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의 파괴적 혁신에 당황하고 있는 영화관
영화관 산업이 침체되고 있습니다. 2019년만 해도 매월 1,500만~2,000만에서 성수기에는 2,500만 명 관객수를 기록하던 영화 산업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2022년 5월 엔데믹이 선언되면서 월 1,500만까지 회복한 듯했으나, 2023년 2월 월 5백만 수준을 기록하며 코로나 시기로 되돌아간 듯싶습니다.
혹자는 그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이 붐이 되어 최근 영화관 산업을 버티게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는 380만 2,000여 명 관객수를 기록한 ‘너의 이름은’이었습니다. 뒤이어 2023년 1월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3월 4일, 개봉 61일 만에 누적 관객수 381만 8000여 명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편, 2023년 3월 8일에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개봉 13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록을 뛰어넘을지 기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흥행력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 외에는 극장이 텅 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3월 전체 관객수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관객수가 줄어든 근본적 이유 이면에서는 극장 요금이 있습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극장가는 3년 연속 요금을 인상했습니다. 2019년 평균 가격이 8천 원 수준이던 극장 요금은 현재는 평균 11,000원 수준입니다.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평일 티켓값은 1만 4,000원,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에는 1만 5,000원을 내야 합니다. 2019년과 비교해보면 4,000원이나 올랐습니다. 넷플릭스 한 달 OTT 요금이 작게는 5,500원에서 12,000원 사이이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더욱 신중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분 이유는 역설적으로 해당 작품을 OTT에서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성 애니메이션 팬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가격을 인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영화 평균 제작비가 상승하고 있고, 관객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충족시키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극장가는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요금 인상으로 극장의 매출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한국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개봉한 ‘올빼미’ 이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영화관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나 선뜻 가격을 내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물가인상이나 인건비 상승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한번 올린 영화 관람료를 낮추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결국 좋은 영화가 나오면 관객들이 영화관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에만 기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는 동안 영화관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일하는 직원수를 줄이고, 영화 상영 중간중간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고 있어 소비자로서는 더욱 안 좋은 경험을 체험하는 꼴입니다.
관람료와 함께 도마 위에 오른 이슈는 ‘OTT 홀드백 기간’입니다. 영화 관계자들은 OTT 홀드백을 상당 기간 두어야만 영화관 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를 살리기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두었듯이, 영화관을 살리기 위해 OTT 홀드백 기간을 최소 몇 개월 이상 두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2022년 초 OTT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합의했습니다. 이전 36개월이었던 OTT 홀드백 기간을 줄여주는 대신, OTT 사업자는 약 4,000만 유로를 투자해 현지 영화 10편 제작 지원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한국은 아직 이렇다 할 규정이 없기는 하나, 영화관 산업이 쇠퇴할수록 정부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관은 5월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작들이 줄지어 개봉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분노의 질주’, ‘인어공주’ 등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을 찾을 예정이고, 한국 상업 영화인 ‘범죄도시 3’도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시리즈물이기에 우상향을 노리고 있으나, 한시적 흥행에 그칠지 영화관 산업을 다시 살릴 마중물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입니다.
기존 영화관은 '경험'을 가장 큰 차별점으로 내세웠습니다. 1.43:1의 독자적인 화면비율과 고화질을 자랑하는 아이맥스나 7.1.2 채널의 돌비 애트모스 음향 효과에서 나아가 3D 체험과 체험형 좌석을 통해 시각적, 청각적 만족도를 넘어선 체험적 만족도를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OTT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파괴적 혁신'을 단행하자, 영화관으로서는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싼 영화 관람료는 소비자들을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들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나올 영화를 굳이 비싼 돈 내고 봐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미 영화관 산업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영화관으로서는 진퇴양난일 수 있으나, 소비자 입장에서 본질적 가치를 재조망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