마르코가 되어서 아이들의 함성과 탄식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이 꼬마 변사辯士가 유독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던 내용까지 그럴듯하게 집어넣어 아주 매끈한 또 하나의 새로운 스토리를 청중에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이었던지 가끔은 구멍가게 반장 아줌마조차 물건 팔 생각은 않고 내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진우야, 백설 공주가 마징가를 만나서, 그다음엔 우째 됐노?”라고 물어볼 때도 있었다.


   이것을 본격적으로 사업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명수였다.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마냥 공짜로 들려줄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서 구슬이나 딱지를 받고 ‘제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혼자만의 재미였던 변사 놀이가 어느새 콘텐츠 재가공 사업으로 본격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명수의 불룩해진 주머니만큼이나 당연히 내 부담도 커졌다. ‘제대로’ 들려주려면 ‘제대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얼마 뒤부터는 따로 대본을 준비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날짜가 꽤 남은 달력을 찢기도 하고, 애먼 스케치북이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으며, 누나의 공책이 뜬금없는 희생양이 될 때도 있었다.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연필을 고쳐 쥐면, 그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춤추고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글자의 옷을 입고 달력과 스케치북과 공책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한 줄 쓰고 두 번 읽고, 세 번 고친 다음 네 번을 지웠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좍좍 줄을 긋고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를 만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것은 딱 한 가지 경우였다. 


재미가 없다


   그때부터 그렇게 시작된 ‘재미’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여전하다. 

   맨 처음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모 신문사의 자유게시판이었다. 내 글에 달렸던 첫 댓글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창작과 게시의 공간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재미에 대한 나의 고민과 집착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재미’를 만들려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희로애락을 담은 스토리다. 결국 재미란, 희로애락을 담은 스토리를 읽고 독자讀者가 공감共感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 공감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기승전결을 효과적으로 변주하는 '구성'이 재미의 근원이다. 

   인생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하는 글을 내가 쓰지 않는, 아니 쓰지 못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그런 글을 쓸 만큼의 인문학적, 철학적, 인간적 사색이 부족하고, 두 번째, 그런 소재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글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내 글이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대략 백팔십여 편의 글을 썼지만 오늘 새벽, 첫 번째로 발행했던 글을 또다시 부분 수정한 이유가 바로 그것,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대체 나는 무슨 배짱으로 이 따위 글을 쓰고 함부로 발행했던 것일까? 단어 수보다 열 배나 많은 퇴고를 거쳤음에도, 이 주어와 서술어는 어디서 굴러온 것이며, 이 부사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며, 이 문단과 단락은 하필 왜 여기서 끊어진 것일까? 꼭 이 단어 밖에, 이 표현 밖에, 이 구성밖에 없었을까? 이래가지고서 읽는 이들에게 과연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럽다. 결국 눈을 감아버리거나 돌아가기를 누른다. 달아오른 얼굴은 그 낙인이다. 

   그래서, 자기가 쓴 글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남에게 읽어 보라고 추천하는, 낯 뜨겁고 창피한 짓은 그래서 나는 차마 못하겠다. 내 글로 다른 사람을 치유하겠다느니, 남들이 내 글을 읽고 ‘힐링’하기를 바란다느니 하는 따위의 용감함, 역시 내게는 없다. 어쩌다 우연히 읽고 피식 한 번 웃을 수 있는 글, 그저 그거면 된다. 그리고 그런 재미있는 글을 오래오래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만족한다. 


   그러한 자기만족에 대한 확신,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명분을 준 것이 브런치였다.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이었으나 그때 당장 시작하지는 않았다. 이전까지 글을 써오던 곳에 대한 애정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깃털만큼 가벼운 글을 쓰는 주제에 감히 플랫폼을 옮겨가면서까지 똥폼을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내 글을 읽어주시던 회원 중 한 분이 브런치를 다시 권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는 재미난 글이 많답니다.’ 

   옳지, 거기서 ‘재미’에 대한 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그것이 내가 브런치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브런치에 들어오고 나서 재미있는 글을 쓰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글공부 또한 그만큼 더하게 되었다. 일일이 언급을 할 수는 없으나, 감히 나의 구독을 허락해주신 많은 작가님들이 우선 그렇고, 함께 글을 쓰자고 손을 내밀어주신 작당모의 가족들이 그러하다. 작당의 좌장 소운, 작당의 대장 진샤, 작당의 지장 초이스, 작당의 덕장 민현, 그리고 남은 한 개, 작당의 막장 자리를 내게 주신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연말 결산을 하자는 매거진 가족들의 공감이 있었다. 벌써 또, 역시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아쉬움 가득한 것은 작년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2021년의 소득이라면 당연히 브런치와 작당모의 가족과 많은 스승과 글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 외의 개인적인 소감은 며칠 후 다른 글로 다시 말씀드릴까 한다. 

   유쾌한 제안에 따라 작당모의 매거진을 통해 발행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한편씩 추천해 보기로 했다. 다른 작가님들께서는 내 글을 추천하면서 너무도 좋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내가 어떤 말을 끌어와서 추천의 변辯을 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물론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말로 그 말을 증명하려고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좋은 글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은 언제나 불변, 항상 딱 한 가지기 때문이다.


이 글들은 진짜 재미있다 



진우가 추천하는 2021년 소운 작가님의 글

진우가 추천하는 2021년 진샤 작가님의 글

진우가 추천하는 2021년 초이스 작가님의 글

진우가 추천하는 2021년 민현 작가님의 글


[번외] 진우가 추천하는 2021년 브런치 최고의 글



 Title Image by NEWS 1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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