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울을 통해 보는 내 모습과 남이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은 이리도 다른 걸까? 분명 내가 거울을 통해 본 내 얼굴은 나름 봐줄 만했는데, 가끔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예상과 가장 달랐던 모습은 바로 활짝 웃는 표정인데, 얼굴 근육이 잔뜩 일그러지며 내가 평소에 연습했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내 얼굴의 모든 콤플렉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을 보고 나면 자존감이 낮아져 한동안은 성형 수술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곤 한다. 남들이 찍어준 사진 속 내 얼굴은 왜 이리도 못생겼을까? 가장 보기 좋아야 할 웃는 모습이 가장 비호감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거울을 통해 본 내 모습이 아니라 남들이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이 '진짜'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 듣는 목소리가 아니라 녹음된 내 목소리가 진짜 객관적인 내 목소리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내 습관도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을까?
카메라 마사지
스스로 인지하는 내 모습과 카메라를 통해 본 내 모습에서 가장 큰 차이는 표정과 자세였다. 나는 평소 나의 자세가 그렇게 구부정하다는 것, 말을 하거나 웃을 때 내가 얼굴 근육을 그런 모습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런 걸 보통 '카메라 마사지'라고 부른다. 연예인처럼 카메라에 찍힐 일이 많은 사람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의 객관적인 얼굴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평소 습관과 객관적으로 보이는 나의 단점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며 객관적으로 점점 더 나은 외모가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평소에 카메라 앞에 설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남들이 찍어준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 예상과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엔 매 순간 거울에 비치는 피드백을 통해 얼굴 표정과 자세를 수정하기 때문에 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보여주던 거울이 없어지면 우린 다시 무방비 상태로 돌아간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짓던 표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 본 모습이나 셀카 속 모습은 우리의 평소 모습이 아니다. 제삼자의 눈을 통해 본 모습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다.
사용하는 근육 바꾸기
하지만 연예인이 아닌 내게도 방법은 있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을 기회가 없다면 스스로 하면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내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보기로 했다. 몇 년 전 쓰던 오래된 휴대폰을 꺼내 책장 위에 설치하고 책을 두 세 문장씩 따라 읽는 모습을 촬영했다. 촬영은 하루 3분이면 충분했다.
먼저 내가 '원하는 모습'과 '원치 않는 모습'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촬영된 영상을 보며 내가 말을 할 때의 나쁜 습관이 무엇인지, 내가 맘에 드는 얼굴을 할 땐 내가 어떻게 표정을 짓는지 근육의 움직임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영상 속 내 모습에서 가장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턱과 눈썹근육이었다. 그전까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촬영된 내 모습을 보니 항상 턱을 앞으로 내밀고 말할 때마다 눈썹을 위로 치켜뜨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그렇게 눈썹근육과 코 근처 근육이 맥없이 풀어지면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얼굴이 만들어진다.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근육을 바꿔야 했다. 눈썹 근육으로 눈을 치켜뜨는 대신 눈 자체 근육에 힘을 주고, 인중에 힘을 주는 대신 입 꼬리 아래 근육에 힘을 주며 웃어야 내가 원하는 표정이 완성됐다.
물론 의술의 힘을 빌리면 손쉽게 해결되는 문제다. 보톡스를 통해 사용하고 싶지 않은 근육을 마비시키면 자동으로 원하는 부위의 얼굴 근육만 사용하게 되니까. 하지만 보톡스는 몇 개월간의 단기적인 효과를 줄 뿐이고 내성의 위험이 있다. 게다가 보톡스를 맞은 표정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는 TV 속 연예인들의 모습을 통해 수없이 봐왔다.
중요한 것은 각도
처음 며칠간 눈썹 근육이 아닌 눈 자체 근육을 이용해 눈을 뜨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눈에 힘을 주는 모습을 촬영하고 보니 전혀 내가 예상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억지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명백히 보였고, 그 모습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불편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눈에 자연스럽게 힘을 주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켰다. 화면을 보며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 한 가지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고개를 내리고 턱을 안쪽으로 당기면 눈이 앞을 살짝 올려다보게 되어 자연스럽게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굴의 '각도'였던 것이다. 셀카를 찍을 때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얼굴이 달라 보인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얼짱각도'라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셀카를 찍을 때 카메라를 45도 각도 위로 높이 들고 찍으면 얼굴이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턱을 위로 치켜드는 습관이 있었다. 이 습관이 카메라를 턱 아래쪽에 두고 셀카를 찍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던 것이다.
지렛대의 원리
그런데 이렇게 턱을 안쪽으로 당기는 것의 효과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턱을 안쪽으로 당기려고 할 때마다 뒷목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경직되는 것이다. 억지로 눈을 뜨려고 했을 때처럼 또다시 어색한 모습이었다.
또다시 카메라를 켜고 화면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두 번째 사실,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 고개가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것이다!
마치 지렛대의 원리로 관절형 스탠드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가슴을 펴고 어깨를 뒤로 젖히면 뒷목이 늘어나며 자연스럽게 턱이 당겨지는 것이다. 턱만 억지로 당길 때는 몸이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었는데,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뒷목을 늘리자 자연스럽게 턱이 당겨지며 자세가 잡혔다.
몸이 기억할 때까지
하지만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저절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천에 옮기지 않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실천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나쁜 습관을 고치거나 좋은 습관을 새로 익힐 때 일정기간의 불편함은 필연적이다. 조금만 의식을 놓으면 우리의 몸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습관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우리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한번 습관을 제대로 들이면 그다음부터는 전혀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달리 말하면, 습관이라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카메라 마사지를 받은 지 일주일째. 아직은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서 어떤 날은 카메라 마사지받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조금만 정신줄을 놓아도 금세 예전의 나쁜 자세로 돌아가버린다. 아직은 10분 간격으로 자세를 의식해야 하지만, 자세를 다시 잡아줘야 하는 시간 간격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자세를 의식하고 고쳐 앉는 것은 꽤 귀찮은 일이지만, 달라진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 그런 귀찮음 따위는 하찮게 느껴진다. 전과는 다른 바른 자세와 자신감 있는 표정이 내게 확실한 보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