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가독 곽 하오 대감 (1492~1547)
변방邊方 사람 욱기旭基는 본시 진귀珍貴한 물건 모으기를 호好하여, 고대古代 자기瓷器로부터 서역西域 애로서적愛勞書籍까지 그 수집함에 치우침이 없었다. 고故로 이를 직면直面하고자 욱기旭基의 집을 찾아드는 사람 또한 부지기수不知其數였으니, 차례를 기다리느라 주막에서 삼일三日을 숙식하는 식객食客이 있을 정도였음이다.
욱기旭基의 애장품 중中 가장 세인世人의 관심을 받은 것은 단연코 말馬이었다. 욱기旭基는 여러 필의 명마名馬를 보유하였으되 그중 돋보이는 것이 소안마笑顔馬였다. 그것은, 말의 얼굴이 웃는 형상을 하고 있음에서 유래由來한 이름이었다. 특별히 명命을 하지 않아도 말이 먼저 웃으매, 이를 본 사람들 또한 웃게 되는 형국形局이었더라.
이에 관중들, 앞다투어 칭송稱頌하되,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하더니, 욱旭 대감이 금일今日처럼 부富의 극極을 취取한 것은 소안마笑顔馬의 웃는 얼굴에서 연유緣由함이로다.” 하였다. 이에 욱기旭基 크게 기뻐하며 연회宴會로 화답하고 소안마笑顔馬를 더욱 애지중지愛之重之함은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모일某日, 소안마笑顔馬를 보기 위해 일시一時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렸다. 이에 마구간을 받치고 있던 기둥이 결국 쓰러지고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이때 관중觀衆과 함께 있던 욱기旭基가 다리가 부러지는 변고變故를 당하고 말았다. 욱기旭基의 노여움이 하늘을 찔렀다.
이때 무리 중 누군가가 말하기를, “주인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였음에도 저 말은 웃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痛歎할 일이로다.” 이에 욱기旭基가 소안마笑顔馬를 살펴보니, 변함없이 크게 웃고 있음이었다.
분노憤怒 극에 달한 욱기旭基, 측근의 검劍을 뽑아 목을 베니, 소안마는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 날 이후로,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행동하다가 결국 변變을 당하는 이를 가리켜, 욱기지마旭基之馬라 일컫게 되었다.
욱기지마旭基之馬
욱기의 말.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제멋대로 설치다가 변을 당함. 또는 그런 이.
그때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너희는 욱기지마旭基之馬의 고사古事에서 무엇을 유추하였는가?” 이에 제자 억지抑止가 예를 갖추어 엎드려 말하되, “작금昨今의 명나라가 그러하옵니다. 김치든 한복이든 조선의 모든 것을 제 것이라고 우기고 있으니, 결국은 욱기지마旭基之馬의 화禍를 면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스승이 이를 듣고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내, 너의 재주 잘못 보았던가? 반은 옳고 반은 틀리다. 작금 명나라의 언행은, 욱기지마가 아니라 족가지마足家之馬가 완전 타당할 것이다. 이는 다음 시간에 학습할 내용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