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젊음, 그 덧없는 찬란함에 대하여

유스 /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위 아 영

by 현재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친구는 오래전부터 '내가 너 나이만 됐어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을 처음 했을 때가 10년 전이니, 그 친구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다섯 살 어릴 때다. 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마 5년 뒤에도 그럴 것이다.


예순 살의 어머니는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내가 네 엄마 나이만 됐어도' 세상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고 하신다. 이미 그들 모두 지나왔던 길인데,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환상의 세계를 보듯이 말한다. 젊음, 그게 뭐길래 모두가 입을 모아 '내가 5년만 젊었어도'를 외치는 걸까.


대체 젊음이란 뭘까?

정확히 어느 시기까지를 젊음이라 할 수 있을까?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스 (2015) /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2014) / 위 아 영 (2014)


찰나의 아름다움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주인공 마리아(줄리엣 비노쉬)는 경력 많은 여배우다. 돈과 명예, 재능, 우아함까지 갖췄지만 그녀가 가지지 못한 단 하나의 것, ‘젊음’에 집착한다.


영화의 제목인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스위스 실스 마리아 지역에 나타나는 구름 폭풍인데 그 모양이 마치 뱀이 말로야 계곡을 휘감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말로야 스네이크’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이 ‘말로야 스네이크’는 마리아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작품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젊음을 무기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배역을 맡아 이름을 알렸다. 그런데 왜 이 작품에 하필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신비로운 마력을 가진 ‘말로야 스네이크’와 ‘젊음’. 이 둘 사이엔 오묘한 공통점이 있다.


'말로야 스네이크'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숨 막히는 장관이다. 이 구름 폭풍을 한번 본 사람은 그 장관을 절대 잊지 못하며, 그것을 영상으로 담거나 그에 대한 글을 쓰는 등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고 한다. ‘말로야 스네이크’의 작가 빌렘 또한 그러했으며, 그는 끝내 말로야 계곡에서 이 구름을 기다리다가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청춘을 일시적으로 소유할 뿐,
나머지 시간은 그것을 회상할 뿐이다

-앙드레 지드


젊음이란 어쩌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모두를 홀리고 넋을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마는 ‘말로야 스네이크’가 아닐까.



'쿨'함에 대하여


바람을 피우는 남자 친구를 찾아가 총을 쏘거나, 유부남과 데이트를 하는 모습으로 매스컴에 오르는 조앤(클로이 모레츠). 이런 조앤의 모습을 보고 실소를 터뜨리는 마리아에게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은 말한다. “쿨하잖아요.”


처음엔 한 귀로 흘려보내던 이 ‘쿨하다’는 말은 어느새 마리아에게 강박으로 작용한다. ‘젊음’이라는 면죄부가 없어진 마리아는 조앤처럼 ‘쿨’한 스캔들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앤과 함께 파파라치를 피해 다니고, 셀러브리티가 모이는 행사에 가봐도 여전히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는 마리아. 조앤의 무모함과 그 세대가 인정하는 ‘쿨’한 모습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어색하고 바보 같은 모습이 되어간다.


그녀는 자신이 ‘쿨’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스스로를 한물간 여배우로 인정하기에 이른다. 자포자기한 그녀는 자신을 캐스팅하기 위해 대기실로 직접 찾아온 감독에게도 본인 대신 조앤을 추천한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거절하며 조앤의 젊음과 인기가 얼마나 가벼운지, 반면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관록과 우아함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말한다.


젊은이는 별 이유 없이 웃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매력이다

- 오스카 와일드


조앤은 쿨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단순히 젊거나, 남들이 금기 시 하는 행동들을 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쿨한 것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당당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젊음’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관록과 우아함을 무기로 자신감 있게 행동한다면 그녀 역시 ‘쿨'한 배우가 될 것이다.



젊음,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위 아 영>의 주인공 조쉬(벤 스틸러) 역시 젊은이들의 쿨한 생활방식에 매료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조쉬에게 찾아와 존경심을 표하는 감독 지망생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 젊은 커플이 가진 다이내믹한 에너지에 반한 조쉬는 그들과 함께 힙합을 배우고, 환각 파티에 가고, 자전거를 타며 젊음을 흉내내기 위해 애쓴다. 나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신체활동으로 온몸이 쑤시지만, 다시 젊음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에 한껏 들뜬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사실 제이미가 조쉬의 작품을 존경한다던 것은 말 뿐이었고, 그저 조쉬가 가진 것들을 발판 삼아 이름을 알리고 싶어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었다. 제이미가 조쉬에게 얘기했던 특별한 경험과 사상조차 모두 어디선가 보고 들은 거짓말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쉬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제이미는 악마가 아니야.
그냥 젊은것뿐이야.

- <위 아 영>


조쉬의 눈에 젊은이들은 더 이상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위험하고 가슴 뛰는 모험으로 가득한 불안정한 삶이 아닌, 가진 것들을 누리는 우아하고 안정적인 삶을 원하게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가능성의 미학


젊음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제대로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빚어지지 않은 흙덩어리처럼,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그들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발산하는 역동적인 에너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무모함이 그 무한한 가능성을 만든다.


반대로 나이 많은 이들이 느끼는 권태감은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에, 그래서 잃을 것이 많기에, 그 위험성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열정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간다면 그들에게도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서로를 갈망하는 젊은이와 나이 든 이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의 마리아와 <위 아 영>의 조쉬는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명예, 돈, 지식을 모두 가진 그들은 이미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젊음'에 집착하며 암울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들은 젊은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앞뒤 생각하지 않고 뛰어드는 무모함과 그 에너지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부와 명예다.


우리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나이가 어린 자들은 넘치는 에너지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지만 한편으론 그 불안정한 상태 때문에 불안해하고, 나이가 많은 자들은 어린 자들에 비해 여유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대신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권태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은 그 시절에 자신이 젊다는 사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후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젊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젊음을 허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특성이다. 젊은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일생의 단 한순간이다. 이미 한번 가져보지 않았는가?


한번 서로의 관점에서 자신의 상태를 바라보는 건 어떨까. 나이 든 자라면 젊은이의 시선에서 자신이 그동안 이룬 것들을, 젊은이라면 나이 든 자의 시선에서 자신의 찬란한 젊음을. 서로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젊은 시절엔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즐기고, 세월이 지난 후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


<유스>의 주인공 프레드(마이클 케인)는 세계적인 지휘자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삶의 원동력이었던 아내가 병석에 눕고 생기를 잃어가자 슬픔에 휩싸여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 후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고급 호텔을 찾은 그에게 이곳은 휴식이 아닌 권태의 공간일 뿐이다.


참을 수 없는 권태 속에서 프레드에게 유일하게 생기를 주는 것은 바로 음악에 대한 열정.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 그 누구보다도 뜨겁다. 일상의 소음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음률을 느끼는 프레드. 결국 그는 결국 자신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무대에 선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닌
마음가짐이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살결이 아닌
풍부한 상상력,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일흔의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아이처럼 왕성한 호기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영감이 끊기고, 냉소의 눈에 덮일 때
스무 살의 인간도 늙는다.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여든 살이라도 늘 청춘이다.

- 사무엘 울만 <청춘>



요즘 유행하는 밈(meme) 중에 '당신의 나이에 시작하기 늦은 것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는 글이 있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무엇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부족한 용기를 가리기 위한 핑계일지 모른다.


'내가 다섯 살만 어렸어도'를 되뇌는 5년 후의 자신을 상상해보라. 그 미래의 자신이 5년 전에 미처 하지 못해 후회할 만한 일에 도전해라. 실패에 대한 부끄러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지만,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평생 남는다.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얼굴에 쓰인 숫자에 갇혀 주저하지 마라.


사무엘 울만의 시처럼, 청춘은 살아온 햇수가 아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의 상태다. 나이 어린 자들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가능성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진다면 그 문은 언제나 열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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