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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Dec 26. 2020

제가 치우면 되죠 뭐

이사일기(2010-2020) - 9. 갈현동 (2018.07)

돌고 돌아 다시


   이사일기. 어느덧 2018년 아홉번째 집까지 왔다. 100일 연속 글쓰기의 마지막도 이제 2주 안으로 다가왔다. 사실 '글쓰기'라고 하기엔 조악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10년 동안의 내 일기를 쓰듯 이어간 사적인 기록일 뿐. 이런 것을 이렇게 드러낸다는 것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끈기와 의지가 1도 없는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 이렇게 시작했고 지금까지는 거르지 않고 잘 왔다.


   28년 간 살던 전주를 떠나 어렵게 8년 동안 지내던 서울을 뒤로 하고, 6개월 간 지내던 엄니집 익산을 다시 등지고, 나는 다시 상경을 결정했다. 


   지방 사람들에게 '상경 한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내가 하려는 일을 이곳에서는 하기 어려워서, 성공의 큰 꿈을 안고 등등. 내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건 음반 레이블에 계약되었는데 그 곳이 서울에 있어서.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면서 그 이유를 조금씩 더 찾으며 8년의 시간이 지났다. 돌연 리턴을 결정하고 엄니 시골집에서 6개월을 보내고,


https://brunch.co.kr/@jayang/117



쉽게 결정


   아홉번째 집은 서울에서 한 차례 살아본 적 있었던 연신내역 부근. 들어가기로 한 센터 사무실에서는 꽤 먼 거리였지만 이전에도 살아봤던 익숙함, 임대료의 저렴함, 그리고 연신내역 7번 출구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가졌던 느낌이 괜시리 좋아서, 그리고 또 다른 집을 보러 가려니 너무 고된 과정이 예상되어,


   쉽게 결정했다. 이 집에서 살기로.



   갈현2동 주민센터 옆 반지하 집. 큰 마음 먹고 6개월 만에 돌아오는데 반지하 집이라.. 사실 며칠간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 카페에서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았다. 사무실은 금천구 독산동 쪽이었지만 거주지로는 내게 익숙한 마포와 서대문 쪽을 주로 알아보았다. 여하튼 나의 자금 상황에서는 마땅한 집이 지상에는 없었다.


   금천이나 은평 쪽 동네로 잘 알아보았으면 지상 투룸으로도 저렴한 가격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 봤던 갈현동 그 집으로 쉽게 결정해버렸다. 왜 그랬는지 그때의 마음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제가 치우면 되죠 뭐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은 결혼 때문에 이사한다고 했다. 집에 가구나 물건들이 많았고, 시골 엄니집으로 짐을 한 차례 다 옮기거나 버리고 왔던 나는, 쓸만 한 것들 중에 두고 갈 수 있는 물건이나 가구들은 남겨두고 가시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이사날 그 분은

   "물건이나 가구들 두고 가시면 더 좋다고 말씀하셔서 많이 남겨두었습니다. 몸만 들어와서 사셔도 좋으실 거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 말이 살짝 불안했는데, 그 결과가...


주방, 큰 방, 작은 방 모습

   이것 저것 정말 많이 두고 가셨다... 결혼 후에도 필요한 살림살이만 쏙 가져가고 나머지는 죄다 남겨둔...


   침대나 냉풍기, 스탠드 거울, 책상 같은 것 두고 간건 고마운데(물론 그것도 오래된 것), 자기 살림살이에 먹던 반찬까지 냉장고에 그대로...


   너무 기분이 나빴다. 쓸만한 가구나 물건들은 필요 없으면 놔두고 가라는 말에 버려야 할 본인 살림살이, 반찬, 양념 같은 것들까지 죄다 집에 두고, 그냥 버리고 필요한 것만 갖고 나가버렸다. 몇 차례 연락을 해봤으나 이제 연락도 안 되고, 집 주인분에게 하소연하였으나 '그럼 제가 가서 좀 치워드릴까요?' '아, 아니요..'


   집주인에게 험한 꼴 많이 당해봤는데 이젠 이전 세입자에게까지.. 


   창문을 열어 잠깐 심호흡 한 번 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을 갖고 이랬다 저랬다 했던 나 자신이 떠안아야 할 문제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정리하는데 꼬박 3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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