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로언치

5章.니밀할泥蜜割

부로언치浮路言致

by 진우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R_EMa8cVSaiqyX2wBvO7UQ3wYb0.jpg 가독 곽 하오 대감 (1492~1547)


중종 七年 五月, 대감이 동래부東來府 목사牧使로 봉직奉職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모일某日, 대감이 고을을 순시巡視함에 있어 신작로新作路를 지나던 차此에, 모처某處에서 동자童子의 곡성哭聲이 들리었다. 대감, 이를 괴이하게 여겨 거去하니 대로大路 중中에 신원불상身元不詳의 동자가 땅에 엎드려 울고 있음이었다.


대감이 동자에게 하문下問하기를, “너는 어이하여 주중晝中에 슬픈 곡哭을 출出하고 있느냐?” 동자, 대감께 절을 하고 가로되, “소인, 근방 최 참판參判댁 가노家奴이온데 마님의 영令으로 밀가蜜家에서 꿀을 사 오던 중, 실수로 진흙 밭에 미끄러져 꿀을 모두 쏟게 되니 이에 황망慌忙하여 울고 있나이다.” 하였다.


대감이 재차 묻기를, “그런 연유緣由라면 사실대로 고告하면 될 일을 어찌하여 곡哭을 하느냐.” 이에 동자 다시 울며 가로되, “대감의 말씀, 지극히 합당合當하오나 제 주인의 지엄至嚴함이 추상秋霜과 같기에 소인이 꿀을 쏟았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니 저는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사옵니다. 이에 증거證據라도 보전保全하여 연명延命하고자 진흙에 쏟은 꿀을 가려내는 중이옵니다.” 하였다.


대감이 이를 따져보매 진정 어불성설語不成說인지라 재차 말하기를, “네 사정事情, 충분히 알겠으나 어찌 사람이 진흙과 꿀을 능能히 가려낸단 말인가?” 동자, 곡哭을 그치지 않고 다시 고告하기를,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대감, 작금昨今에도 꿀이 마르고 있사오니 원願컨데 소인의 급무急務를 방해하지 말아 주오소서.”


대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숨길 바 없어 다시 동자에게 명命하였다. “너는 내 말을 따르도록 하라. 너의 충심忠心을 진정 귀貴히 여기는 바, 내가 글을 써 줄 터이니 너는 그것을 너의 주인에게 전하라. 그리하면 불상사不祥事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니 동자, “그것이 무엇이오니이까.” 물었다.


대감이 소안笑顔으로 답答하되, “네가 진흙과 꿀을 가려내고 있음을 내가 직접 보았다는 증언서證言書니라.” 이에 동자, 대감의 의향意向을 각覺하고 크게 기뻐하며 큰절로 다시 예禮를 갖추었다. 대감, 지필紙筆을 대령케 하여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글을 적되 그 내용이 곧 니밀할泥蜜割이었다.


니밀할 곽하오泥蜜割 郭河午

진흙과 꿀을 가리다, 곽 하오

(泥 : 진흙 니, 蜜 : 꿀 밀, 割 : 나눌 할)


동자, 감읍感泣하며 증언서證言書를 받아 들고 제 집으로 달려갔다. 대감 또한 크게 흡족하며 당일當日의 행차行次를 속續하였다.




그 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니밀할泥蜜割 고사古事에서 무엇을 깨달았으냐?” 제자 하니夏尼, 앞으로 나아가 예를 갖추고 말하기를, “동자의 생사生死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 유감有感이옵니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죽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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