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은 초저녁부터 분주했다. 아버지의 공구함에서 큰 못 몇 개를 꺼내더니 혼자 들기에는 꽤나 버거워 보이는 망치까지 함께 챙긴 다음, 그것들을 제가 자는 안방으로 힘겹게 가져와서는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다 양말처럼 생긴 빨간 자루 하나를 나란히 눕혔다. 점심을 먹고 놀러 나갈 때는 분명 빈손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것을 들고 있었다. 보나마나 옆집 사는 화숙이 고것을 따라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다녀온 것이 틀림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루 양말의 뒤꿈치 즈음을 얼핏 보니 ‘성탄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자가 붉은색으로 떡하니 찍혀 있었다.
우리 집은 절에 다니기 때문에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으며, 불교 신자에게 크리스마스는 아무 의미 없는 날이라고 여러 차례 타일렀지만 동생은 엄마의 그런 설명과 설득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며칠 전부터는 루돌프와 징글벨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댈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배운 것이 틀림없을 찬송가까지 흥얼거리기도 했다.
못을 문지방에 갖다 대고 망치를 겨눠 보지만 어린 동생이 그것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 서너 차례 못을 헛집다가 결국 망치마저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꽤나 큰소리가 났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듯, 동생은 애틋한 눈빛과 불쌍한 표정을 섞어서 내게 던졌다.
“오빠야, 이것 좀 해 도.”
잠시 망설이다가 엉덩이 걸음으로 동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못과 망치를 건네받으려는데 공연히 슬픈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큰 양말을 걸어둔다 하더라도 올해는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성탄절과 관계가 없기란 작년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지난 성탄절에는 분명히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을 다녀갔었다. 해가 바뀌어 상황이 달라지게 된 건 모두 석유 파동이란 놈, 그놈 때문이다.
며칠 전 새벽 잠결에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마산에 공사가 있다 하니 며칠 동안 거기 가서 일해야겠소.”
“이렇게 추운데 객지에서 일할 수 있겠습니꺼?”
“우짜겠소. 석유 파동 때문에 부산에는 일 자리가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다섯 식구,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마산이든 어디든 일이 있다 하면 가야지. 열흘 정도면 돌아올 것이니 너무 걱정마소.”
나는 그때 알았다. 아, 어쩌면, 올해는 산타가 오지 않겠구나. 하지만 벽에 걸린 양말을 어루만지며 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동생에게 차마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 내가 아홉 살, 여동생이 여섯 살, 자기가 가장 아끼던 부하에게 총을 맞고 대통령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그 해 겨울의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난데없는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역시나 동생이었다. 얼른 일어나 눈을 비비며 주위를 살폈다. 엄마는 새벽 일찍 일을 하러 가니 집에 없는 것이 당연했고, 누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학교에 공부하러 간 것 같았다. 내복 차림의 동생은 양말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오아야, 아우어오 으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텅 비어있는 양말에 대한 원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을 얼른 달랬다.
“연아, 울지 마라.”
하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한 동생은 달래면 달랠수록 울음의 목청을 높였다. 동생이 컥컥거릴 때마다 누런 콧물이 콧구멍을 들락거렸다. 얼추 십여 분을 달랬어도 동생은 쉽사리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나는 동생을 울도록 내버려 둔 채 책상 앞으로 갔다. 천천히 서랍을 열고는 뒤쪽에 붙여둔, ‘나만의 비밀’이라고 적힌 봉투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봉투의 입구를 벌리고 가볍게 흔들었다. 툭 소리를 내며 동전 하나가 손바닥에 떨어졌다. 오십 원이었다. 그것은 나의 비상금이었다.
“연아, 옷 입자.”
여전히 쿨럭대며 울고 있는 동생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힘겹게 바지와 스웨터를 입히고 점퍼의 지퍼도 겨우 올렸다. 서둘러 나도 옷을 갈아입었다. 동생의 손을 꼬옥 잡은 채 반장집 구멍가게로 갔다.
“아이고, 진우야. 이 추운 아침에 우짠 일이고?”
가게 앞 평상에 물건들을 늘어놓던 반장 아줌마가 나를 반겼다. 대충 인사를 하고 여동생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연아, 니 갖고 싶은 거 다 골라라.”
동생은 눈이 똥그래져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오늘은 너를 위해 내 전 재산을 아낌없이 쓰도록 하마.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른들 말로 이런 걸 보호자라고 하나 보다.
열 번의 고민과 백 번의 주저함 끝에 동생은 결국 종이 인형을 골랐고 약과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가위로 잘라 옷을 갈아 입히는 인형놀이가 이십 원, 손바닥 절반만한 약과 두 개가 이십 원이었다. 거스름돈 십 원은 동생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는 듯, 반장 아줌마가 우리에게 사탕 한 개씩을 주면서 말했다.
“엄마 오실 때까지 사이좋게 놀아라.”
나는 사탕 하나를 까서 동생의 입에 넣어 주었다. 동생의 볼이 불룩해졌다. 나머지 사탕 하나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동생의 입에서 딸기향이 화악 풍겼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지만 애써 참았다. 나는 보호자니까, 동생이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런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의 겉옷을 다시 벗겼다. 종이 인형과 약과 두 개, 사탕 한 개, 그리고 십 원짜리 동전 한 개를 머리맡에 나란히 줄 세운 동생은 이불속으로 들어가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한껏 운 데다 찬바람까지 맞았으니 어지간히 졸리기도 할 터였다.
잠든 동생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나는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은 다음,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기도였던 것 같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를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돈은 조금만 벌어도 되니까 얼른 집으로 오게 해 주세요, 네? 그리고 부처님, 죄송합니다.”
명수도 집으로 와서 함께 놀았다. 축구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왠지 그날만큼은 동생을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오자 동생은 인형과 약과를 올려들고선 오빠가 사준 거라며 자랑을 했다. 착한 일을 했다고 누나도 칭찬을 했다. 공연히 부끄러웠다. 저녁을 먹고 나자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하루 동안의 긴장이 마침내 풀린 까닭일 게다.
잠결에 뜬금없이 오줌이 마려웠다. 마침 벽시계가 뎅뎅거리며 자정을 알렸다. 이불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화장실로 가려는데 낯익은 숨소리를 들었다. 어둠 속을 천천히 더듬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아버지였다. 아, 내가 잠든 사이에 아버지가 오셨구나. 동생이 누워있는 자리를 보았다. 달빛이 들어오는 문 손잡이에 어제처럼 양말이 걸려 있고, 그 아래로는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그리고 노랑머리 인형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그래, 됐다. 산타가 왔다. 그걸로 된 거다. 하루쯤 늦었어도 그런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나는 도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 벌어질 장면을 떠올리고는 혼자흐뭇해져서 한참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