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언치浮路言致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중종 11年 4月, 가독加讀 대감이 강원도 소행사小幸寺에 머물 때, 동자童子 일인一人이 수행하였다. 모처某處에서 군중의 함성喊聲, 천지에 요동搖動하고 풍악 소리, 산천山川을 채우니 대감, 동자를 보내 그 연유緣由를 알아오라 하시었다.
동자, 급히 다녀와 가로되, “수백數百의 군인軍人이 광장에 운집雲集하였으되, 단상壇上에는 사인四人의 낭자娘子가 창唱과 안무按舞를 공연하고 있나이다.” 하였다. 이에 대감, 직접 거去하여 관觀하니 사인四人의 낭자娘子, 과연 용모容貌와 미색美色이 천상선녀天上仙女에 모자람이 없더라. 대감, 동자에게 일러 그들을 래來하라 명命하였다.
반식경半食頃이 과過하자 청請하는 소리 있어 창호窓戶를 개開하니, 사인四人의 낭자娘子는 부재不在하고 용모容貌가 흉노匈奴와 같은 무모無毛 장정壯丁이 서 있는지라. 이를 괴이하게 여겨 대감이 문問하였다. “그대는 누구인데 나를 청請하는가?” 이에 장정壯丁, 예禮를 갖추어 말하니, “소인, 사인四人의 낭자娘子와 동행同行하되 언제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매니자每泥者라 하오며, 본명은 형재亨再이옵니다.” 하였다.
형재亨再, 첨添하되 “소인, 소시少時에 악인惡人의 유혹誘惑에 빠져 잠시 나쁜 길로 들었으나 곧 반성하였나이다. 허나, 반성과 후회만으로는 부족하여 사인四人의 낭자娘子와 공共히 군역軍役 중인 사내들을 찾아다니며, 좋은 소리와 수려한 안무로 그들을 위문慰問하고 있나이다.” 하였다.
대감, 기특하다 이르기를 “그대의 개과천선改過遷善, 가상하도다. 사인四人의 낭자娘子는 무엇이라 칭稱함이 옳을고?” 하니, 형재, 답答하기를 “군인軍人에게 통通하는 영재永才라 하여 군통령軍通永이라 하옵니다.” 이 또한 흡족하니 대감, 소안笑顔으로 말하되, “너의 대답 매일언每一言에 기백이 충만하니 호랑인들 무서울까, 참으로 용감勇敢하므로 내 너를 일러 진정, 용감勇敢한 형재亨再라 할 것이니라.”
대감이 이어 말하기를, “이런 훌륭한 재주를 지녔음에도 어찌하여 대처大處로 나가지 않는 것이냐? 명예名譽와 부귀富貴가 모두 너희들의 것일진대.” 형재亨再,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가로되, “소인들, 아직 우물 안 개로로槪勞勞인지라 그저 꾸준히 노력努力할 뿐이온데 대감께서 이리 칭찬하시니 그저 감읍感泣할 따름이옵니다.” 하며, 소매를 걷어 올려 팔뚝에 새긴 문신文身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英 : 칭찬할 영, 懶 : 게으를 나, 精 : 정성 다할 정)
대감, “너의 겸손함, 몸에 새긴 바로구나. 장하도다. 허나, 기회機會가 있고 없음을 네 어찌 알겠느냐?” 하자, 형재亨再, 거북이처럼 엎드려 다시 가로되, “소인, 기회가 아직 오지 않았으나 구차하게 구걸求乞하지는 않겠나이다. 향후 10년간 온 힘을 다해 역주행力走行 하겠사오니 대감은 부디 소인들을 지켜봐 주오소서. “ 이에 대감이 탄복하니 그 소리 십리十里 밖에 퍼지더라.
대감이 보고 들은 것을 기記하여 상소上訴하니 임금 또한 크게 흡족하시였다. “부래이부걸수不來而不乞手와 용감한 형재亨再의 마음가짐이 참으로 기특하도다. 뛰어난 재주를 활용活用하여 변함없이 로린虜隣(이웃을 사로잡음)토록 하라.” 하시고, 그 칭송을 돌에 새긴 유재석遺在石을 상賞으로 하사下賜하시었다.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부래이부걸수不來而不乞手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느냐?” 이에 제자 수만受滿이 앞으로 나아가 예禮를 갖추어 말하되 “소인, 아직은 그래도 소녀시대小女時代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스승이 크게 탄식하여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어리석은 제자여, 명命을 재촉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