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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24. 2021

아내가 온다

길치를 위한 세레나데


이벤트가 많은 남자가 되고 싶었다. 가진 것은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언제나 새로운 재밋거리를 궁리하며 끊임없이 즐거움을 주는, 그런 남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늦은 시각에 그녀의 집이 있는 분당으로 달려갈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저녁 내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고, 조금만 더 있다 가겠다며 버티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차에 태웠다. 택시가 저만치 멀어질 때까지 그녀는 뒷유리창 너머로 아쉬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때다. 지금 내 차를 타고 택시를 앞질러 분당으로 먼저 달려가서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거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녀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어머, 오빠, 웬일이야? 네가 정말 보고 싶은데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한달음에 달려왔지. 오빠, 정말 감동이야. 오빠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사랑해. 나도 사랑해. 와락 포옹, 그리고 찐한 키스.

달콤한 상상에 퐁당 빠진 나는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웃음은 멈추든 말든 자동차만은 그때 멈췄어야 했다. 부릉, 얼른 출발하자고 차가 먼저 재촉을 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엄청난 길치(였)다. 무모함이 무식함을 앞장서긴 했으나 강변북로가 틀림없다고 적혀있는 도로에 올라서자 그때부터 또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무사히 마포에서 분당까지 갈 수 있을까? 멋진 이벤트를 하겠노라며 호기를 부리던 좀전까지의 기세는, 당분간 샛길이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살짝 꺾여 버렸다.

분당까지는 차를 몰고 두어 번 가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는 해가 중천에 떠 있던 낮이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밤이라고 어려울 게 뭐 있나. 그냥 뭐, 강변북로에 올라타서 뭐, 한남대교를 건너고, 강남 사거리를 지난 다음 뭐, 양재로 직진해서 쭉 가다가 오른쪽 길로 빠지면 뭐, 터널이 나오는데, 그리고 뭐, 왜 자꾸 물어? 지난번에 갔던 길을 머릿속으로 서너 번도 넘게 되짚었다. 밤이 되었다고 낮의 도로가 어디로 가기야 하겠어? 쭉 가면 되잖아, 쭈욱. 분당도 그 자리에 있을 거야, 암.


내비 Navi 따위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믿을 건 운전석의 포켓에 담겨 있는 파란색의 전국 교통안내지도 한 권뿐이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유일한 믿을 구석이자 길치교敎의 성경이었다. 말씀을 따라 목적지 근처에 얼추 도착했다 싶으면 길가에 차를 세운 다음 슈퍼에 들리거나 지나가는 이들에게 묻기만 하면 되었다. 혹시 이곳에 관심 있으십니까을 아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낮에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내가 사랑의 이벤트를 시도하던 그때는 한밤중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시계는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택시 뒤를 쫓아갔으면 되었을 일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첩보 영화를 떠올렸던 것이 문제였다. 그러다 들키면? 당연히 재미가 반감되지. 그렇다고 택시와 나란히 달리면서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죽을 만큼 사랑해, 이렇게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입으로 뱉은 것처럼 쭉 직진하다가 분당 방향 표지판이 나오면 청담대교를 건너 분당 수서 간 고속화 도로를 타면 된다. 어려울 것이 전혀 없는 경로였다. 또 한 가지 방법이라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를 탄 다음, 판교 인터체인지로 들어가면 그저 쉽게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밀레니엄 첫 해의 나는 김유신 장군의 말이나 다름없었다. 다니던 길에서만 용감했다. 모로 가도 상관없는 서울이란 없다. 오직 한 길. 무조건 한남대교, 강남사거리, 양재동이다.


핸들을 잡은 두 손이 촉촉하게 젖어오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차가 약간 막혔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쯤 되면 한남대교 표지판이 보여야 된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 멀리 뭔가가 보인다. 뭐지? 뭐라고? 일… 산? 일산이 여기서 왜 나와? 나는 강남으로 가야 하는데? 일산이 이사 왔나? 하긴 아까부터 한강이 내 왼쪽에 있는 것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었다.


어찌어찌해서 반대 방향으로 차를 돌린 다음, 그때도 늦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냥 집으로 갔어야 했다. 그놈의 오기가 또다시 발동했다. 그녀 이미 분당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되어 버렸다. ‘먼저 도착 서프라이즈’는 물 건너갔다. 다음 전략은, 창문 아래 세레나데다.

오빠, 웬일이야? 네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오빠는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창문을 열어 볼래? 스르륵. 어머 오빠! 그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오빠 감동이야. 포옹, 그리고 키스.

다시 한번 시익 웃으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정확하게 길을 찾아갈 거라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다짐만으로 될 일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울 생활을 해 보지 않은 분들께만 살짝 알려드리는 거지만, 서울의 도로는 밤이 되면 여러 가지가 저절로 바뀐다. 이차선이 사 차선이 되기도 하고 순방향이 역방향이 될 때도 있다. 행정 구역도 밤에는 수시로 바뀐다. 강남이 양재동으로 되는가 하면 때로는 목동이 봉천동 옆으로 옮길 수도 있다. 초행자初行者, 특히나 밤에 서울을 출입하는 분들은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란다.


어쨌든 서울특별시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는 드디어 분당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출발한 때로부터 세 시간이 지난 셈이다. 할 수 없이 전략을 바꾸어야 했다. 지금 그녀를 깨우는 건 무리다. 그것은 곤히 잠든 다른 주민들에게도 민폐일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모닝콜 이벤트를 하자.

오빠, 이 시간에 왜 전화를? 응, 깨워주려고 전화했어. 정말 고마워. 지금 창문을 한 번 열어볼래? 왜? 그냥, 묻지 말고 열어봐. 스르륵. 어머 오빠. 하하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 오빠 감동이야. 포옹 그리고 키...


오늘은 웃음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날이다. 분당에 들어왔으니 이젠 그녀가 사는 집을 찾아야 한다. 그날 밤을 계기로 나는 아파트 ‘단지’라는 말을 싫어하게 되었다. 수십 번을 뱅글뱅글 돌아도 똑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닮은 아파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분명 137동인데, 134, 135, 136 다음에 137 맞잖아? 그런데 반드시 있어야 할 137이 없다. 미치겠다. 여기 맞는데, 여기에서 돌면 그녀의 집이 바로 보였는데. 그런데 여기서 돌면, 왜 막다른 길이 나온단 말입니까!


집을 찾던 도중에 결국 기름을 한 번 더 넣어야 했다. 주유원에게 물었다.

“여기 가려고 하는데요, 어떻게 가면 되나요?”

애써 서울말이었다.

“네, 저기서 오른쪽으로 그다음엔 직진, 그리고 가게가 보이면 거기서 왼쪽으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시겠죠?”

네, 알긴 알겠는데 문제는, 제가 못 찾는다는 것이지요. 차를 세워두고 걸어 다니면서 찾아볼까? 그때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음 신청곡 전해드릴게요. 신효범이 부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다음날 저녁, 강남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첫마디였다.

“오빠, 왜 그렇게 피곤해 보여요? 못 잤어요?”

나는 힘을 짜내 겨우 대답했다.

“응, 밤새 네 생각하느라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기대했던 포옹이나 찐한 키스는 아예 없었다.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나는 눈꺼풀을 밀어 올리느라 안간힘을 다해야만 했다. 절대로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분당과 일산과 강남과 양재가 내 등을 토닥거리면서 잘 자라 우리 길치, 자장가를 불러댔다. 그날의 기억은 아쉽게도 거기에서 끝나고 말았다.




이제는 아가 된 그녀와 본의아니게 떨어져 지낸 것이 벌써 넉 달이 되어간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같이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는 서로의 일정을 조율했고, 결국 아내가 부산에 오는 것으로 했다.

아무리 깔끔하게 신경 쓴다 하더라도 혼자 지내는 남자에게선 홀아비 냄새가 염려된다는 말과 함께 아내는 향수를 미리 택배로 보냈다. 진짜 그런가? 혼자서 소매와 겨드랑이를 킁킁거려본 것은 비밀이다.


조 말용씨가 만든 향수랍니다


기차 도착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음에도 일찌감치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부산역이 설마 그때의 분당처럼 어디로 가 버리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다, 암.


어머 오빠,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네가 보고 싶어서. 오빠, 감동이야. 와락 포옹, 찐한 키스… 따위를 기대하던 푸른 시절은 이미 지났다. 손잡고 걸을까라는 말에 청승이라고 등짝을 맞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말 앞에서 나는 여전히 설렌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즐거움인 것이다. 오늘 오후 2시 59분, 열차를 타고 사랑하는 그녀가 온다. 나를 만나기 위해, 나의 아내가 온다.




Image by pdjch66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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