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꿈의 주체가 '남'이 될 때의 에너지
1917 / 천국의 아이들 / 행복을 찾아서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의 목표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돈을 많이 벌거나 직업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자아실현을 위해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라던가, '여유로운 삶을 위해', '좋은 집에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려고', '어머니가 더 이상 힘든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해서', '척박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처럼,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목표를 말하는 이들은 언제나 각자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타인을 위한 목표'는 성공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자주 하는 단골 멘트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17 (2019), 천국의 아이들 (1997), 행복을 찾아서 (2006)
영화 <1917>과 <천국의 아이들>, <행복을 찾아서>는 언뜻 보면 공통점이 전혀 없는 영화들로 보일 수 있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고, <천국의 아이들>은 이란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어린 남매의 이야기다. <행복을 찾아서>는 미국의 기업가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가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성공 스토리다.
각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이루어 내는 성과와 영화적 분위기는 모두 다르지만, 이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이 꿈의 주체가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마법 같은 사건'을 보여준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그 차이에서 오는 에너지의 크기
<1917>의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맥카이)와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는 적군의 함정에 빠진 아군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미션을 받는다. 병사 1,600명의 목숨이 달린 중대한 미션이었고, 이들 중엔 블레이크의 친형 조셉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을 살려야 하는 블레이크는 이 미션을 듣자마자 서둘러 길을 나서지만, 스코필드에겐 그저 엄청나게 위험하기만 한 일이었다. 수천 명의 병사를 구한다는 목표는 그에겐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병사 수천 명의 목숨보단 당장의 내 목숨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저 많은 수의 병사를 구한다는 명분은 목숨을 건 미션을 성공시킬만한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다.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아마 미션을 내린 장군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살려야 할 병사들 중에 친형이 있는 블레이크를 뽑았을 것이다. 장군의 예상은 적중했다. 블레이크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툴툴대는 스코필드를 끌고 바삐 걸음을 옮긴다.
이런 스코필드의 태도가 반전되는 건 블레이크의 죽음이었다. 블레이크는 죽는 순간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 미션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고 그 미션은 이제 스코필드의 손으로 옮겨진다. 이제 스코필드에게도 내게 소중했던 존재인 블레이크의 유언이라는 의미 있는 미션이 탄생한 것이다. 포탄과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스코필드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했다. 그 순간 그에게 죽음의 공포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천국의 아이들>의 주인공 알리(아미르 하스미얀) 또한 본인이 아닌 동생 자흐라(바하레 세디키)를 위해 달린다. 알리가 신체적으로 훨씬 뛰어난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을 할 수 있던 이유도 마찬가지로 꿈의 주체가 타인이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욕심이 이유였다면 신체적으로 한계를 느낀 순간 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리에겐 '꼭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고,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다.
타인을 위한 동기는 개인적 동기보다 강력하다
개인적인 명분은 금방 식기 마련이다. 노력하는 주체와 보상받는 주체가 모두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보상보다 내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찾아내 합리화한다.
안전하고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언제나 많은 노력과 고통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넘어야만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다. <행복을 찾아서>의 크리스가 어린 아들과 함께가 아닌, 본인 혼자만의 노숙생활을 했다면 그렇게 큰 동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가족이나 친구 등의 주변 사람들, 혹은 내가 돕고 싶은 대상과 함께 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보자.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목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기반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고양이의 사료값을 벌기 위한 것 일수도 있다.
이렇게 꿈의 주체를 타인으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수십 배, 수백 배의 힘을 낼 수 있다. 이것이 당신의 꿈을 이루게 할 큰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