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메멘토 모리, 죽음 앞의 활기

코코 / 원더풀 라이프 / 유령신부

by 현재

올해 초 별세하신 이어령 교수는 암 투병을 하던 중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앞둔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농밀한 시기라고 말했다.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 이어령, 중앙일보 인터뷰 중


투병기간 내내 책을 집필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며 인생에서 가장 '농밀한' 5년을 보냈다는 이 교수님.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삶의 활기를 더한 이유가 무엇일까.



얀 마뷰즈의 <카론 델레트 이면화, Carondelet Diptych(1517)>의 상단에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자는 모든 것을 쉽게 비웃을 수 있다'는 문구가 쓰여있다.



바니타스, 죽음을 기억하라


16세기 당시 유럽인들은 흑사병, 전쟁, 기근을 겪으며 '죽음'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공허, 덧없음'이라는 뜻으로 그 당시 네덜란드 지역에서 유행한 미술 장르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촛불, 모래시계, 꽃 등이 등장한다. 해골은 우리가 모두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을, 촛불과 모래시계, 거품, 시들어가는 꽃과 과일 등은 유한한 생명을, 깨지기 쉬운 도기는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낸다. 값비싼 장신구와 악기도 등장하는데 이는 현생에서 누리는 쾌락, 부와 권력, 즐거움의 덧없음을 나타낸다. 책은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지식과 지혜 또한 죽음 앞에서는 허무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이렇게 죽음을 그렸던 것은 단순히 허무주의를 표현하고 보는 이들을 우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림 속 꽃처럼 곧 시들게 될 테니 아름다운 꽃과 같은 현재를, 이 순간을 즐기라는 의미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코 (Coco, 2017) / 유령신부 (Corpse Bride, 2005) /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1998)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
슬퍼할 필요는 없어
죽음을 피해 도망 다녀도
마지막엔 모두 한 줌의 재
- <유령신부>



영화 <유령신부> 속 매 순간을 활기차게 즐기는 망자들의 세계는 부귀영화만을 좇아 탐욕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한 산 자들의 세계와 대비된다. 신분상승을 위해 원치 않는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하는 주인공 빅터에게 암울한 이승의 세계는 무채색, 신나는 망자들의 세계는 알록달록 네온 빛으로 보인다. 실제 영화에서도 그렇게 표현된다. 이렇게 현실 세계를 암울하게, 사후세계를 총천연색의 활기찬 세상으로 대비되게 그린 것은 영화 <코코>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서 잊혀진다는 것


멕시코의 전통인 '죽은 자들의 날'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 <코코>. 영화 속 망자들의 세계에선 매일 축제가 펼쳐지고, 모두가 이승에서처럼 자아실현과 사회생활을 하며 활기차게 살아간다. 다만 이곳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하는데, 이 격차를 만드는 통화는 망자에 대한 산자들의 기억이다. 이승에서 망자를 기억하고 제단에 음식과 선물을 바치는 사람이 많을수록, 망자에게 바친 그것들이 저승에 전달되고 부자가 된다.



널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거야
- <코코>



<코코>에 등장하는 망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산 자들의 세상에서 잊힌다는 것.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존재가 잊힐까 봐,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함께한 기억을 잊어버릴까 봐.




소중한 기억 하나가 있다면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이승과 천국의 경계에 위치한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세상을 떠난 이들은 천국으로 가기 전 이곳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선택하고, 이 단 하나의 기억만을 가진채 천국으로 가게 된다. 어떤 이는 그 순간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꼽지 못하겠다며 난감해한다. 영화 속 망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 최고의 기억은 뭘까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의 행복으로 남아았다는 것
- <원더풀 라이프>


세상을 떠난 이가 영원히 머물게 되는 이 단 하나의 기억은 어쩌면 망자를 그리워하는 산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망자와 함께 했던 행복한 그 순간이 산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망자를 떠올릴 때마다 상영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이 그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닐까.




다시 만나게 되는 그날까지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이들조차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게 되면 먼 훗날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다. 죽음을 연구하는 죽음학 박사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는 허황된 꿈이 아니다.


죽음학 박사인 퀴블러 로스는 수많은 체험 사례를 통해 사후세계의 존재를 밝혀냈다. 저서 <사후생>에서 그는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에너지 형태의 사후세계가 존재하고, 죽음을 통해 육신을 벗어나면 우리도 진동하는 에너지체로서 존재하게 되는데,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이들끼리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언뜻 들으면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오랜 연구와 수많은 실제 사례로 밝혀낸 과학적 사실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이자 15년째 죽음학 강의를 하고 있는 정현채 교수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죽음은 막힌 벽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열린 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그렇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얘기한다. 그는 이 '앎'을 통해 자신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 카르페디엠


우리는 모두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처음엔 기괴하고 무섭게만 느껴지는 바니타스화 속 두개골, <유령신부> 속 망자들, <코코> 속 해골은 곧 모두가 마주하게 될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바로크 시대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이 함께 유행했다. '메멘토 모리'는 곧 '카르페 디엠'이다. 삶의 유한함을 상기하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삶은 유한하다, 순간을 소중히 하자.

헤어짐을 슬퍼마라, 다시 만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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