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werzdx Jan 07. 2021

마지막 이사 (3)

이사일기(2010-2020) - 10. 합정동 (2020.07)

계약 절차의 마무리


   계약서의 어떤 곳에는 서명을 하고, 어떤 곳에는 지장을 찍었다. 집주인분은 연세가 많으셨다. 그가 계약서류를 대하는 방식들이 오래된 그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모든 것에 꼼꼼하고 정확하셨다. 어깨춤에 차고 있던 가방에서 본인의 도장과 펜,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적힌 서류 등을 꺼내셨다.


   남들이 생각했을 때는 고리타분하고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고수하는 분이었지만 임대차 계약이라는 중차대한 의식을 치르는데는 차라리 그런 편이 낫다. 집 계약에서부터 이사 때까지 모두 부동산 혹은 다른 세입자에게 맡겨둔 채 2년 동안 코빼기 한 번 안 비치는 임대인에 비하면 훨씬 낫다. 귀찮은 절차들, 마땅히 지키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c11.kr/l3e4

   전세자금대출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계약 날과 어긋나서는 안 되므로 잘 확인해두라는 것, 지금 사람이 나가면 도배를 새로 해야하니 이사 들어올 날짜를 잘 맞추어 시간 조정을 잘 하라는 것 등 세세한 것까지 점검을 하시고 계약 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서울 이 곳에서 나의 존재기한을 2년 더 늘렸다. 그렇게도 없을 것 같던 괜찮은 동네의 살만한 집을 드디어 발견했고 계약 절차까지 잘 치렀다.


   살고 있던 갈현동집의 계약 만료 기간보다 이 집 계약 시작일이 10일 가량 늦다는 것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혹여 문제가 생기면 짐 싸들고 회사 사무실에서 며칠 살겠다는 마인드였다.





가전제품 비용은 하나도 못 받고


   살고 있던 서울의 아홉번째 집, 그곳에 대해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았었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며 너무 다급하게 구했던 집이어서 허점이 많았다. 계약하고 며칠 살고 난 뒤에야 후회를 시작했으니.


   여하튼 모든 짐들을 정리했다. 전 세입자에게 샀던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를 인계할 다음 세입자가 구해졌으면 좋으련만 내가 나가는 날까지 다음 주인공은 구해지지 않았다. 35만원 정도 주고 구입했던 가전들은 돈도 못 받고 대문 앞에 내놓고, 에어컨은 그냥 포기하고.


이미지 출처 : www.duckgooilbo.com/647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동네로 다시 돌아간다는 기쁨이 더 컸다. 현재는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짐들을 용달에 싣고, 합정동으로.


   새로운 집에 안전하게 짐을 내리고, 동네 치킨집에서 이사를 기념하는 의식을 치렀다. 2020년 여름의 한 가운데, 나의 서울살이 열 번째 집에 도달했다. 지난 서너 차례의 집 계약 시점이 계속 여름이어서 이번 이사도 여름이 되었다.



홍합망으로 컴백


   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부터 홍대 근처에서 공연을 할 목적으로 홍대 - 합정 - 망원 근처에서 살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집값이 저렴하지 않은 동네였다. 안 좋고 저렴한 집들을 골라서 이사를 다니기도 하고, 잠시 은평이나 서대문으로 들락날락 하면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전 갈현동에 살 때나, 그보다 더~~ 전인 홍은동에 살 때나 이곳에서 지낼 때나 사실 크게 다른 점은 없다. 집 안에 들어와버리면. 하지만 인근의 좋은 것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들. 어쩌다~~ 만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적절한 관계들의 지인들이 있다. 



   이후 임대차 3법 개정으로 인해 앞으로 4년은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에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저녁, 퇴근하고 망원한강공원으로 향했다. 10년 전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바라보던 풍경 그리고 내 모습, 여전히 어렵지만 여전히 즐겁다. 아직은 효율보다는 재미가 더 중요하다. 그런 점들을 참 다행이라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이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