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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rzdx Jan 30. 2022

나의 세 번째 서울 - 용강동

동네 기록

나의 세 번째 서울 - 용강동(2011.04-2012.02)



염리동에서 언덕을 내려와, 대흥역을 지나, 한강에 르게 되었다. 처음 집을 보러 가면서, '한강변 2층집이면 집에서 한강도 보이나?' 하며 룸메와 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ㅎㅎ 동석과 내가 함께 지낸 마지막 집이기도 했다.


집은 강변그린아파트 근처에 있었다. 주인집에 딸려있는 2층집. 원룸 임대를 위해 건물 옆에 따로 붙은 부속건물이었다. 지하에는 어떤 예술가의 연습실, 1층은 상가, 2층엔 두 개의 투룸집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생활 초창기여서, 집을 보러갈때는 문제점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살다보면 하나씩 드러나보이는 어려움들..  


집이 가진 문제들, 비상식적인 집주인의 조치 등 서울살이 집들 중 내게 최악의 어려움을 준 곳이었다. 개인적인 상황도 몹시 좋지 않았고. 지금의 내겐 그런 기억이 대부분인데, 언젠가 SNS 기록을 살펴보니 그 때 유난히 사람들과 설레고 즐거워보이는 기록이 많았더라고. 당시의 기억과 지난 후에 내가 느끼는 건 꽤 다른가보다. ㅎ



용강동 집에 살 때 내게 가장 익숙했던 경로는 대흥역 3번 출구에서 대흥로와 토정로를 지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길위엔, 지금은 숲길공원으로 단장한 경의선 폐선부지가 있었고, 기사식당 스타일의 가게들이 몇 있었다.


경의선 폐선부지는 이제 사람들의 좋은 산책로가 되었고, 기사식당 스타일의 가게들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짬뽕을 능숙하게 만드시던 셰프님이 계시던, 나도 용기를 내서 몇 번 들어가서 맛난 짬뽕을 맛보았던 가게가 가끔 생각난다(지금은 없다).


경의선숲길공원을 끼고 있는, 백범로에서 독막로에 이르는 백범로16길변에는 이전에는 본 적 없던 느낌의 가게들이 들어와있었다. 공원과 함께 더 젊어진 느낌. 일부러 뭔가를 조성한 느낌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처럼 느껴졌다. 저녁 8시 즈음 근처를 지날 때 느꼈던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좋았다.



자주 이용했던 가게들 중에 대흥로변에 있던 '신촌 즉석 생우동'은 여전히 그자리에 당시의 간판과 외관 그대로 있었고, 강변그린아파트 근처 대흥로변에 있던 '마포닭곰탕'은 대흥역 가까운 쪽으로 이전했더라(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식당). 토정로변의 르네상스 베이커리도 그대로였고, 그 옆에 내가 자주 갔던 즉석짜장면집은 몇개의 상가를 터서 남도술상이 크게 자리잡았다. 고급 중국집 같아 보여 이용해본 적은 없던 화교 중국집 부영각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동네의 가장 큰 장점은 한강과 가깝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시에는 마포대교북단 근처의 아파트 단지까지 걸어가야 한강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었는데, 토정나들목이 생겨서 대림2차 쪽에서도 한강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더군. 합정-망원 쪽의 한강변보다 좀 쓸쓸한 느낌은 여전하다.


마포역 - 용강동 일대에 즐비한 갈비집들을 주인공 삼아 '마포용강 맛깨비길'을 컨텐츠화한 장식물이나 설치물이 있었다. 고가의 음식점들이 많아 막상 나는 살 때 거의 가보지 못했었다. 나는 즉석짜장 이런데를 주로.. ㅎㅎ




여전히 처음 이사온 날 밤의 장면들이 기억난다.

룸메를 그의 방으로 보내고, 방 창문을 열어 한강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집 앞의 길과 강변북로 사이에 심어진 나무들과 은은한 조명을 만들어주던 가로등은 길과 길 사이를 막아선 높은 펜스의 삭막한 느낌을 한껏 상쇄해 주었고, 어디선가 조용하게 시작된 매미우는 소리가 천천히 창가로 다가왔다.


‘지금이 몇 시인데 매미가?’

너무 밝은 서울의 밤이, 매미들에게 낮과 밤을 구분할 분별력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생활에 치여서, 가끔은 취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그것을 잊지 않도록 더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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