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Apr 24. 2021

스물다섯살 차이나는 애인

인생, 차암 어렵다


“야! 내가 좋다는데 너그가 뭔데, 어? 대체 너그가 와 이라는 건데?”


결국 주호가 폭발했다. 버럭 하는 소리에 옆자리 손님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가 어색한 미소로 여기저기 대신 사과를 하고는, 우선 녀석을 달래 앉히려는데 주호는 담배를 챙기더니 결국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명수는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상훈이는 커피잔에 남아있던 얼음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꽈드득. 얼음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후 하는 한숨이 나도 모르게 밀려 나왔다.




주호, 상훈, 명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서 서로 담을 붙이고 살았다. 앞장서기 싫다는 공부에서부터, 지지 않겠다는 장난에 이르기까지, 유난히도 별난 시절을 함께 보냈다. 고등학교는 따로 다녔어도 사는 곳은 그대로여서, 주말이 되면 변함없이 모여 놀거나 공부를 같이 했다. 진학과 취업 때문에 잠시 떨어졌다가 서울에서 다시 만난 뒤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각자를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해도 될 만큼 비슷한 궤적으로, 그리고 서로 닮은 인생으로 살아왔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적령기라는 나이에 맞춰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을 했는데 유독 주호만 여태 싱글이다. “아이고, 이 눔들아. 너희들만 그렇게 재미있지 말고 우리 주호 좀 어떻게 해 봐라.” 어머니의 지청구는 더 이상 새롭지도 않았다. 우리도 주호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다. 올해는! 반드시! 하며 의기투합한 각자의 아내들까지 나서봤지만 모두 실패였다.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이번엔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나 따져 물으면, 그저 시익 웃기만 할 뿐이었으니 사실은 그게 더욱 속 터질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한해 두 해가 가고 주호도, 우리 모두도 어느덧 오십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 같이 얼굴이나 보자며 주호가 먼저 연락을 해 온 것은 지난주 금요일의 일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시선을 모은 우리 앞에서 주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 결혼할 것 같다.”

“머라고? 진짜가?”


우선 상훈이가 물었다. “베트남? 필리핀?”

다음에 명수가 이었다. “혹시 보이스피싱 당했나?”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어떻게 만났노?”


캠핑 동호회에서 만났단다. 하긴, 주호가 캠핑 마니아인 걸 감안한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작인 거다. 맨 처음은 작년 가을 어느 캠핑장에서, 그 뒤로 두세 번은 우연, 그 이후론 따로 약속을 정해 만났고 그러다가 결국 얼마 전부터는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할 것 같다'는 말을 제 입으로 할 정도면, 내가 보기엔 단순히 교제를 시작한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관계인 것 같았다. 오징어처럼 팔을 꼬아대며 놀리던 명수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주호에게 툭 던졌다.


“그런데 주호야. 그 아가씨 말이다. 올해 몇 살인데?”


그러고 보니 주호의 말 중에는 상대방의 나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나도 갑자기 궁금해졌다. 주호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답했다.


“응, 생일 지났으니 이제 스물다섯 살이다.”


머, 머라꼬? 우리가 잘못 들었나? 스, 스물다섯?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 명수의 형식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고향은, 직업은, 사는 곳은, 형제는, 종교는, 키는. 주호가 또박또박 답을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명수가 붙여 물었다.


“장인, 아니 그 아가씨 아버지는 올해 어찌 되시노?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는 쉰다섯, 오십오 세. 어머니는 쉰셋. 오십삼 세다.”


아뿔싸. 오십오 세 장인에 오십 세 사위, 오십삼 세 장모에 오십 세 사위. 이십오 세 아내에 오십 세 남편. 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명수가 조심스레 주호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결혼하겠다는 거, 너 혼자만의 생각 아이가?”

“아가씨가 먼저 그러더라. 결혼하자고.”

“그 아가씨가 니랑 결혼하려는 거, 아가씨 부모님들도 아시나?”

“아직 찾아뵙고 인사드리지는 않았다.”


이번엔 상훈이가 순서를 이어받았다. 상훈이는 처음부터 이 결혼이 불가한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부당한 사례를 들어 상훈이가 지적을 할 때마다 주호는 또 타당한 사례를 들어 항변을 했다. 질문과 답변이 어느새 공격과 방어로 바뀌던 어디쯤에서부터 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고 결국 상훈이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니, 미친 거 아이가? 내 큰아들이 스물 한살이다. 정신 차리라, 인마!”


주호도 그 말을 듣자, 얼굴이 벌게지더니 테이블을 내려치며 일어섰다.


“야! 내가 좋다는데 너그가 뭔데, 어? 대체 너그가 와 이라는 건데?”




이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다. 이런 일은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친구가, 둘도 없는 내 친구가 그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되다니. 내 친구가 피앙세를 만나 결혼을 하겠다 하니 그것은 무조건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 정말 잘됐다는 말이 왠지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스물다섯 살 차이 나는 애인. 나는 과연 이 대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주워들은 사례를 근거로 어떻게든 친구를 만류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인생, 각자 사는 것인 만큼 그저 축하해주는 것이 옳은 걸까? 그런데 그렇게 축하해 버린다면, 그것은 순수한 축하가 아닌,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방임으로 자꾸만 느껴지는 것은 왜, 어째서일까?




그 날 주호는 결국 커피숍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밤늦은 시각에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도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나? 이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나?


나는 즉답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내 친구에게 도움이 될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 만에 겨우 이렇게만 답을 보냈다.


내일, 우리 둘이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그리고 상훈이와 명수를 이해해라. 모두 너 잘되라고, 그래서 하는 소리잖니.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 웬만한 고민에는 나름의 조언을 할 만큼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아직 멀었다. 친구의 진지한 고민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다니, 내가 정말 무능하게 느껴진다. 인생, 그래서 어려운 것인가 보다.


* 편의상, ‘주호’는 가명입니다. 열흘 째 연락이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쪽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