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위 같던 트라우마가 모래알이 되기까지

데몰리션/맨체스터 바이 더 씨/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by 현재


외적인 상처는 그것의 존재와 치유 과정이 눈으로 명확하게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 존재조차 인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알 수 없고 자신조차도 자기 마음속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일일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며, 겉으로 보인다고 해서 깊이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충직한 우리의 마음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상처가 크고 깊을수록 마음은 그것을 겹겹이 싸매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겨 놓는다.


싸매 놓은 상처가 문드러져 악취가 나면 향수를 뿌려 감추고, 무슨 냄새냐 물어보면 시치미를 뗀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데몰리션(2015),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11)


<데몰리션>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이런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이다. 주인공들은 모두 끔찍하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다. 그저 조금 신경질적이고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할 뿐 슬픔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당사자와 별 관계가 없는 주변 사람들이 더 큰 슬픔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열 살 때 성폭행을 당했다. 아버지는 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고, 그런 무덤덤한 어른들의 반응을 보고 나는 별일 아니구나, 그냥 무서운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겼다. 가족들은 내가 상처받지 않은 것 같아 보이자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나는 가족들이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다고 여겼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은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자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괜찮냐고 물어오는 전화 상담원 카렌(나오미 왓츠)에게 그는 사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너무 쉬운 여자여서 만난 지 30분 만에 잠을 잤고 두 달 만에 결혼을 했을 뿐 사랑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데이비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애초에 사랑지도 않던 아내가 어진 것뿐이라고, 마음은 그렇게 그를 속였다.


태양이 폭발해도 8분 동안은 그걸 알지 못한다.
빛이 지구까지 오는데 8분이 걸리니까.
8분 동안은 세상이 여전히 빛날 것이다.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토마스 혼)는 그 '8분'을 끝내고 싶지 않아 작별인사를 하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전화를 받으면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리니까. 현실이 되면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케이시 애플렉)는 아예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 버린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곳에서, 아무도 아닌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살아간다.



슬픔이 모든 걸 삼켜버릴까 봐


아픔을 겪은 이들은 몰두할 대상을 찾는다.


어떤 것으로든 채워버리지 않으면 곧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내 모든 걸 채워버릴까 봐, 매 순간 그 무게를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외면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의미 없는 행동에 집착하기도 하며 슬픔이 차지할 공간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자판기 회사에 계속해서 컴플레인 편지를 보내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는 단순노동과 반복되는 일상에,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는 아빠가 남긴 하나의 열쇠에 모든 시간과 정신을 쏟는다.



아빠는 죽었어, 오스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날 왜 비행기가 건물로 날아가야 했는지, 왜 내 남편이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이해하려고 애써봐도 논리에 맞지 않아.

왜냐면 처음부터 논리에 맞지 않았으니까.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갑작스러운 상실과 큰 슬픔은 '왜?'라는 답이 없는 질문을 남긴다. 이유가 없다는 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원망할 대상을 찾아 미움과 슬픔을 발산한다. 그것이 때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미움의 대상이 가해자가 아닌 주변 사람, 혹은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


나는 사춘기가 되자 내가 겪었던 사건이 심각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왜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 무심하게 대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고,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판단했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다. 어쩌면 난 그 원망의 대상을 부모님으로 삼아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가 된 지금은 나도 그때의 상황을 이해한다. 부모님은 내가 그런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마음에 생긴 상처의 존재를 인정하던 시대가 아니기에 몸에 드러난 상처가 없으면 그만이었고, 그런 일을 겪은 피해 아동과 부모를 위한 지침 같은 것도, 상담을 위한 자료도 없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을 뿐이다. 피해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과일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찾아와 선처해달라고 던 가해자의 부모에게 이성을 잃고 소리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생긴 엄마의 상처는 치유가 되었을까.



타인의 손을 잡고 다시 세상으로


사춘기를 지나며 몇 번의 연애를 했다. 남자 친구와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건 좋았지만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겼다. 남자들은 두어 번 정도 만난 후엔 어김없이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손을 잡는 건 스킨십의 첫 단계니까.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더 가까이 살을 맞대고 싶은 게 당연한 순서니까. 하지만 나는 남자의 살갗이 내 손에 닿으면 징그러운 바퀴벌레가 기어오르는듯한 같은 혐오를 느꼈다.


이 증상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폭력, 그리고 스킨십의 공포. 열 살 때 겪었던 그 사건 때문이겠지.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고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러고 난 후엔 언제나 집에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이별 통보를 했다.


이런 나의 황당한 연애사는 열아홉 살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첫눈에 반했던 그 친구와는 신기하게도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잡고 싶었다. 오랜 시간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와 헤어진 후에 다른 남자를 만났을 때도 스킨십으로 인해 화가 나는 일은 없었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카렌과의 대화에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는 조카와의 관계에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는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꺼내놓게 된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관계를 통해 비로소 이전의 관계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날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것


데몰리션(Demolition)은 건물의 철거, 파괴를 뜻하는 단어다. 건물을 재건하기 위한 첫 단계는 기존 건축물을 무너뜨리고 낱낱이 분해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지를 모조리 비워내야지만 새로운 건물을 세울 수 있다.


뭔가를 고치고 싶으면 전부 뜯어내야 해.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야 해
- <데몰리션>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지옥 같았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날 보호하고자 하는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며, 목숨을 걸고 그 전장으로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데몰리션>의 데이비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사실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자신을,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는 아빠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의 존재를 마침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내의 장례식에서조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둑이 터지듯 흐르고, 총구를 머리에 겨누며 각자의 슬픔을 표출한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그 감정은 그들이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애써 외면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 슬픔은 내내 그곳에 있었다.


난 어린 시절부터 칼에 찔리는 꿈을 자주 꿨다. 수백 번의 꿈속에서,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칼에 찔렸다. 영화를 보러 간 영화관에서, 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집에 침입한 도둑에 의해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계속해서 칼에 찔리는 걸까? 선단 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과 꿈 이야기를 하면 '어젯밤 꿈에서 또 칼에 찔렸어, 나 전생에 칼에 찔려 죽었나 봐'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열 살 때의 사건을 의도적으로 상기해봤다. 가끔 뉴스에서 성폭행 사건을 보거나 비슷한 사례를 접하면 머릿속에 뭉뚱그려 떠오르긴 했지만, 일부러 낱낱이 꺼내놓은 적은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떠올려보기로 결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성폭력은 말 그래도 성적인 폭력이기에 첫사랑 이후로 스킨십 공포증이 없어진 나는 이미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고, 모든 트라우마가 치유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인데도 그날의 사건은 한순간도 빠짐없이 모두 기억났다. 가해자가 무슨 말로 나를 집에 데려갔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내 눈에 들어왔던 건 주방에 꽂혀있던 커다란 식칼이었다.


그 순간부터 난 모든 저항을 멈추고 오직 살기 위해 가해자의 모든 요구에 따랐다. 혹시나 심기를 건드려 어느 순간 그가 저 칼을 집어 들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그 장면을 떠올린 순간 비로소 알게 됐다. 왜 꿈속에서 계속해서 칼에 찔리는지를. 의도적으로 잊고 있던 생명의 위협을 몸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같은 꿈을 수백 번씩 꾸면서도 이유를 전혀 몰랐다.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내 그곳에 있었다. 내가 손을 집어넣어 직접 끄집어내 주길 바라며.


한동안 몸이 무겁고 머리가 멍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오히려 가벼움을 느꼈다. 희미했던 공포의 실체를 생생히 마주하고 나니 되려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칼에 찔리는 꿈을 꾸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극복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 소개하는 이 영화들은 주인공의 완벽한 치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 치유의 과정은 평생이 될 수도, 어떤 것은 평생에 걸쳐도 완전히 치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주인공 리는 언뜻 보면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난 아직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 도시를 견딜 수 없다고 담담히 고백할 뿐이다. 리는 아직 맨체스터를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결말에서 여전한 고통을 보겠지만 내 눈엔 시작이 보였다. 어느 누구와의 관계도 거부하고 살던 그가 조카와의 유대를 갖기 시작했고,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을 분노와 슬픔의 형태로 표출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위대한 첫걸음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바위 같던 트라우마가 모래알이 되기까지


죽음 학자인 퀴블러 로스는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이는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치유의 과정은 수용에서 시작되지만, 그전에 이 5단계를 거치고 나야 비로소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내 경우엔 박 25년이 걸렸다. 수십 겹, 어쩌면 수백 겹으로 꽁꽁 싸매져 있던 그것을 풀어내어 내 앞에 낱낱이 꺼내놓기까지. 25년 동안 내가 좋은 기억을 쌓을 때마다 한 꺼풀씩 벗겨졌다.


열심히 노력했어요.
더는 열심히 할 수 없을 정도로요.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지금 당장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회피하고, 원망하고, 부정해도 괜찮다. 누구나 마땅히 거쳐야 할, 건너뛸 수 없는 감정의 단계일 뿐이다.


지금은 그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한 것들을 보고 최대한 행복해져라. 그렇게 새로운 기억으로 마음에 충분한 근육이 생기고 나면, 당신도 나처럼 어느 날 불쑥 다음 단계로 도약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굳이 억지로 끌고 가려고 힘쓰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살고, 파도가 올 때마다 세상에 뛰어들어 맘껏 헤엄쳐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그 기억들이 거대한 바위처럼 당신을 짓누르고 있더라도, 매일 맞는 시원한 바람과 촉촉한 빗물이 그것을 깎고 깨어 작은 모래알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영원히 사라지진 않지만 더 이상 무겁지 않은,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작디작은 모래알로.



keyword
이전 06화#5. 광대한 우주 속 작은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