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르게 날기 시작해서 가장 느리게 떨어진다.
셔틀콕
세게 라켓을 휘둘러도, 셔틀콕은 저 멀리까지 날아가 버리지 않는다. 제 힘으로는 뜨지도, 날지도 못하지만 저 위로 솟구쳤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모두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 결국은 땅에 떨어질 테지만 그전까지 치솟는 일을, 시선을 잡아 끄는 일을,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거나 반대쪽으로 내 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셔틀콕.
나를 향해 쏘아올 때조차도 - 설령 상대편이 우락부락한 근육맨이라고 할지라도 - 그다지 겁이 나지는 않는다. 테니스공, 축구공, 야구공, 골프공, 말랑하든 딱딱하든 다른 공이 내 쪽으로 날아오는 때 몸이 움츠려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도 순간 속도는 셔틀콕이 그들 중 가장 빠르다 한다. 가장 빠르게 날지만 결국엔 부드러워져서 도착한다. 셔틀콕.
셔틀콕은 배드민턴 공이다. 배드민턴은, 치다 보면 마치 칼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네트가 양 편 사이를 가르고 있어 서로 직접 베거나 찌르며 상대방 몸에 라켓을 대지는 못하지만. 적당히 힘, 방향, 거리를 조절하며 라켓을 휘두르고 상대방 코트를 향해 셔틀콕을 쳐 보내는 일은 긴 칼을 들고 대치하다 한판 부딪치는 일과 닮았다. 힘과 방향의 계산, 상대방과 나의 적당한 거리 유지, 덧붙여 한 번 휘두르고 난 후 어쩔 수 없는 잠깐의 무방비 상태, 이를 회복하기 위한 재빠른 후속 동작 등등. 셔틀콕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계속 움직이며 라켓을 휘둘러야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실수로 얕게 쳐서 네트를 많이 넘어가지 못한 셔틀콕을 상대방이 스매시로 쳐서 공격해 올 때, 뒤로 뛰며 라켓을 휘둘러보지만 받지 못하고 상대방의 일격을 피하지 못해 무릎을 꿇는 칼잡이 모양이 된다. 쏟아지는 피는 없고, 다만 떨어진 셔틀콕을 주워 분한 손으로 상대방에게 던져줄 뿐이지만.
세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아무리 세게 라켓을 휘둘러도 저편 코트로 넘어간 셔틀콕은 순해진다. 깃털이 그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드러움이 좋아 보인다. 상쾌한 소리를 타고 저쪽으로 날아가다가 순순히 떨어지는 셔틀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