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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07. 2021

옥분 할매 (1)

고단한 삶 속에서도 빛나는 인생


“사장님요, 이런 호텔은 하룻밤 잘라카믄 얼맙니꺼?”


천천히 한숨을 돌리고 물어도 될 텐데, 내가 건넨 물병을 받고 나서 물어도 될 텐데, 그리고 보름이 넘도록 같은 질문을 했으니 그건 이제 그만 물어도 될 텐데. 그런 내 속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건너편 한식당韓食堂의 김 사장이 길을 건너오며 목청부터 높였다.

“할매, 머할라꼬 맨날 똑같은 걸 묻능교?”

그는 한 손에 폐지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말꼬리를 물고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꾸 그라믄, 인자부터 얼만교 할매로 부릅니데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편의점 박 사장이었다. 김 사장과 마찬가지로, 박사장은 납작하게 펴서 잘 동여맨 종이 상자 더미를 안고 있었다. 나는 가벼운 고갯짓으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오전 열한 시,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우리가 호텔 마당에 모이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바닥에 폐지를 조심스레 내려놓자, 할머니가 툭 쏘아붙였다.

“사장님들한테 물어보는 거 아입니더. 호텔 사장님한테만 말하는 거라요.”

살짝 삐친 듯한 표정의 할머니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급히 폐지를 추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갈 채비를 서둘렀다. 아차 싶었다. 한 사람도 아닌 두 사람이 동시에 핀잔을 줬으니 제아무리 폐지를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 해도 할머니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을 리 없을 것이다.

나는 얼른 할머니의 옷깃을 잡고 다시 한번 물병을 권하며 말했다.

“할머니, 육만 원입니다. 아주 좋은 방, 어제랑 똑같이 육만 원이에요.”

수레의 손잡이를 고쳐 잡던 할머니가 그 말을 듣고서야 다시 나를 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에 천천히 웃음꽃이 피었다.

“맞지요? 좋은 방, 억수로 좋은 방, 육만 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거 보란 듯이 할머니가 곁에 선 김 사장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폐지 꾸러미를 쌓아 올려가며 끈을 고쳐 매던 박사장이 그랬다.

“우리 임 사장은 할매한테 윽수로 잘한데이. 진짜 아들이나 다름없다. 안 그런교, 옥분 할매?.”




2016년 여름, 호텔의 운영을 맡게 된 이후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건물을 가린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흉물스럽기만 한 2미터 높이의 시커먼 벽을 무너뜨리고, 오른쪽 담벼락 아래에는 인공 목재(데크)를 활용해서 단壇을 만들었다. 거기에다 탁자와 의자, 그리고 햇볕을 가릴 큰 양산도 꽂았다. 뒤로는 작은 나무와 꽃을 보기 좋게 나란히 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쟁이도 은근슬쩍 키 자랑을 했다.


예닐곱 명이 동시에 쉴 만한 공간이 생기자 그것을 제일 반긴 것은 맞은편 한식당 김 사장이었고, 그다음이 편의점 박 사장이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구매한 고객들이 잠시 머물렀다 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그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그들이 떠난 뒷정리 역시 그다지 번거로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임 사장한테 맨날 신세를 많이 지네요.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말하소.”

“별말씀을요. 덕분에 자연스럽게 호텔 홍보도 되고, 저도 참 좋습니다.”

“맞는 말인기라. 사람은 자고自古로 서로 문을 활짝 열고 어불리(어울려) 살아야 하는 기라.”


든든한 형님 두 분이 생긴 것 같아서 내심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는, 사람 드는 곳에 돈이 다고 했다. 역시 그 말이 옳았다. 담을 걷어낸 뒤, 행인들의 입 소문과 주변 상인들의 추천으로 호텔의 매출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호텔 마당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낯이 익은 이웃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꽃밭에 물을 준 다음,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던 참이었다.

“사장님요.”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저는 옥분이라 합니더. 사장님, 저기 있는 의자에서 잠시만 쉬었다 가도 될까예? 나이가 드니 내가 힘이 없어서…”

수건으로 감싸긴 했으나 옆으로 제멋대로 삐져나온 흰머리, 주름골이 깊은 거친 피부, 두 겹 세 겹 껴입은 점퍼, 무릎이 삐죽이 나온 일 바지, 서너 번은 기워 신은 털 고무신, 옆으로 초라하게 서 있는, 반쯤은 부서진 낡은 손수레, 그리고 거기에 담긴 종이 뭉치들과 빈 병 서너 개. 그것만으로도 할머니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만일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면 할머니를 그냥 노숙자로 생각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첫마디가 유난히 큰 소리를 내며 내 마음에 부딪혔다.

‘저는 옥분이라 합니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략 보기에도 일흔은 훨씬 넘은 할머니가 말이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할머니를 다시 한번 보았다. 비록 옷차림과 행색은 남루하지만 할머니의 눈매가 그렇게 고울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네, 할머니. 얼마든지요.”

나도 모르게 손수레를 먼저 받아 들고 할머니에게는 자리를 권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의자에 고쳐 앉는 것을 본 다음, 서둘러 로비로 들어와 고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생수 두 병을 우선 챙겼다.

“할머니, 이것 드세요.”

놀란 눈으로 할머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곧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우짜지요?”

돈 받고 팔려는 것으로 알았나 보다. 웃음인 듯 웃음 아닌 무언가가 나오려고 했다.

“그냥 드리는 겁니다. 공짜예요, 할머니. 어서 드세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할머니는 물병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안 되겠다. 나는 뚜껑을 따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옆에 있으면 할머니가 불편을 느낄 것 같아 자리를 비켜주자 싶은 김에, 호텔 뒤편의 재활용 코너로 재빨리 달려갔다. 비품 상자와 용품 박스, 객실에서 나온 선물 포장 상자 등 쓸만한 것들을 대충 모으니 제법 양이 되었다. 끈을 찾아서 얼른 묶었다. 그것을 들고 다시 호텔 마당으로 빨리 나왔다.  

“할머니, 이것도 가져가세요.”

“세, 세상에나… 이라믄 우, 우짜능교?”

“아닙니다. 어차피 버릴 것들이에요.”

“그래도….”

할머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반쯤 마신 물병을 손에 든 채로 할머니는, 이번에는 나와 폐지 더미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그것이 ‘옥분 할매’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어느덧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저 멀리서 터러럭 손수레 끄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나는 생수를 챙기고, 매니저는 폐지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고르는 동안, 나는 말동무를 했고 매니저는 폐지들을 손수레에 실어 묶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한식당 김 사장이 종이 상자를 챙겨 나왔고, 일주일 즈음되었을 때에는 편의점 박사장까지 폐지 증정 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 결국 우리 셋은 매일 오전 열한 시가 되면 각자가 챙길 것을 들고 호텔 마당에 모이게 되었다. 휴일에는 직원들이 우리 일을 알아서 대신했다.

대체로 할머니가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모였지만, 어떤 날엔 우리가 할머니를 기다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혹시나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가, 저만치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겨우 안심하곤 했다. 그때마다 박사장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화부터 냈다.

“할매요,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를 해야지. 사람들 걱정하구로.”  




“이렇게 가져가면 얼마나 받을래나?”

“요새 종이값이 똥값이라 기껏해야 이삼 천원도 안될 낍니더.”

 사장과 김 사장이 또 할머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챙겨주는 데도 고작 이삼천 원이라면 그전에는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걸까?

“할매는 어데 산답니꺼?”

“저기, 영주동 어디쯤 반지하 단칸방에 산다 하는 것 같던데. 이 동네에서 폐지 줍고 산 지는 오래되었다 하더라고.”

“자식은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오래전에 사업 실패를 해서, 지금은 생사를 안다캤나 모른다캤나 하여튼…”

“거 참, 할매 팔자도...”

“그래 봬도 옛날에 영감님 살았을 때는 돈 걱정 안 하고 큰소리치면서 살았다 합디더.”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동정은 금물이라며 스스로에게 몇 번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옥분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정서적 분위기그 다짐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아, 저기 온다, 옥분 할매.”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할머니가 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걸음이 좀 빠른 것 같다. 들려오는 바퀴 소리의 템포가 전과 달리 꽤나 서두르는 느낌이었다.

의자에 앉아 물을 마신 할머니는 깔딱 숨이 진정되기도 전에 내게 물었다.

“젊은 사장님요, 이런 호텔은 하룻밤 잘라카믄 얼맙니꺼?”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할머니에게 객실 타입이며 등급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장이 말을 던졌다.

“와요? 할매가 잘라꼬요? 이런 데는 윽수로 비쌉니데이. 못 줘도 십만 원은 줘야 할 걸, 안 그런교,임사장?”

십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의 얼굴이 금세 찡그려졌다. 시즌에 따라, 요일에 따라 변동폭이 큰 호텔 객실의 요금을 할머니에게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그냥 단순하게 출장자 기준에 맞추자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할머니. 아주 좋은 방은 육만 원 합니다.”

“육만 원이라꼬요? 음, 육만 원이면 만원 짜리가 여섯 장 맞지요?”

그렇게 물은 할머니는 속으로 무언가를 헤아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떤 셈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매일 아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루 방값이 얼마냐며 내게 묻기 시작했다.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않고 꼬박꼬박 답을 했다.

"네, 할머니. 아주 좋은 방이 육만 원이에요. 어제도, 내일도요."




그렇게 한 달 즈음 지났을 무렵이었다.

토요일 아침 열한 시,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안 오면 방값이 칠만 원 된다며 박사장이 농담을 섞어 봤지만 여전히 수레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챙겨온 폐지를 들었다놨다 하면서 한참을 기다렸음에도 할머니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셋은 슬슬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 일 없을 테니 기다려보자는 말을 하며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호텔에 있어서 토요일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바쁜 날이다. 연말을 앞두고 사전 예약이 한꺼번에 몰린 탓에 객실은 한 두 개 정도의 비상용 예비 객실을 빼고는 거의 다 찼다. 지금 막 도착하는 손님과 짐을 풀고 외출하는 손님으로 로비는 정신이 없었다. 바쁜 것은 매니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계적으로 인사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니터와 예약 서류를 번갈아 보던 중, 무심코 지나치는 시선의 끝에 무언가 낯익은 모습이 얼핏 스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뜻밖에도 저만치 출입문 앞에 옥분 할머니가 서 있다.

아, 별일 없으셨구나, 다행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서두르려는데 할머니가 프런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을 멈춘 할머니가 대뜸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할머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요, 윽수로 좋은 방, 육만 원이라 캤지요? 맞지요?”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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