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게 찍힌 사람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나는 찍혔다. 나는 몰랐다. 나는 올려졌다. 나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는 욕받이가 되었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나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미움 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보였다. 나는 공유되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이해했다. 곧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공유되어야만 했다. 나는 확실히 도움 받는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도움 받은 사람이 되었다.
내게 얹어진 말들은 말이었다가 먼지가 되었다가 다시 돌이 되었다가 또 칼이 되었다. 나는 나였다가 선생이었다가 한 사람이었다가 거의 병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왔다기보다는 무언가 내 안에서 생겨났다는 편이 정확하다. 담담했던 그것은 답답한 것이 되었고, 답답했기 때문에 뒤로 내보내려 소화시키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굳은 마음으로 그것을 다듬어서 입을 통해 꺼내려고 하였으나 다루려고 할 때마다 숫돌에 벼려지는 날붙이처럼 그것은 더 날카로워졌고 드문드문 내입을 통해 나오는 것들은 나와 내 주변까지 다치게 할 것 같았다. 없애지 못한다면, 내 안에만 남아 결국 내가 죽겠지만, 꺼내면 꺼낼수록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다치게 할 병기가 되어갔다.
올린 이나 전한 이나 알게 된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양면 각각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른쪽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과를 원한다.
그 사과가 찍히고, 올려지고, 웃음거리가 되고, 욕받이가 되고, 보이고, 공유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미움받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그리하여,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도움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를 원한다. 양면 각각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확실히 모르더라도, 다른 쪽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내가 정확히 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닌 복수다. 이것이 내 마음의 일부. 그러나 복수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안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는 것도 안다. 불바다가 아닌, 화해를 향해 방향키를 돌리려 애쓴다. 같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또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나를 살리는 일임을 안다.
그리하여, 이 글의 한 문단은 다시 쓰인다.
사과를 원한다.
그 사과가 올려지고, 오롯이 있기를 원한다. 자신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도움 받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적어도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확실히 도움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되돌아 볼 때 결국은 담담한 일이 되기 원한다.
마음 속에만 담겨 있는 말들, 혼자 하는 말들, 허공 중에 묻은 것들과 내밀한 것까지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전한 말들이 아닌, 다른 어떤 말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