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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Sep 08. 2022

이별기 離別記 (2)



   뒷산에서 벤 나무로 땔감을 만들어 읍내 장터에 내다 팔았다. 신정목新丁目의 사카모토 상도, 본정本町의 다케우치 상도 모두 큰아버지의 단골이었다. 우리말을 못 한다 뿐이지, 다들 인정 많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여태 살던 집을 버리고, 갑자기 자기네 나라 일본으로 도망치듯 돌아간 것도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북한은 무엇이고 전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하우스보이로 오 년 가까이 살면서 나름 견문을 넓혔다고 자부했지만 스무 살의 큰아버지는 대위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군인들에게 팔을 붙잡힌 채로 끌려가는 동안에도 큰아버지의 걱정은 오직 한 가지였다. 만약 대위의 말대로 지금 당장 입대를 하면 내 가방 속에 들어있는 금과 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우리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면 과연 그렇게 해줄까? 정해진 날짜에 무조건 입대할 테니까 고향집에 딱 사흘만 다녀오겠다고 하면, 과연 그렇게 해줄까? 몇 걸음 앞서 걷는 대위의 뒷모습을 보며 큰아버지는 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역사驛舍 밖으로 나왔을 때 마당 한 켠에는 커다란 군용 트럭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는 큰아버지의 등을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떠밀었다. 어쩔 수 없이 발판을 밟고 짐칸에 오르자 군인 둘이 잽싼 손놀림으로 철컥 쇠줄을 걸었다. 앞서 끌려온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여럿이 타고 있었다. 하나같이 겁에 질려 반쯤은 넋이 나간 낯빛들이었다. 큰아버지는 조심스레 가방을 벗어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얼추 삼십 분 즈음 달렸을까?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트럭이 멈춰 섰다. 바퀴를 따라온 먼지가 숨을 막히게 했다. 조수석에 탔던 대위는 어느새 짐칸 아래에 서서 큰아버지부터 찾았다.

   “임군, 자네는 나랑 같이 가지. 얼른 내려.”

   난데없는 호명呼名에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 큰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하, 미군 부대에서 근무했다고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이구나.’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트럭에서 내릴 때, 주위를 얼른 둘러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나 넓은 운동장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줄지어 걷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운데 선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군인들과 트럭들이 바쁘게 드나들었다. 여기는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일까? 환영이니 필승이니 하는 말들이 적힌 하얀 광목 천이 건물 벽에 붙어 펄럭거렸지만 무엇을 위한 환영인지, 무엇에 대한 필승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기차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 둘이 옆에 착 달라붙어 방향을 잡았다. 이번에는 팔짱을 끼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겨우 용기를 낸 큰아버지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 대위님.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말해봐.”

   “강원도 원주, 제가 있던 원주 부대에 전화 한 통 넣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대위는 큰아버지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의미를 헤아리기 힘든 웃음이었다.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잰걸음을 시작했다. 큰아버지도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안고서 그 뒤를 따랐다. 


   큰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가니 붉은 벽 가운데로 작은 출입구가 나타났다. 그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쾅 소리와 함께 철문이 닫혔다. 책상에 앉아 있던 군인 하나가 대위를 보고는 벌떡 일어서서 목청껏 경례를 했다. 대위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가벼운 손짓을 하더니 그에게 말했다. 

   “김상병.”

   “네, 중대장님!”

   “이 새끼, 처넣어! ”

   큰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새끼라면, 설마 나를 말하는 것인가?

   “알겠습니다. 죄명은 뭘로 할까요?”

   대위가 매서운 눈초리로 다시 한번 큰아버지를 훑었다. 곧 그의 목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죄목은… 절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큰아버지의 눈앞이 번쩍했다. 짜아악! 대위가 큰아버지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데 이번엔 난데없이 군홧발이 날아들었다. 욕설은 덤이었다. 결국 큰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가방을 안고 잔뜩 웅크린 큰아버지의 등 위로 무수한 매질이 쏟아졌다. 군인 둘이서 정신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퍼버벅퍼벅퍽퍽퍽. 이마가 찢어지고 입술이 터졌다. 곧 미끄덩한 것이 입술 위로 흘러내렸다. 이유를 가늠할 수 없는 폭행은 한참 만에 멈추었다. 몇 걸음 앞으로 다가오는 군화 소리가 들렸다. 대위일 것이다. 큰아버지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입을 열었다.

   “대, 대위님. 제가 무슨 잘못을... 저는 어떤 것도 훔친 적이 없어요.”

   그는 호소를 들어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는 것 같았다. 곁에 선 군인에게 대위가 말했다.

   “저 가방, 뺏아!”

   가, 가방만은. 몽둥이를 재빨리 허리춤에 꽂은 군인이 큰아버지의 품에 있던 가방을 휙 채어갔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가방 끈을 휘어잡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저것도!”

   대위의 턱짓을 따라 두 번째 목표를 확인한 군인은, 이번엔 큰아버지의 팔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손목에 감겨 있던 시계를 억지로 풀어냈다. 그것은 미군 부대장 존슨이 큰아버지에게 준 이별의 선물이었다. 큰아버지의 팔이 힘없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나라에 전쟁이 터졌는데 도둑질을 해? 미군 부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훔친 신분증이라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았어? 넌 임마, 사형이야, 사형!”

   시계를 쓰윽 훑어본 대위는 큰아버지의 가방을 들고 몸을 돌렸다. 그 상황에서 큰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곧 큰아버지는 두 팔을 잡힌 채 시멘트 바닥 위로 질질 끌려갔다. 길고 긴 복도의 막다른 방 앞에서 멈추었다. 자물쇠가 녹이 긁히는 소리를 냈다. 그그극. 문이 힘겹게 열렸다. 군인들은 그 안으로 큰아버지를 들어 던졌다. 벽에 머리를 찧었다. 다시 한번 자물쇠가 가래를 긁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비좁은 공간. 똥오줌 썩는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한참 만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른 키보다 높은 곳에 손바닥만 한 창이 있었고 촘촘히 박힌 창살이 오후의 햇살을 보기 좋게 자르고 있었다. 온몸에 여전한 통증도 잠시 잊은 채 큰아버지는 생각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고 끝내 눈물이 났다. 주먹으로 스윽 얼굴을 훔쳤다. 눈물과 피가 뒤범벅이 되어 소매 끝에 묻었다. 고향의 가족들과 양식 아재, 존슨 부대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전화, 전화 한 통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당장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날 저녁, 철문 아래로 난 조그만 구멍으로 소금이 대충 뿌려진 주먹밥 한 덩이가 들어왔다. 큰아버지는 거기에 대고 간절하게 애원을 했다. 아마도 김상병이라고 불린 군인이 밥을 주는 것일 게다.

   “상병님, 전화 한 통만 하게 해 주십시오. 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전화 좀 하게 해 주십시오. 저를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어떤 대답도 없었다. 


   그렇게 대략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배식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누군가 달려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왈칵 열렸다. 놀란 눈으로 큰아버지는 몸을 일으켰다. 서 있는 이는 김상병이었고 평소와 달리 그의 손에는 총이, 등에는 군장이 메어져 있었다.

   “야, 임종민!”

   “네, 김상병님.”

   “빨리 나가, 얼른!”

   “네? 나가라니, 어디를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여전히 되묻고만 있는데 김상병이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임마, 인민군이 칠곡 앞까지 왔어. 우리 부대는 지금 후방으로 철수한다. 그러니 너도 빨리 도망가! 여기 있다간 다 죽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김상병이 황급히 사라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큰아버지는 신발을 두 손에 들고서 출입구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 비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건물 밖 운동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군인들과 민간인들과 트럭들이 뒤엉켜 천지분간이 되지 않았다. 전쟁이 나긴 났구나. 하지만 그 따위 것들을 감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큰아버지는 우선, 무엇보다 가방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대위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했다. 정문을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본관 건물로 달려갔다. 

   복도의 한쪽 끝에 행정반이라고 적힌 작은 걸개판이 눈에 보였다. 달려간 속도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책상 위의 전화기가 대뜸 눈에 들어왔다. 그래, 원주 부대로 우선 전화를 하자.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를 열심히 돌렸지만 저쪽에선 아무런 신호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야, 임종민! 임마, 너 여기서 뭐해? 빨리 도망가라니까?”

   그 소리에 놀라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김상병이었다.

   “김상병님, 제 가방, 아니 김판수 대위님, 어디 계십니까?”

   “하, 이 자식 정말... 중대장님은 사흘 전에 전방 부대로 전출 가셨어. 거기 지금 다 죽고 난리도 아니라는데...”

   김상병은 혼잣말처럼 욕설을 섞어가며 중얼거리다가 다시 고함을 쳤다. 

   “가방이고 뭐고 찾을 생각 말고 얼른 도망가! 그리고 원주 부대는 기대도 하지 마라. 강원도는 이미 빨갱이들 손에 넘어간 지 오래다. 자, 나는 이제 진짜 간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종민아. 빨리 가, 빨리!”

   눈앞이 흐려졌다. 가방도, 김대위도 모두 그렇게 사라진 것이었다. 저 멀리서 대포 소리가 펑펑 들려왔고 그것은 점점 가까워졌다.


   남쪽으로 향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에 섞여 부산으로 향했다. 고향으로 가려면 우선 부산으로 가서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남의 밭에 들어가 덜 익은 무를 뽑아 먹었고 시냇물로 주린 배를 채웠다. 

   밤낮없이 사나흘을 걸어 겨우 부산에 도착했다. 양식 아재를 따라 처음 일을 시작했던 중앙동 사무실 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다른 간판이 걸려 있었다. 혹시나 그 앞에서 행여 면식面識이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무조건 얼마 간의 뱃삯을 부탁해볼 참이었다.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결국 포기하고 충무동 항구로 갔다. 저녁 여섯 시에 출발하는 배가 있다고 했다. 원래는 여수까지 가는 노선이었으나 그곳도 이미 인민군이 점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운항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접안한 연안 여객선 근처에서 큰아버지는 한참 동안 눈치를 살피다가 노파의 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몰래 배에 올랐다.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고향을 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 섬, 저 섬을 거쳐가는 탓에 배는 열두 시간이 걸려 노량 포구에 닿았다. 배에서 내릴 때, 결국 도둑 탑승한 것이 발각되어 검표원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욕설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착장에서 고향 마을까지는 또다시 서너 시간을 걸어야 했다.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저 멀리 마을을 지키고 선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오 년 만에 다시 보는 그리운 풍경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지만 나는 나아진 것 하나 없이 오히려 거지 꼴이 되어 다시 돌아왔구나.’ 

   큰아버지는 자책하며 걸었다. 큰길을 피해 논둑길을 따라 마을 입구에 닿았다. 


   행여나 남이 볼까 봐 눈치를 살피며 고향집 담장에 조심스레 붙어 섰다. 방안에선 누군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고모가 나왔다. 큰아버지에게는 그저 그리웠던 여동생의 모습이었다. 열다섯 살이 된 여동생은 이젠 제법 아가씨 티가 났다. 반가웠다.

   “희, 희순아.”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고모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떨어뜨렸다. 

   “오, 오빠.”

   고모는 어쩔 줄을 모르고 툇마루 끝에 미동도 않고 섰다. 큰아버지는 반가운 얼굴로 마당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런데 고모 등에 웬 젖먹이 하나가 업혀 있었다. 저 아이는 누구지? 남의 집 애를 봐주는 건가?

   “희순아, 그 아이는 누구냐?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

   잠시 망설이던 고모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오빠, 이 아이, 우리 막내 동생이다.”

   “뭐라고? 막내 동생?”

   큰아버지는 고모의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모가 또 한 번 어렵게 말을 이었다.

   “오빠 없는 동안에… 엄마가… 새로… 시집을 갔다.”

   “뭐, 뭐라고? 시집?”

   엄마가, 엄마가 새로 시집을 가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큰아버지의 귓가에는 또다시 대포 소리가 쿵쿵 들려오고 있었다.


(계속)



* 큰아버지는 1970년 어느 날, 부산 자갈치 시장 골목에서 김판수 대위를 이십 년 만에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물론 김대위는 큰아버지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큰아버지는 그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여전히 군복 차림이었던 김대위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상태였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지갑 속 현금 모두를 꺼내 김대위 앞에 놓인 깡통에 조용히 넣어주었다고 했다. 

Image by yeon woo le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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