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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재 Jan 20. 2023

한 시간에 한 권, 이게 되네?

책을 빠르고 정확히 읽는 법


작년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읽는 책의 수는 일주일에 두 권을 넘지 못했다. 혹시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독서라는 습관 자체가 싫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물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독서가 매일의 습관으로 자리 잡고 나니 슬슬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시간에 1권


이런 이유로 내 독서 스킬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다가 '1시간에 1권'이라는 캐치프래이즈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발견했다. 딱 내 상황에 맞는 들어맞는 책이었다. 다니던 도서관에 검색해 보니 마침 대출되지 않은 채로 비치되어 있어 바로 빌려볼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독후감부터 말하자면, 책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내가 얻고자 했던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는 책의 중반부까지도 언급되지 않았고, 드디어 말하기 시작한 독서법에 대한 설명도 그리 와닿지 않았다. 잘 다듬어진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처음부터 약간의 의심의 눈초리로 읽긴 했다. '1시간에 1권'이라는 문구가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졌고, 이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은 대부분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밑져야 본전, 책에서 설명한 대로 해보기로 했다. 1시간에 1권 읽기의 핵심은 '한 글자 한 글자 읽지 말고 전체적인 문단을 한 번에 눈에 담는 것'이었다. 책에서 말한 대로 글자를 하나하나 읽지 않고 덩어리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시도는 허탕이었다. 근시와 난시가 심한 내 눈 탓인가, 여러 줄의 문단이 한 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이건 무리였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걸까?


그다음 날 책 읽는 시간에 이걸 한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어제 문단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가 혹시 책과 눈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책을 눈에서 좀 더 멀리 떨어뜨린 채 시도해 보았다. 예감은 적중했다. 책과 눈에 거리를 두자 시야가 넓어졌고, 문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빠른 속도로 50페이지 정도를 읽자 슬슬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책에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땐 가만히 눈을 감고, 책을 빠르게 읽어나가는 독서 천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라고 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문단을 빠르게 훑으며 읽어나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생각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눈을 감고 마음을 잡은 뒤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이런 방법을 통해 정말 200페이지의 책을 1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빨리 읽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내가 정말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마침 내가 읽었던 책은 청소년들의 논술대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버전의 고전소설이라 맨 뒤페이지에 해당 소설에 대한 논술대비 문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험 삼아 질문에 답을 해봤는데,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내가 책을 대충 읽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음악을 듣더라도 0.25배속의 느린 속도로 재생하면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멜로디 흐름인데, 이를 너무 느리게 들으면 이 흐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볼 때도 한편을 한 번에 쭉 보지 않고 며칠에 나눠서 보면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에 담으며 며칠에 걸쳐 느리게 읽다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없고, 결국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오래 담을 수 있는 것은 각 단어가 아니라 전체적인 메시지기 때문이다. 결국 책을 빠른 속도로 읽는 것은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함보다 책의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숲도 좋지만 나무도 보고 싶어


그런데 이 독서법엔 내게 잘 맞지 않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난 문장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숲을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나무를 발견하찬찬히 눈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 그래서 책을 빠르게 읽을 때에도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되면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난 뒤 표시해 놓았던 문장들을 따로 모은 필사본을 만든다.


같은 책을 연달아 두 번 읽게 되는 것인데, 처음 속독으로 읽는 것은 요점을 집어내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 집어낸 요점들을 옮겨 적으며 읽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한 번 더 새기기 위함이다.


광각 렌즈로 숲을 전체적으로 훑고 난 뒤에 렌즈를 클로즈업 렌즈로 바꿔 끼고 멋진 나무들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이다. 때로 나무 몇 개를 관찰하는 데에 숲을 전체적으로 훑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딘가 찜찜해하는 기질을 타고난 터라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읽는데 1시간, 필사본을 만드는데 2~3시간이 걸려 모두 합쳐 3~4시간이 걸리게 됐다.


세네 시간은 책을 높이 쌓아놓고 휙휙 해치울만한 시간은 아니지만, 매일 충분히 할애할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다. 어차피 하루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난 영화도 하루에 한 편의상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 편에서 얻은 감정을 적어도 하루는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책 역시 하루 정도는 온전히 그 한 편에 쏟고 싶다.


그렇게 내게 잘 맞는 최고의 독서법을 찾아냈다. 필사본 옮기는 시간까지 합치면 총 세네 시간가량 걸리지만, 어쨌든 책에서 약속했던 대로 1시간에 한 권을 읽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한 달에 10권 읽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미 목표치는 진작에 넘어섰다. 1시간에 1권 독서법에 대한 책을 '읽어봤더니 별로'라고 했던 것에 반성한다. 대단한 책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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