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로언치浮路言致
곽 하오. 조선 중종 때의 학자(1492~1547).
성은 곽郭, 이름은 하오河午, 자字는 다음多音, 호號는 가독加讀, 본관은 제주濟州. 세간世間에 떠도는 말들을 모아 ‘부로언치浮路言致’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매거진每去盡’, ‘부론치북不論治北’ 등을 저술하였으나 왜란倭亂 때 모두 소실燒失되었고, 그중 일부一部만이 구전口傳의 형태形態로 오늘에 이른다.
중종 17年 4月, 나라에 도적盜賊이 들끓으니 민심民心이 흉흉洶洶하였다. 기이奇異한 것은 도적의 얼굴 아는 자者 없고, 각처各處에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하니 잡을 방법 또한 없음이라. 백성의 고통소리 높아지매 임금의 심려心慮 또한 지극至極에 이르렀다.
임금께서 납시어 이르시었다. “얼굴 없는 도적이 출몰出沒하여 세간世間을 어지럽힌다 하니 이런 변고變故가 어디 있단 말인가. 피해자被害者를 속히 들이라.”
이에 경상慶尙에서 상경上京한 문동文同, 앞으로 나아가 절하고 가로되 “소인, 가가오독家家五讀에 당하였나이다.” 임금께서 “가가오독家家五讀은 무엇인가?” 물으시니 문동文同 답하기를 “그것은 지인知人간에 안부를 주고받는 서신書信이옵니다. 소인의 사촌四寸이 사업 시작하여 삼백 냥을 빌려달라 가가오독家家五讀으로 청하였기에 근친지정近親之情을 헤아려 기꺼이 응하였으나 기실其實, 알 수 없는 자의 농간弄奸이었나이다.” 하였다.
이어 전라全羅에서 당도한 오매烏梅, 예禮를 갖추어 엎드려 아뢰기를 “소인, 매시지每時知에 당하였나이다.” 임금께서 “매시지每時知는 무엇인가?” 물으시니, 오매烏梅 답하기를 “그것은, 항시 급한 소식을 직접 전傳하는 종놈이옵니다. 소인의 자식子息이 서당에서 학습 중 낙상落傷하였다 전하기에 스무 냥을 주었으나 그 종놈의 행방行方, 알 길이 없나이다.” 하였다.
더하여 강원江原에서 도착한 황태荒怠, 의복衣服을 정히 하고 아뢰기를, “소인, 포도청捕盜廳에 당하였나이다.” 임금께서 “포도청은 정부의 관청官廳 아니더냐?” 물으시니 황태荒怠 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 포도청 형리刑吏 김미영金美英이라는 자가, 소인이 화적火賊떼와 연루連累되었으니 소인의 창고倉庫에 있는 재물들을 서둘러 포도청으로 옮기라 연통蓮筒하였기에 소인, 어린 마음에 그대로 응하였나이다. 작금昨今 김미영金美英의 종적踪迹을 좇고 있사온데 허사虛事이옵니다.” 하였다.
임금께서 어전御殿에 오르시어,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문무대신文武大臣은 즉각 대책對策을 세우라.” 하시니 사헌부司憲府 공약空約 대감, 나아가 가로되, “이는 본시 명明나라에서 유래한 범죄이옵니다. 명明이 자국민自國民임을 이유로 죄인의 추포追捕에 협조하여 주지 않나이다. 그저 조심하는 것이 대책이옵니다.”
이에 임금께서 일갈一喝하시였다. “나라의 녹봉祿俸을 받는 자, 어찌 조심을 대책對策이라 하는가?” 임금께서 대로大怒하시니 모두가 겁을 내어 아무도 나서서 말하는 이 없더라.
임금께서 다시 말씀하시니 “작금 명明나라는 김치며 한복이며 모든 것이 자기들 것이라 우기거늘 죄인들 또한 자국自國의 것이라 하는가? 허면 임시방편臨時方便으로 가가오독家家五讀을 폐閉하고 매시지每時知를 금禁하면 어떠한가?” 이에 사헌부司憲府 공약空約 대감 다시 답答하되, “근간近間의 백성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모 없이는 살아도 가가오독家家五讀 없이는 살지 못한다 하옵니다.” 이를 듣고 그저 웃는 이, 제주 사람 범수犯手 뿐이었다.
임금이 숙고熟考 끝에 하명下命하시었다. “만백성은 듣거라. 우선은 그저 조심할 지어다. 그저 지키고 지키려면 피하는 방법밖에 없도다. 육조六曹는 모든 행정력行政力을 동원하여 서둘러 이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하라” 이에 대신들 고개 숙여 어명御命을 수受하였다.
그때 스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불상不詳의 도적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겠느냐.” 제자 청강聽講이 앞으로 나서서 예禮를 갖추고 말하였다. “소인처럼 도적에 당할 재물이 전혀 없으면 되는 것이옵니다.” 이에 스승이 크게 탄복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네 말이 정녕 옳다. 서당 회비會費는 내일까지다. 못 내면 즉시 나가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