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번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에게

엘리자베스타운 / 몬스터 콜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by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앞으로의 남은 인생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가? 어느 순간 문득 삶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공허한 우주에 버려진 느낌을 받아본 적, 당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내려 절망한 적은?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고뇌를 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을 '두 번 태어나는 사람'이라 불렀다. 삶에 회의를 느끼거나 위기를 겪는 일 없이 선천적으로 쾌활한 사람(제임스는 이를 '한 번 태어나는 사람'이라 불렀다)도 존재하지만,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삶의 의미를 처절하게 찾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점은 누군가에겐 아주 어린 시절일 수도, 누군가에겐 노년의 어느 날 일수도 있다.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에게 그 시점은 불혹의 나이였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잘못되었음을 느꼈고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타운(2005) / 몬스터 콜(2016)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2009)


이 고통은 기질적으로 생겨난 내부적인 요인일 수도, 큰 상실감이나 갑작스러운 변화 등의 외부적인 요인일 수도 있다. 영화 <엘리자베스타운>의 드류(올랜도 블룸)는 사회적인 실패로 인해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빠졌고, <몬스터 콜>의 코너(루이스 맥두걸)는 암에 걸린 어머니를 잃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매일 지옥 같은 삶을 산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베로니카(사라 미셀 겔러)의 경우엔 그런 외부적 요인 없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문득 이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깊은 공허에 빠진다.



터널 끝 희미한 빛을 향해


영화 초반에 이 주인공들은 모두 어둡고 깊은 터널을 마주한다. 생과 사를 오갈 정도로 심각한 절망에 빠져들었고 그 긴 터널 속에서 점점 더 어둡고 깊은 곳을 향해,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는 지점까지 걸어갔다. 그러나 그 막다른 벽에서 이들이 마주한 것은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터널에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을 마주했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지 않고서는 볼 수 없었을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은 터널 이전의 세계보다 더 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고, 더 강해졌고, 더 성장했다.


가재와 같은 갑각류는 평생 탈피를 거듭하며 성장한다. 탈피 과정에서 적에게 노출되고, 신체에 손상을 입고, 실패할 경우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가재가 이런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탈피를 계속하는 이유는 지금의 껍질(외골격) 안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묵은 표피를 벗고 다시 태어나야지만 비로소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고, 탈피 이후엔 언제나 더 단단해지고 강해진다.


톨스토이 또한 절망과 허무의 긴 터널 끝에 마침내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과 봉사에서 빛을 보았고, 사십 평생 은밀하게 묵혀왔던 부정적인 세포를 버리며 완전히 새로 태어난다. 이 전환점을 통해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그는 몇 년 후 아들의 사망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후에도 이를 극복하고 활기차게 살았으며 말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두 번 태어난 자만의 특별함


이렇게 두 번 태어난 사람들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의미가 생기고, 확신에 가득 찬 빛나는 눈을 갖게 되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삶을 살게 된다.


헤르만 헤세, 괴테, 라흐마니노프, 레오나르도 다빈치, 찰스 다윈, 링컨 대통령, 처칠 총리까지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위인들 중 고통스러운 마음의 병을 거쳐 다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새는 알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수많은 터널을 마주했던 나는 어둠이 찾아올 때마다 '난 왜 한번 태어나는 사람처럼 평온하게 살지 못할까'라며 자책했다. 그러나 두 번 태어나는 사람들의 특성을 알게 된 지금은 오히려 이를 자랑스러운 훈장이라 여긴다.


당신이 지금 지나고 있는 터널은 고통스러우리만큼 길고 깜깜하지만 그 터널 끝에 빛을 발견하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어느 한순간이다. 태풍처럼 몰아치던 파도가 호수처럼 잔잔해지는 순간, 갑자기 세상의 모든 장막이 걷히고 무한한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 온다.


먹구름에 갇힌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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