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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l 04. 2022

아동 학대를 향한 당신의 시선

바꿀 의지는 있습니까


   A군은 2010년, 태어난 직후에 입양됐다. 첫 학대가 드러난 것은 2017년으로 A군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자신을 입양한 엄마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은 채 학교에 왔다. 엄마는 이 사건으로 보호관찰 1년과 상담위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A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또다시 온몸에 멍이 들어 등교했다. 엄마에게 맞았다고 교사에게 말했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정작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않아 엄마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오은영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A군이 엄마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가스 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요, 당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고립시킵니다. 사랑을 가지고 등판하기 때문에 어떨 땐 헷갈립니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때로는 그때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줬던 게 사랑 아닌가,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진술할 때 '아니에요, 안 때렸어요' 했다가 이러면 아이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죠."


   그 무렵 엄마와 A군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악화했다. 부부는 서류상 이혼을 하기로 한 뒤 A군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20년 2월부터 A군을 원룸에 홀로 두고 자신들은 친딸과 함께 인근 아파트에 살았다.

   A군의 진술과 상담 녹취록에 따르면 원룸에는 TV와 책상, 냉장고, 침대 등 기본적인 가재도구는 물론 장난감도 없는 방이었다. 부엌문을 잠갔다. A군은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마셨다. 아빠는 하루 한 번 찾아가 달랑 한 끼만 줬다. 오리 볶음밥인데 A군 표현에 따르면 개밥이라고 했다. 흘린 밥을 주워 먹으라는 엄마 말을 거역했다며 이후에는 서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방에는 소리가 전달되는 양방향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스피커에서 엄마의 욕설이 쏟아졌다고 A군은 말했다. 매일 나가 죽으라며 주문처럼 말했다고도 했다. 죽는 방법도 구체적이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죽으려면 벽에 머리를 찧어 죽든지, 혼자 죽고 싶으면 산에 올라가 절벽에서 떨어져라. “


결국 아이가 직접 부모를 신고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JTBC 뉴스 캡처)


   당시 A군의 상담기록을 보면 이런 엄마의 폭언과 정서학대에 심각한 후유증을 보이고 있었다.

   갑자기 괴성을 지르거나 옷을 벗는 등 이상행동과 돌출 행동은 심각했다. 교사들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원룸은 냉난방도 안 됐다. 한겨울에도 찬물에 목욕하고 냉방에 이불 한 장으로 버텼다. A군의 아빠는, 남자는 군대 가서 찬물에 목욕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본인은 원룸에서 아이와 함께 찬물로 안 씻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김해시와 경찰, 학교, 김해시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도 알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2020년 11월 대책회의도 열었다. 하지만 아동학대 신고를 하지 않았다.

   당시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섣불리 신고한 뒤 또다시 엄마가 무혐의로 풀려날 경우 드러나지 않는 교묘한 정서 학대가 행해질 수 있고 이는 A군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어 확신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보복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도 신고를 주저하게 하는 한 이유였다.


   A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동학대 신고가 무혐의가 난 뒤, A군의 엄마는 '가정을 파탄 나게 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교사들을 엄마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까지 했다.

   김해시 아동보호 전문기관도 똑같은 민원에 시달렸다. 김해시 아동보호 전문기관 조사관이 조사하러 가정을 방문하자 A군이 팔을 물어뜯어 조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당시 A군 엄마에게 시달렸던 교사와 김해시 아동보호 전문기관 관계자는 이 사건에 다시 연루되기 싫다며 인터뷰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2020년 12월 17일 오후 A군은 스스로 경남 김해의 한 지구대를 찾아가 부모를 신고했다. 오늘 찬물에 목욕하고 자면 아마도 얼어 죽을 것 같다며 따뜻한 세상에 살고 싶다고 A군은 말했다. [1]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다. 당시 언론을 뒤덮었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은 누구나의 예상처럼 SNS 관심종자들의 침 발린 구호에 불과했고, 몇몇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과는 달리 통계로 드러나는 아동 학대의 실상은 나날이 더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수치로 확정된 것만 하더라도 2020년, 아동 학대로 숨진 아동은 43명이었다. 2015년 16명, 201년 38명, 2019년 42명에 이어 점점 늘어난 셈이다. 국과수가 2015년에서 2017년까지 3년 동안 발생한, 18세 이하의 아동 변사사건 1천여 건의 부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최대 391명의 시신에서 학대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정부가 공식 집계한 아동학대 사망자, 90명의 무려 4.3배에 이른다. (출처 : 국립과학수사연구소/보건복지부/최혜영 의원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구실이 되지 못하는 감춰진 아동 학대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매년 3만 6천 명의 아동이 학대로 신음하고 있고 해마다 40명이 넘는 어린이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있다. 과연 정인이 사건 당시 꽃다발과 각종 그럴듯한 애도 문구로 자신의 SNS를 도배하던 관종들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자신들의 다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다시금 궁금해진다.


냄비 근성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이미지 : 나무 위키 '정인이 사건' 캡처)


   아동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서 아동 학대가 일어나는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며, 두 번째는 아동 확대의 정황이 의심될 때 경찰 등 관할 기간에 신속하게 알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동 학대를 미연에 막는 이웃의 관심과 재발을 방지하는 단호한 처분이 유기적으로 진행된다면, 미처 피지 못한 꽃들의 예상치 못한 많은 비극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희한한 사건이 하나 있다. 아동 학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응당 제 역할을 맡아야 할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록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사건을 왜곡해서 유야무야 마무리했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아동 학대를 신고한 당신에게, 처음엔 아동 학대가 맞다며 조사를 진행하다가 시간을 질질 끌더니 중간 즈음에 이르러선 아동 학대가 아니라고 기록을 바꾸고, 끝내 당신을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물아 붙인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A는 2년 동안 자신 소유의 별장을 B에게 임대하였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B가 이사를 가는 날, A와 B 사이에는 일부 시설물에 대한 파손과 복구 등을 문제로 다툼이 발생했다. 이 다툼의 과정에서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한 임차인 B는 욕설과 함께 이제 막 돌이 지난 자신의 아이를 B에게 집어던지려고 하는 비상식적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한다.

명백한 아동 학대 행위임을 인지한 A는 이 사실을 즉시 관할 경찰에 신고를 했고, 이후 B는 절차에 따라 조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상급 기관으로 계속 이어지는 조사 과정에서 아동 학대와 관련된 B의 행위는 슬그머니 삭제되고 아동 학대 혐의에 대해서는 결국 무혐의로 종결된다. 오히려 B가 임대인 A를 무고 혐의로 고소를 하는 바람에 졸지에 B는 재판을 받게 되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경찰 스스로가 조사 과정에서 기록했던 아동 학대 혐의는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그저 귀찮았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혐의가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여러분과 함께 이 사건을 처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물론 사건의 전말은 여러분들이 읽어보고 각자 판단해 주기 바란다.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이니 웬만한 의지가 아니라면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충분히 이해했다 하더라도 이미 비겁함을 몸소 보여주었던 다른 이들처럼, 전 마음으로 응원할게요, 댓글로 힘을 보탤게요 하며 슬그머니 발을 빼거나 눈길을 돌릴 수도 있다. 이해한다. 재미있게 노는 놀이터에서 왜 쓸데없이 심각한 이야기를 하냐며 선을 그을 수도 있다.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허깨비에 불과한 구독자수가 절대적인 가치이고, 엉터리 글이라 하더라도 대단해요, 존경해요, 멋있어요, 서로 대존멋을 앞세워 칭찬하는 댓글만 달아야 하며, 글은 읽기도 전에 라이킷부터 누르는 것이 에티켓으로 통하는 이곳에서,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 이런 류의 딱딱한 이야기는 환영받지 못할 것임도 잘 안다. 


   그래서 지금 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동 학대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묻는 것이다.


https://brunch.co.kr/magazine/fixbad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은 남다른 의지와 그 의지의 바탕이 되는 지성적 인간미가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지성적 인간미와 의지를 겸비한 동료는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이란 지성과 의지가 결합되어야만 나올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지성과 의지 없이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결국 변화의 요청에 무관심한 이들의 글은 그저 빈껍데기인 것이다. 


   선례가 있었으니 나의 주장 또한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임은 이미 각오하고 있다. 원래의 글을 쓴 작가님이 아신다면 나의 행동을 말리실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와 형을 잃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던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동행이 내게 그랬다. 약속하지 않았으나 걷다 보니 같이 걷게 되더라고. 돌아오는 답이 없을지언정 백번 떠들어서 한 명을 만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천 번을 떠들 것이다. 변화란 인디언의 기우제와 같은 것이다. 마침내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내는 제사처럼, 바뀔 때까지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끊임없는 두드림을 통해 발전해 왔다.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여태 살아오면서 스스로 깨우친 것이 있다. 내가 먼저 돕지 않으면 나중에 나 역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먼저 고치지 않으면 뒷날 고쳐지지 않은 그 제도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내가, 우리가 당할지 모르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어쩌면 당신의 양심인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것이 아니길 바란다. 진심이다.




* [1] 기사 인용 : 2022년 6월 20일 JTBC 배승주 기자, "얼어 죽기 싫어요" 입양 아이는 왜 부모를 스스로 신고했나?

Image by Ralph Klei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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