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김어준 총수와 일할 때 내가 기술감독으로 채용했었으니 철이와의 인연도 벌써 이십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서로 존대를 하다가 편한 친구가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첫 번째 결혼과 두 번째 결혼 모두 내가 사회를 보았고, 지난 1월에 태어난 철이 첫 아들의 대부까지 된 마당이라, 나도 철이도 서로에게 있어 그저 단순한 친구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굴곡 많았던 고생도 이제 다했다 싶은 즈음에 철이 아버지의 병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음 아픈 일이었는데, 그래도 6개월은 사실 거라 하더니 처음 소식을 들은 뒤로 겨우 한 달 지난 엊저녁에 뜬금없는 부고를 접했다. 부랴부랴 달려온 경북의 한낮은 덥기만 하다.
눈이 퉁퉁 부은 철이가 아버님의 마지막을 설명한 다음, 내 눈치를 슬쩍 보다가 어렵사리 한마디를 덧붙인다.
"진우야, 나 암이란다. 안구 림프..."
나 없는 부산을 혼자 다녀갈 아내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글이냐 싶다가, 글이라도 적지 않으면 황망함을 달랠 방법이 없다. 슬픔이 여전한 걸로 보아 나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