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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pr 15. 2021

캄보디아의 추억

그곳에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2015년 가을, 뜻을 같이 하는 지인知人들과 함께, 저는 캄보디아로 봉사 활동을 떠났습니다.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리면 나타나는 곳이 꼭저어 (សំរាម, ssamream) 마을입니다.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쓰레기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동네는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포함한 인근의 유명 관광지에서 나온 쓰레기나, 개발 공사장에서 나온 폐자재들을 여기에 그냥 갖다 버린다고 합니다. 경제력을 상실한 마을 주민들은 강압적인 군대의 조치에 저항할 힘조차 없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것이지요.


당연히 어른들은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다 찾아오는 봉사단이나 구호 단체에게 구걸이나 다름없는 도움을 받아 겨우 연명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완전히 버려지거나 처음부터 부모 없이 자라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어른보다 많은 아이들이, 동네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하루를 보내는, 그런 곳입니다.


한편으로 이 곳은, 이른바 일곱 살짜리가 5개 국어를 한다는 씁쓸한 곳이기도 합니다. 매일 아침 두어 시간을 관광지까지 걸어갑니다. 엽서 사세요, 사탕 사세요, 한 푼만 주세요.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술에 취한 아비가 매를 든다고 합니다.


마을 입구가 이 정도입니다. 뒤편은 그냥 쓰레기 하적장입니다.


어른들의 상태가 그러하니 아이들의 위생은 당연히 엉망입니다. 제대로 씻을 리 없습니다. 그나마 열대성 강우가 내리면, 몸을 적시는 것이 전부랍니다.


머리에 '이'가 있습니다.


씻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우리 손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낯선 이방인도 생소할 텐데, 하물며 씻자고 하니, 순순히 올 리가 없습니다. 고민 끝에, 머리를 감으면 초코파이 두 개를 준다고 하자, 금세 수십 미터가 넘는 줄이 만들어집니다. 머리를 감고 초코파이를 받은 눈치 빠른 녀석들은 또 잽싸게 맨뒤로 쪼로로 달려갑니다.


새치기 한 녀석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혼내지는 않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저희들의 봉사를 도와주는 현지인 아이들 둘을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맨발인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머리털이 없는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습니다. 안경 낀 분은 김석진 박사님.
빠듯한 일정에도 선뜻 따라나서 주신 배우 김영호 형님
뒤에서는 새치기하느라 또 싸움입니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면 공책과 연필을 줍니다.


어른들은 포기했을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은 그래도 밝았습니다. 철이 없으니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무슨 죄겠습니까? 그저 맑디 맑은 저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이 고약한 땅, 얄궂은 부모들이 있는 땅, 그러나 이 땅이 내려다 보이는 저 위의 하늘에는 혹시 신神이 안 계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기억을 못 하겠습니다.
그저 아빠 미소만 유발합니다.
이 꼬마는 저를 보고 도망갔습니다. 이유를 모릅니다.
한 개 먹고 나서 없어지니 한 개 더 달랍니다. 당연히 주었습니다.
아주 당당한 친구였습니다. 미소 구두쇠.
나중에 자라면 대단한 모델이 되지 않을까요?
이 아이에게는 새로운 유니폼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입니다.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진 찍어도 되냐 하니 조심스레 방을 보여줍니다. 참 예쁩니다.
돌아가며 타는 동네 자전거입니다. 자기의 시간을 음미 중인 듯합니다.


가난이 곧 불행은 아니겠으나 가난이 만든 '포기'는 바로 불행입니다.


하지만 겨우 3박 4일의 짧은 시간을 머무르는 동안, 우리가 그곳의 어른들에게 '희망'을 가르치거나 '미래'를 전파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머리를 감기는 우리 옆에 슬그머니 다가와서, 봉사하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던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봉사 활동 기간 내내, 지인들 간에는 매일 저녁 꽤나 속상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1. 직접 봉사 활동을 오지 말고 그 경비를 모아서 그냥 보내자. 그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2. 우리가 호텔에서 숙식하는 것이 부끄럽다. 저렴한 대체 숙소를 알아보자.

3. 이 봉사의 최종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자기만족인가? 우리가 봉사한다는 이른바 과시용인가?

4. 우리나라에도 불쌍한 아이들이 많다. 우선 우리 아이들부터 살피자.

5. 막연한 동정은 금물이다. 객관적으로 보자.


꽤나 많은 이슈가 제기되었으나 어느 질문 하나에도 선뜻 결론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꼬마의 미소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작년부터 우리 모두는 꽤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다시 봄이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사진 찍기든 뭐든 일단 다녀가면 도움이 되었을 텐데,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그나마 보육 시설과 구호 기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도 확연히 줄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곳에 있는 아이들의 생활은 그만큼 더 우울하고 어려워졌겠지요. 작은 관심이라도 더욱 소중히 모아야 할 지금입니다.


즐기고자 떠난 여행이 아니었기에 마냥 추억이라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 아이들의 맑은 눈, 그것을 직접 대한 소중한 경험은 그래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여기에 남겨두고자 합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저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많이 컸을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어린이들은 가난과 질병,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어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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