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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28. 2021

맞춤법을 지적하고 벌레가 되었다

일해라 절해라 않을게요, 이젠


본문 속에 섞인 낱말이었다면 모르는 척, 못 본 척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제목에 당장 그렇게 씌어있으니 그것을 애써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댓글을 달았다.


- 작가님의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제목에 오타가 있는 듯하여 다시 한번 살펴보십사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봅니다.


잠시 후, 다른 글을 읽고 있는데 알림이 뜬다. 나를 언급했다는 메시지인 것을 보니 조금 전 내가 쓴 댓글에 답이 더해진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덧글을 예상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면 아, 제가 실수했네요, 바로 수정했습니다. 눈웃음을 나타내는 기호까지는 굳이 바라지도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알림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고 모니터에 댓글란이 떴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반응이란 말인가?


- 저랑 관계도 없는 분인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시지요. 남 지적할 시간에 본인 글이나 신경 쓰세요. 꼴 보기 싫은 맞춤법충, 에휴.


구독을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추천 코너에서 자주 글을 대하던 작가다. 연작하는 글들이 나쁘지 않아서 관심을 두고 한참 전부터 읽어 오던 참이었다. 댓글과 답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찬바람이 쌩 느껴지는 글투가 더욱 낯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저 낱말이다. 맞, 춤, 법, 충.


맞춤법충

[인터넷/속어] 타인이 쓴 글에 대해 맞춤법을 지적하는 사람 또는 그러한 행동을 낮추어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충이라면 벌레蟲다. 꽤나 인지도가 있음직한 작가의 글 제목에 오타가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수정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겼을 뿐인데 졸지에 '벌레'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맞춤법 벌레라, 허, 거, 참.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새로고침을 눌렀더니 그새 벌레가 사라져 버렸다. 맞춤법을 지적했던 내 글과 함께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요리를 만들어 손님 앞에 내어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글감이라는 재료를 가져와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구성이라는 요리법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든 다음, 퇴고라는 신중한 상차림을 거쳐 발행이라는 기쁨과 함께 손님 앞에 마침내 상을 내는 것이다. 글감도 중요하고 구성 역시 글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차림, 즉 퇴고다.

재료가 알맞게 들어갔는지 더듬어보고, 국이 짠 것은 아닌지 맛을 보며, 반찬이 부족하려나 확인하고, 고명이 제대로 올려졌는지 가늠하며, 수저는 제자리에 놓였는지, 손님들이 드시기에 불편함은 전혀 없는지, 상이 부엌에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것, 그것이 상차림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제대로 음식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상차림에 소홀하면 그 요리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글에서의 퇴고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글감을 정리하거나 첫 원고를 쓸 때는 무조건 연습장에다 직접 펜으로 쓴다. 글씨가 나쁘다는 말은 여태 들어본 적 없지만, 연습장을 펼친 때만큼은 글씨가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그 순간에 떠오른 좋은 문장이나 효과적인 구성을 절대 놓칠 수 없다는, 필사 몸부림 때문이다.

그렇게 다듬어진 초안을 서너 번 고쳐서 컴퓨터의 워드에 옮겨 쓴다. 그리고 이것들을 최소한 두세 가지 버전으로 다시 쓴다. 하루가 지난 뒤 천천히 읽어보면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최종본으로 결정하고 그 글을 토대로 마지막 수정을 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그제야 브런치 편집 화면으로 옮긴다. 그렇다고 바로 발행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선 서랍에 담아둔 다음, 스마트폰과 데스크톱 모니터를 오가며 가독성可讀性을 기준으로 다시 한번 손을 댄다. 그리고 우선은 더 이상 손볼 것이 없다 싶으면 그때 발행 버튼을 누른다. 물론 글이 발행된 다음에도 다시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어색한 표현을 고치고, 잘못되었다 싶은 문장을 나누며, 읽는 이가 보기에 불편할 것 같은 단락을 끊고, 나누고, 자르고, 붙이기를 수시로 거듭한다. 그래서 내 글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지난 삼월에 첫 발행했던 글을 어제도 수정했다.


아주 신이 나서 글씨가 날아가네, 날아가


전문 작가도 아니면서 고작 글 한편에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냐고 할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이란, 나를 찾아오는 손님께 대접하는 음식이다. 보잘것없으나 이 글들이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이 쟁쟁한 스승님들과 서로 안부를 물으며 농담을 나누고 진지한 사색을 하겠는가? 다시 말해 나에게 글은, 그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입 다심, 즉 연결고리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 모두 소중한 만큼, 그들에게 내어놓는 음식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비록 맛은 없을지언정, 준비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정성의 정점에 상차림이 있고, 곧 퇴고가 있다. 맞춤법 확인은 퇴고의 지극한 기본이다. 퇴고란, 행여나 들어갔을지 모를 티끌을 글이라는 음식으로부터 걷어내는 마지막 작업인 것이다.


물론 그 이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너나 잘하세요. 맞다. 나는 내 글에만 신경 쓰면 된다. 공연히 남의 글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오지랖,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업 작가가 아니기에 우리 모두의 글엔 언제나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허점이 있을 수 있으며, 다른 이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글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대환영인데,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론,그들의 다른 견해 역시 진심으로 존중한다.


나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맞춤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글을 브런치에서 보았다. 그걸 문학적 허용이라고 부르겠단다. 나라를 구할 용기 있는 사람을 내가 브런치에서 만나는구나.

이 세상에 나만 보는 글이란 없다. 그런 글이라면 애초에 공개되어서도 안 된다. 일단 남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게시된 글이라면 싫으나 좋으나 읽는 사람, 독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란, 독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잘 쓴 글, 못 쓴 글은 모르겠지만 좋은 글, 나쁜 글은 확실하게 구별된다. 읽는 사람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글은, 못쓴 글이기 이전에 그냥 나쁜 글이다.


앞으로 주제넘은 오지랖은 절대로 부리지 않을 생각이다. 남의 글을 두고, 남의 맞춤법을 두고 ‘일해라 절해라’ 할 생각은 이제 없다. 하지만 내 글 안에서만큼은 절대 양보 못하겠다. 적어도 내 손님께서 드실 음식이니 작은 티끌 하나라도 나는 용납 못하겠다. 기왕에 벌레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앞으로는 오지랖 대마왕보다는 더 자잘한 맞춤법충忠으로 살아볼 작정이다.

맞춤법을 포함, 내 글에 대한 여러분들의 지적과 조언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언제나 대환영이다. 진심이다.




Image by annekarakas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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